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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류를 두통인과 비두통인으로 나눈다면 나는 명확히 두통인 쪽에 속한다. 혹시라도 ‘세계 두통인 협회’ 같은 단체가 있다면 협회는 두통으로 고통받는 인류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나를 핵심 부서에 고용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날 밤, 한동안 잠잠하던 내 잠자리에 두통이 다시 찾아왔다. 두통인은 안다. 이것은 모른 척한다고 슬쩍 사라질 종류의 통증이 아니다. 식은땀을 흘리며 잠을 청하다 이건 아니다 싶은 마음에 ...
    2024.10
  • 현악4중주, 현악기 주자 네 명이 연주하는 실내악이다. 바이올린 둘과 비올라, 첼로로 구성한다. 그런데 음악이나 악기에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는 그저 바이올린 둘, 바이올린 같은데 아주 미세하게 큰 바이올린, 그리고 확실히 큰 바이올린을 들고 연주하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악기가 바이올린을 닮았으니 각각의 연주자에 대한 우스갯소리가 있다. ‘내가 제일 잘해’라고 믿는 제1바이올린, ‘나도 너만큼 해’라고 우기는...
    2024.10
  • ‘임臨’은 원그림을 옆에 두고 보면서 따라 그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모模’는 반투명한 종이를 원그림 위에 올려놓고 한 획씩 그대로 윤곽을 따라 그리는 것이랍니다. 그래서 둘 다 원작을 똑같이 따라 그리는 것으로 원그림과 닮을수록 더 잘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아직도 중국에는 여러 분야의 ‘임모’ 경진 대회가 열린다고 합니다. 이 또한 박수를 받는 일이어서 여기에 만족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사를 ...
    2024.08
  • 조금 다른 여행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 좋은 곳에 가서 좋은 걸 보고 와!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관광객이 가득한 명소에 갔다가 관광객이 가득한 식당에서 밥을 먹고, 관광객만 있는 숙소로 이동하는 게 여행의 전부인 걸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때마침 에어비앤비라는 숙박 시스템이 등장했다. ‘타인의 일상으로 들어가보세요. 진짜 여행을 해보세요.’   한동안 그런 여행을 즐겼다. 신선했다. 관광객...
    2024.08
  • 예전에 갔던 우동집을 다시 찾아가 “10년 전 여기 왔는데 그대로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하니 주인이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장사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반가워했다. 이른 아침 들어간 커피숍 한쪽에 불상이 놓여 있어서 물어보니 주인이 승려였다. 카페에서 요리와 서빙을 하는 스님이라니. “제가 스님이 맞긴 한 데 스님이 직업은 아니랍니다. 스님이란 제가 삶을 대하고 살아가는 방식이니까요.” 오오, 뭔...
    2024.06
  • 5월의 목요일, 엄마는 지중동물처럼 침대에 웅크린채 주무시고 계셨다. 나는 확장된 지각으로 숨소리의 간격을 재고 있었다. 창문에 노란 새똥 줄무늬가 사선을 그었고, 간혹 정화의 봄비가 내렸다. 나는 커튼을 좌르륵 끝까지 열었다. 공원의 반투명 연두색 이파리들은 계절의 환호 대신 평평한 후회를 불렀다. “커튼만 걷고 문은 열지 마.” 엄마는 호흡을 내쉬며 낮게 말했다.    모든 창문은 하...
    2024.05
  • 지인들과 만나면 투자를 통해 ‘파이프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북새통이다. 주식과 부동산 투자를 위해 경제 공부에 몰두하고 코인에 투자하는 게 ‘미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투자로 재산을 축적하는 방법이 주목받으면서 조기 은퇴를 꿈꾸는 ‘파이어족’도 등장했다. 그만큼 일하면서 사는 게 고되기 때문일 것이다. 고지식한 사람이라 그 대열에는 끼지 못하지만, 월요일 아침 눈을 뜨며 ‘출근을 꼭 해야만 하는 걸까’ 고...
    2024.05
  • 씨앗을 심을 계절이다. 매해 제일 먼저 심는 씨앗 중 하나가 씨감자이다. 감자는 서늘한 날씨를 좋아해서 이른 봄과 가을에 두 차례 심는다. 요맘때나 가을에 접어들 무렵이면 내버려둔 감자가 싹이 튼 모습을 봤을 것이다. 나를 땅에 심어달라는 감자의 외침이다.   지난해 말, 나는 한 토종 감자의 사연을 접했다. 경북 봉화에서 들은 이야기다. 봉화는 한 면이 울진과 이웃하고 있는데, 그 사이에 강이 ...
    2024.03
  • 한때 나는 등산을 좋아해 주말마다 산에 올랐다. 텐트 없이 침낭 속에서 자는 비박을 하기 위해 야간 산행을 하기도 했다. 더 자랑해보자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와 마추픽추로 향하는 잉카 트레일에도 간 적이 있다. 하지만 모두 20 여 년 전 일이다. 얼마 전 업계(?) 후배들이 한라산에 오르자고 했을 때 나는 잠시 그 시간의 간극을 깜빡했음이 분명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보통 10시간이 걸린다는 관음사 코스를,...
    2024.02
  • 압구정동에 건물 한 채 정도 있으면 진정한 건물주요, 부자라 할 수 있다. 내 병원과 회사도 압구정동에 있다 보니, 가끔 건물주 아니냐는 소릴 들을 때가 있다. 안타깝게도 병원과 회사 모두 임대 건물에 있다.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는 것도 능력이니, 건물주는 못 되어도 병원과 회사의 유명함은 자랑할 만하다. 그렇다면, 모든 걸 갖추었으니 “나는 진정 행복한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객관적인 성공 기준으로 보면...
    202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