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오면서 행복에 관해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는 행복한가?” 하고 자문한 적도 없고, 불행하다고 한탄한 적도 없다. 삶은 행복해야 한다, 사람은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오히려 “삶은 고행”이라는 부처의 말에 동의해, 사는 게 힘든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행복에 대한 기대도 불행에 대한 걱정도 없이 덤덤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작년에 산문집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가...
나는 사계절 중 특히 6월을 좋아한다. 생일이 있는 달이기도 하지만 나무가 향기를 뿜어내고, 산 숲에서 뻐꾹새가 노래하는 생명감이 좋아서다. “올해 희수喜壽 아니신지요?” 독자의 문자메시지를 받고 그 뜻을 찾아보니 77세를 가리키는 거란다. 어느새 나이가 그리 되었을까? 낯설지만 현실로 받아들이며 가만히 웃어본다. 오늘 배달된 장미꽃 바구니를 보면서 생각한다. 77세답게, 50년 이상 수도원에 살아온 수녀답게...
그동안 여러 권의 책을 쓰면서 ‘행복’이라는 주제를 티 나지 않게 피해왔다. 그와 관련해 쓴 거라고는 행복은 오로지 ‘찰나의 느낌’일 뿐이라는 것, 행복과 욕망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정도가 기억난다. 살아오면서 꾸준히 평온하던 시절이 없어서 행복이라는 개념을 어색해했다. 그러니 작년 12월 초, 이듬해 봄의 결혼기념일이 20주년임을 알아차렸을 때도 거추장스럽게만 여겼다. 원래도 기념일을 좋아하지 않...
봄이 작은 걸음으로 다가온다. 마당에 오는 봄을 지켜보면 한 해도 같은 모습이 없다. 2월 중순이면 약속을 지키는 복수초가 첫째로 노란 꽃을 피운다. 옮겨 심은 적도 없건만 저절로 퍼져서 여러 그루가 되었고, 키가 부쩍 자라면서 이파리가 얼마나 멋진지 모른다. 해가 나면 피고 해가 지면 지고를 반복하다가 방울 같은 씨방이 달리는데, 그것도 예쁘다. 그 과정이 한 달 이상 지속된다면 믿을까? 참으로 기특한 꽃이...
새 책의 마무리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출판사로 거의 출근하다시피 하며 원고를 만지고 있었다. 나의 ‘60번째 생일’을 축하하자며 시작한 기획이었다. 경자년이 가기 전 책이 나오게 하자는 목표 아래 모두들 마우스에 불이 붙도록 일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순식간에 팬데믹의 공포가 출판사를 덮쳤다. 출판사 식구들이 만나던 사람 중에 확진자가 나왔고, 나를 포함해 출판사를 방문한 모든 사람이 즉시 선별 진료소로 가야...
병이 전염되는 것처럼 불행도 전염된다. 불행이 전염되는 것처럼 행복도 전염된다. 우리가 서로 곁에 있다면 인간을 둘러싼 생각이나 행동 따위는 쉽게 전염될 수 있다. 팬데믹을 겪으며 깨달았다. 당신이 안녕해야 내가 안녕할 수 있다는 점, 혼자만의 안녕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점을. 당신의 문제, 동네의 문제, 사회의 문제, 나라의 문제, 세계의 문제가 나와 너무 깊이 연루되어 이곳에서 그곳을 밤새 걱정할 수밖에 ...
이런 질문을 받았다. “제가 왜 살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가정도 직장도 있는데 모든 게 짐처럼 버거워요. 제가 살아야 할 이유를 알려주세요.” 나는 그에게 이유를 찾아주려고 생각에 잠긴다. “부인도 있고 자식도 있는데 행복하지 않나요?” 그가 답한다. “집에서 한 번도 행복하다고 느낀 적이 없어요. 그렇다고 아내나 아이들한테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함께 있어도 고독하고 허전한 느낌은...
나는 오래된 주택에 산다. 대문은 군데군데 녹이 슬었고 돌계단에는 이끼가 끼었다. 따뜻한 계절에는 담쟁이가 올라오지만, 겨울이면 앙상한 줄기 뒤로 나잇살 가득한 벽돌담이 드러난다. 지붕은 적당히 내려앉고 창문은 뻑뻑하다. 또 마당에는 다듬지 않은 나무와 꽃들이 제멋대로 얽혀 있다. 여기가 바로 20년째 살아가는 우리 집이다. 떠나려던 때가 있었다. 집의 연륜이 고스란히 불편함으로 다가오기 시작하자 ...
간혹 언론 인터뷰를 마치고 나면 인터뷰어 측으로부터 “옛날 사진들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럴 때면 좀 난감해지는데, 우선 나는 옛날이고 지금이고 사진을 찍거나 찍히는 걸 그리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서, 가지고 있는 내 사진이 썩 많지 않다. 독사진은 더 그렇다. 과거 필름 카메라 시대에 찍은 사진들을 디지털로 스캔한 것도 몇 장 없다. 예전 사진들을 보고 있자면 왠지 부끄러워져서 멀리하는 편이다. 그래...
2000년도 봄, 가뭄이 극심할 때 나는 수처리 전문가로서 아무리 더러운 물이라도 처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물을 찾고 있었다. 가뭄 끝에 내린 빗물을 모두 다 버리는 것을 보고, 빗물도 처리만 잘하면 유용하게 쓸 수 있다는 생각으로 빗물 연구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일반인이 산성비나 물관리 등에 대한 오해가 깊은 것을 알았다. 과감하게 전공인 수처리를 버리고 ‘빗물 박사’라는 이름으로 대중의 눈높이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