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덥나 보자.’ 오기를 부리듯 창문을 모두 열어놓고 에어컨은 틀지 않을 작성이었습니다. 늦여름에 속하는 나날임에도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더위를 피하지 않고 견뎌보기로 마음먹은 휴일입니다. 매미가 기를 쓰고 울어댑니다. 창문에 배를 보이며 붙어 있습니다. 매미 한마리의 울음소리가 이렇게 크고 시끄러웠던가! 거의 악을 쓰면서 제 날개를 부비고 있는 거네요. 매미 울음소리만 아니면 조용하고 느긋할 오후였는...
오랜만에 선배를 만났다. 술을 매우 좋아하는 선배였는데 그날은 한 잔도 입에 대지 않았다. 간염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뒤로 술을 완전히 끊은 것이다. 그러곤 자신이 학생들을 위해 해주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네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야. 그런데 세잎 클로버의 꽃말이 뭔지 알아? 행복이야. 우리는 주변에 널려 있는 행복은 외면한 채 오로지 행운만을 찾아다니고 있는 거야.” ...
그 누구도 ‘인구 충격’에 이견은 없다. 듣도 보도 못한 0.7명대 출산율답다. 원인은 뭘까? 그 까닭을 단정 짓지 않는 건 수천수만 가지가 뭉친 복합적 결과이기 때문이다. 인구 변화는 크게 둘로 나뉜다. 출생·사망의 자연 증감과 전입·전출의 사회 증감이다. 원래는 자연 증감의 영향력이 큰데, 갈수록 사회 증감이 몸집을 불린다. 특히 한국이 그렇다. ‘농·수·어촌→수도권역’이라는 현상이 ‘고출산→저출산’을 부...
뻐꾸기 운다. 숲이 짙어지기 전에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초여름 소리. 얼마 전부터 밤마다 개구리 합창 연습이 한창이었다. 나는 선캡을 쓴 채 커피를 들고, 배우자 곰용 씨의 옥상에 올라간다. 곰용 씨는 지금 쌈 채소를 수확해 씻고 있다. 저 채소들은 적당한 양으로 나뉘어 곧 지인들에게 선물로 갈 것이다.
대추나무, 뽕나무, 다래나무, 장미조팝, 단정화, 둥굴레, 페퍼민트, 로즈메리, 감자, 오이, 호박, ...
“So, are you a runner?”
워싱턴D.C.에서 방문 연구원 생활을 하던 3년 전, 취미 얘기를 나누다 미국인 친구가 문득 던진 질문이다. ‘달리기 좋아하느냐’ 정도의 뜻이었겠지만 한국식 문법 교육에 충실하던 내 머릿속에 떠오른 뉘앙스는 조금 달랐다. “당신은 러너입니까?” 썩 잘된 해석이라 할 수 없어도 어쩐지 세상엔 러너라는 부류의 사람이 따로 있다는 말처럼 느껴져서 마음에 들었다. ...
사전적으로 실패는 ‘뜻한 것을 이루지 못하거나 목표나 계획을 달성하지 못한 상태’를 의미한다. 하지만 내가 카이스트 실패연구소에서 만난 학생들에게 듣는 이야기는 그런 구체적 실패가 아니다. 그들이 진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은 ‘실패한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혀 도전하기 어려운 마음의 상태다.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 실패한 것처럼 느껴지는 이 막연한 감정은 어디서부터 오는 걸까?
이런 감정을...
다음 지문은 등산 잡지사 기자의 마감 기간 중 하루를 요약 서술한 내용이다. 지문을 읽고 기자가 행복을 느꼈을 법한 순간이 언제일지 제시된 보기에서 고르시오.
아침 8시에 집을 나섰다. 날씨가 추웠다. 재킷의 후드를 뒤집어 썼다.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동안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스마트폰에서 애플뮤직 앱을 켜고 페이브먼트Pavement(미국 밴드 이름)의 ‘서머 베이브Summer...
경북 예천 은풍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분이 말했다. “사과는 떨어지기 전에 꼭 가지에 꽃눈을 만들어 놓고 내려와요. 훗날 자신과 닮은 사과 열매가 거기에 달리기를 바라면서요.” 수십 년째 명품 사과를 만든다는 자부심이 대단한 분인데, 그분의 혜안이 놀랍다. “사과나무의 경우 여름철부터 꽃눈이 생성되는데, 이른 봄 가지치기를 할 때 꽃눈이 얼마나 달렸는지 반드시 살펴봐요. 그걸 어려운 말로 분화율 조사라고 해요...
친구가 보내준 시골 장터 사진 한번 보세요. 이 사진을 보고 저는 정말 박장대소 했습니다.
네 컷을 한꺼번에 보니 덜 웃으실까요?
제가 이 사진을 받았을 때는 작게 붙인 사진 네 장을 한 컷씩 키워야 했거든요.
한 장 키우니 ‘불로케리’ - 에구, 철자가 틀렸네.
또 한 장 키우니 ‘부르크리’ - 뭐지, 또 철자? 하면서 웃음이 나왔죠.
또 한 장 키우니 ‘보리꼬리’ - 이건 뭐, 저는 웃음이 마구 터졌어요...
아버지께 겨울 점퍼와 운동화를 갖다 드리러 충남 서산에 갔다. 수업을 마치자마자 출발하니 점심때가 좀 지난 오후 2시였다. 시골 어른들은 밥을 일찍 드시는데 아들이랑 같이 먹으려고 촌닭을 삶아 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몇 해 전 아버지는 위암 수술을 받으셨다. 초기에 발견해 수술이 수월했다.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위를 절제해 작아진 몸피에 좀처럼 살이 붙지 않는다. 살이 빠져서 옷이 클 거라면서, 점퍼를 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