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월 브로콜리 박장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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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보내준 시골 장터 사진 한번 보세요. 이 사진을 보고 저는 정말 박장대소 했습니다.
네 컷을 한꺼번에 보니 덜 웃으실까요?
제가 이 사진을 받았을 때는 작게 붙인 사진 네 장을 한 컷씩 키워야 했거든요.
한 장 키우니 ‘불로케리’ - 에구, 철자가 틀렸네.
또 한 장 키우니 ‘부르크리’ - 뭐지, 또 철자? 하면서 웃음이 나왔죠.
또 한 장 키우니 ‘보리꼬리’ - 이건 뭐, 저는 웃음이 마구 터졌어요.
마지막 한 장에는 ‘브로커’ - 박장대소라는 단어가 어울리게 완전 허리 꺾고 웃었다니까요.
우리나라가 외래어 들여올 때 원칙을 만들지 않은 지 오래되었거나 혹은 거르는 망태가 망가졌다고 느낍니다. 누가 제대로 가르쳐준 적 없으니 들리는 대로 적어서 전국 시장에 나온, 자신의 귀에 충직하고도 거리낌 없는 할머니들!
요즈음은 달콤한 디저트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 어찌나 많은지, 저였으면 맞나 틀리나 생각하느라 팔러 나오지도 못했을걸요? 아무튼 이렇게 웃어본 지가 얼마나 오랜만이고 시원하던지! 그래서 결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돈도 안 들고 큰 수련도 필요 없는 웃음! 웃음을 2025년 목표로 세우는 것으로 말입니다. 어이없을 정도로 쉬운 목표인데도 이거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서너 명, 모두 어찌나 그리 근엄하고 완강한지 그 모습이 스톱모션 같아서 지금이라도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속에 저도 그랬고요. 그래서 웃음을 꺼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절반의 기쁨과 절반의 고통으로 이루어져 있기 마련이라니, 적어도 인생의 반이나 되는 고통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이며 해결해낼지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일 것입니다. 즐거움조차 마찬가지이지만 고통 또한 영원하지 않고 일시적이라 하지 않습니까? 분별, 집착, 번뇌가 고통의 원인일진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어리석고 그르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그런 것은 본래 없다고 가르치는 것이 선이라고 합니다. 그것의 실상은 공空이라고 말입니다. 이 개념 자체가 죽비입니다. 무슨 소리인지 애매하면서도 억지 같아 그렇게도 마음으로 들어오지 않더니, 이제 좀 철이 드는 모양입니다. 이 진리를 매사에 두어 괴롭게 살지 말라…. 정말 멋진 관점입니다.
주어진 과제를 풀기 위해 함께 등장해야 하는 것은 ‘지금 여기(Here & Now)’입니다. 저는 이 말도 ‘싱겁기는…’ 하면서 별로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과거는 이미 되돌릴 수 없고 미래는 아직 당겨올 수 없으니 우리는 언제나 매 순간을 영원한 현재, 영원히 지금 위에서만 살고 있고 살 수밖에 없다는 설명도 죽비처럼 내려칩니다. 과거에 내가 지녔던 모든 것에 대해 후회와 자만도 하지 말라, 미래 역시 그럴진대 늘 자신의 것을 소유하려고 허덕거리며 허망하게 살지 말고, 더 큰 세계인 공空을 소유하는 데 공功을 들이라는 것이 ‘지금 여기’에 충실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입니다. 이제야 설거지를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최선을 다하는 것의 의미가 다가옵니다. 와, 웃음! 허하게 생겼는데 그래서 실하다는 거죠? 웃으려고 시작했다 진지해졌습니다.
위 세포는 두어 시간마다, 피부 세포와 장내 세포는 며칠마다, 혈액세포 중 적혈구와 근육세포는 몇 달 내에…. 이렇게 1년 정도면 몸에 있는 대부분의 낡은 세포는 죽어 없어지고 새 세포로 교체된다니 1년 안에 환골탈태할 수 있겠네 하는 용기가 확 솟구칩니다. 죽은 물고기는 물살 따라 흘러 내려가지만, 살아 있는 물고기처럼 거슬러 올라갈 수는 없다잖아요. 의지를 가지고 바꾸겠습니다. 결심합니다. 몸도 바꾸고, 마음도 바꾸고, 웃음을 만들어내겠습니다.
올해는 특히!
추신 : 할 수 있다면 가끔 시골 장터에 가봐야겠어요. 택배로 받으면 웃을 일이 뭐가 있간디?
<행복이 가득한 집>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