“So, are you a runner?”
워싱턴D.C.에서 방문 연구원 생활을 하던 3년 전, 취미 얘기를 나누다 미국인 친구가 문득 던진 질문이다. ‘달리기 좋아하느냐’ 정도의 뜻이었겠지만 한국식 문법 교육에 충실하던 내 머릿속에 떠오른 뉘앙스는 조금 달랐다. “당신은 러너입니까?” 썩 잘된 해석이라 할 수 없어도 어쩐지 세상엔 러너라는 부류의 사람이 따로 있다는 말처럼 느껴져서 마음에 들었다. ...
사전적으로 실패는 ‘뜻한 것을 이루지 못하거나 목표나 계획을 달성하지 못한 상태’를 의미한다. 하지만 내가 카이스트 실패연구소에서 만난 학생들에게 듣는 이야기는 그런 구체적 실패가 아니다. 그들이 진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은 ‘실패한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혀 도전하기 어려운 마음의 상태다.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 실패한 것처럼 느껴지는 이 막연한 감정은 어디서부터 오는 걸까?
이런 감정을...
다음 지문은 등산 잡지사 기자의 마감 기간 중 하루를 요약 서술한 내용이다. 지문을 읽고 기자가 행복을 느꼈을 법한 순간이 언제일지 제시된 보기에서 고르시오.
아침 8시에 집을 나섰다. 날씨가 추웠다. 재킷의 후드를 뒤집어 썼다.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동안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스마트폰에서 애플뮤직 앱을 켜고 페이브먼트Pavement(미국 밴드 이름)의 ‘서머 베이브Summer...
경북 예천 은풍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분이 말했다. “사과는 떨어지기 전에 꼭 가지에 꽃눈을 만들어 놓고 내려와요. 훗날 자신과 닮은 사과 열매가 거기에 달리기를 바라면서요.” 수십 년째 명품 사과를 만든다는 자부심이 대단한 분인데, 그분의 혜안이 놀랍다. “사과나무의 경우 여름철부터 꽃눈이 생성되는데, 이른 봄 가지치기를 할 때 꽃눈이 얼마나 달렸는지 반드시 살펴봐요. 그걸 어려운 말로 분화율 조사라고 해요...
친구가 보내준 시골 장터 사진 한번 보세요. 이 사진을 보고 저는 정말 박장대소 했습니다.
네 컷을 한꺼번에 보니 덜 웃으실까요?
제가 이 사진을 받았을 때는 작게 붙인 사진 네 장을 한 컷씩 키워야 했거든요.
한 장 키우니 ‘불로케리’ - 에구, 철자가 틀렸네.
또 한 장 키우니 ‘부르크리’ - 뭐지, 또 철자? 하면서 웃음이 나왔죠.
또 한 장 키우니 ‘보리꼬리’ - 이건 뭐, 저는 웃음이 마구 터졌어요...
아버지께 겨울 점퍼와 운동화를 갖다 드리러 충남 서산에 갔다. 수업을 마치자마자 출발하니 점심때가 좀 지난 오후 2시였다. 시골 어른들은 밥을 일찍 드시는데 아들이랑 같이 먹으려고 촌닭을 삶아 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몇 해 전 아버지는 위암 수술을 받으셨다. 초기에 발견해 수술이 수월했다.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위를 절제해 작아진 몸피에 좀처럼 살이 붙지 않는다. 살이 빠져서 옷이 클 거라면서, 점퍼를 걸치...
인류를 두통인과 비두통인으로 나눈다면 나는 명확히 두통인 쪽에 속한다. 혹시라도 ‘세계 두통인 협회’ 같은 단체가 있다면 협회는 두통으로 고통받는 인류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나를 핵심 부서에 고용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날 밤, 한동안 잠잠하던 내 잠자리에 두통이 다시 찾아왔다. 두통인은 안다. 이것은 모른 척한다고 슬쩍 사라질 종류의 통증이 아니다. 식은땀을 흘리며 잠을 청하다 이건 아니다 싶은 마음에 ...
현악4중주, 현악기 주자 네 명이 연주하는 실내악이다. 바이올린 둘과 비올라, 첼로로 구성한다. 그런데 음악이나 악기에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는 그저 바이올린 둘, 바이올린 같은데 아주 미세하게 큰 바이올린, 그리고 확실히 큰 바이올린을 들고 연주하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악기가 바이올린을 닮았으니 각각의 연주자에 대한 우스갯소리가 있다. ‘내가 제일 잘해’라고 믿는 제1바이올린, ‘나도 너만큼 해’라고 우기는...
‘임臨’은 원그림을 옆에 두고 보면서 따라 그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모模’는 반투명한 종이를 원그림 위에 올려놓고 한 획씩 그대로 윤곽을 따라 그리는 것이랍니다.
그래서 둘 다 원작을 똑같이 따라 그리는 것으로 원그림과 닮을수록 더 잘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아직도 중국에는 여러 분야의 ‘임모’ 경진 대회가 열린다고 합니다.
이 또한 박수를 받는 일이어서 여기에 만족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사를 ...
조금 다른 여행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 좋은 곳에 가서 좋은 걸 보고 와!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관광객이 가득한 명소에 갔다가 관광객이 가득한 식당에서 밥을 먹고, 관광객만 있는 숙소로 이동하는 게 여행의 전부인 걸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때마침 에어비앤비라는 숙박 시스템이 등장했다. ‘타인의 일상으로 들어가보세요. 진짜 여행을 해보세요.’
한동안 그런 여행을 즐겼다. 신선했다. 관광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