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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인의 시골집 마루에 앉아 아침 바람을 쐰다. 텃밭 너머에 선 늙은 느티나무가 소란하다. 까치가 나뭇가지를 물어다 둥지를 틀고 있다. 아직 잎을 틔우지 않은 느티나무에 광주리만 한 까치집 여섯 채가 적나라하다. 저 정도면 까치 마을이네! 나무가 무거워 보여 내심 놀라는데 지인이 이르기를 모두 헌 집이라고 한다. 까치 한 쌍이 저 나무를 터전 삼아 살며 해마다 새 둥지를 틀고 있다는 것이다. 까치는 둥지를 틀고...
    2023.02
  • 드디어 그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칼럼명도 찰떡같은 이 한 페이지짜리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사회 명사의 솔직한 일기장 같아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칼럼입니다. 당연히 필자 섭외에도 공을 많이 들이지요. 편집장인 저도 정말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쓰려고 그간 꼭꼭 아껴두었는데, 바로 오늘이 그날! 이 칼럼의 필자가 되는 날이네요.   저는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편집장 일을 마칩니다. ...
    2023.01
  • 또 냄비를 바짝 태우고 말았습니다. 쩝!    “30분 있다 알람 해줘.” 알람이 울렸을 때 “알았어, 알았어.” 이렇게 말하면서 스마트폰을 끄고 바로 일어서지 않은 게 화근이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화들짝 놀라서 부엌으로 쫓아와 보니 냄비가 아주 새까맣게 타고 말았습니다. 하던 일에 그렇게나 집중을 했다니 — 이럴 때는 정신이 어디까지 갔다 오는 걸까, 어디쯤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
    2022.12
  • 40대를 지나온 나는 8년 가까이 미국의 시골에서 남편, 아이 둘과 함께 살고 있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나 계획 없이 그냥 살았다. 시골살이 전에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성취를 위해 부지런히 직장 생활도 하고, 차근차근 학위도 땄다. 시골에 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삶은 그 자체로 풍성해서 글을 썼다. 어떤 독자가 물었다. “도시에서 성취를 추구하지 않은데에서 오는 아쉬움 혹은 후회는 없냐”고. 갑자기 말문...
    2022.11
  • 고덕동에는 35년 된 작은 세탁소가 있다. 사장님은 매일 아침 7시가 되기 전에 출근해 밤 11시까지 쉴 새 없이 손님을 맞이하고 옷을 다리고 가끔 배달도 하며 15시간 넘게 일한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국민학교 3학년 때 갑자기 돌아가셨다. 막냇동생이 이제 막 백일 지난, 아들만 넷인 집의 장남인 그는 국민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중학교에 가는 대신 돈을 벌기 위해 세탁일을 배웠다. 그 후로 50여 년 동안 매일...
    2022.10
  • 나에게는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기억들이 있다. 어떤 주기를 타고 찾아오는지는 모르겠다. 나와 직접적인 연결 고리는 없는, 그러나 언젠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르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같은 하늘 아래 하루를 시작하며 ‘행복한 내일’을 다짐하던 이들이었을 텐데, 이들의 다짐이 물거품 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가슴 아픈 순간을 조금이라도 바꿔보고 싶은 마음에 계속 그들이 등장하는 ...
    2022.09
  •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 그저 흘려들었다. 우리의 가왕 조용필의 명료한 발음으로도 유난히 긴 가사는 앞뒤가 연결되어 들려온 적이 없다. 대관령으로 놀러 가는 자동차 안에서 이 노래를 틀고 가사를 차근히 들어보았다.   “묻지 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이 대목에서 울컥했다. 가끔 사람들이 내게 왜 그렇...
    2022.08
  • 강원도 태백산맥 서편 자락의 목공소에서 집 짓고 가구 만들며 글을 쓰는 내 일은 ‘행복이 가득한 집’이 한 세대 이상을 차곡차곡 쌓아온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인간이 느꼈을 최초의 큰 행복은 아마도 내 집을 장만했을 때가 아니었을까. 동굴 밖으로 나와 나무 기둥에 풀이나 잎 혹은 흙과 돌로 지붕을 만들어 최초의 집을 완성했다. 비바람을 피하고 나보다 더 크고 날쌘 맹수의 위협에서도 벗어났다. 지붕 아래서 ...
    2022.08
  • 그의 얼굴을 한참이나 쳐다본다. 그의 뒤로 무심하게 스쳐 지나가는 도시의 사람들, 평범한 도시의 밤. 그러나 그는 일생일대의 위기 한가운데에 서 있다. 순간 포착된 그의 시선과 몸동작은 그의 불안과 공허, 당혹감을 드 러낸다. 광택이 나는 종이 위에 인쇄된 그 사진에 매혹되어 나는 오랫동안 눈길을 거두지 못한다. 지금은 폐간된 <키노>라는 영화 잡지가 있었다. 그 잡지의 성실한 구독자이던 내가 잡지...
    2022.06
  • “너는 행복하냐? 그렇게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사니까 행복해?” 2001년 개봉한 임순례 감독의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나오는 대사다. 그저 영화 대사일 뿐인데, 들을 때마다 눈가가 뜨끈해진다. 누구나 맞닥뜨릴 수 있는 질문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잠시 잊고 있던 저 대사를 다시 호출한 이는 배우 박정민이다. 계기는 인터뷰였다. 당시 나는 ‘배우의 사적인 공간’을 방문하는 콘셉트로 기획한 인터뷰집...
    202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