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면서 여러 얼굴을 지닐 수 있어야 행복감을 느낀답니다. 예컨대 동생을 만났을 때와, 스승님을 만나뵐 때 자기 얼굴 표정을 생각해보세요. 연인을 만날 때와, 생전 처음 소개받는 사람을 만날 때의 상황도 그려보세요. 정말 우리가 그들을 대하는 마음과 태도와 얼굴 표정이 달라지지요? ‘나의 여러 모습’입니다. 연극이나 영화에서 배우가 자신이 연기하는 극중 인물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인격을 덧씌우는 것을 페르...
정류장 뒤로 파도가 부서진다. 하얀 포말 앞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버스가 서고, 사람들이 타고 내린다. 제주에 온 지 2년, 나는 아직도 바다에 놀란다. 버스 정류장이, 다이소가, 스타벅스가 바다 앞에 떡하니 있는 풍경이 내겐 초현실적이다. “살아보니 제주 어떠냐?”고 지인들이 묻는다. 저 거대한 생명력을 아무렇지 않게 마주하고 산다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하지만 내가 달라진 것이 더 감사하다. 백화점이 없...
“행복하니?” 늘 대답하기 난처한 질문이다. 이 질문의 답은 있기는 한 걸까? 그렇다고 답하자니 어제 죽고 싶던 일이 걸리고, 아니라고 하자니 자신이 불쌍하고 초라해진다. ‘예스와 노’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가는데, 불현듯 9년 전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이하 <세바시>) 강연이 떠오른다. 대표적 행복 연구가인 연세대학교 서은국 교수의 강연이다. 그는 ‘행복의 저력’에 관...
살면서 없이는 살 수 없는 물건 몇 개를 한번 꼽아본다. 모르긴 몰라도 최상위권에 스마트폰이 있지 않을까 싶다. 과연 그렇다. 우리는 스마트폰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조금 양보해서 많이 곤란할 게 틀림없다. 오늘도 나는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검색했고, 지난 밤 못 본 축구 동영상을 관람했다. 배달 앱을 통해 콩나물 국밥을 주문해서 먹고, 내일 일정이 뭔지를 방금 체크 완료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
외국 영화에서 본 대목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기도를 하는 장면이었죠. “제가 그동안 선함을 베풀었던 것으로 지금의 고난을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좋은 일을 하면 그것이 저축된다고 암암리에 알고 있는가 봅니다. 언젠가는 꺼내 쓸 수 있다고 믿는 거죠. 누군가가 알려주었죠, 인도에서는 걸인이 뻔뻔하다고. 동냥을 주는 행위를 통해 적선, 즉 선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자기가 베푼다고 생각하기 ...
‘Mind Mover’, 제가 생각하는 저의 아이덴티티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을 찾는 연구자입니다. 저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즐거운 경험을 제공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합니다. 인간이 느끼는 즐거운 경험이나 재미는 크게 스무 가지로 나뉩니다. 매혹, 도전, 경쟁, 완성, 통제, 발견, 에로티시즘, 탐험, 자기표현, 판타지, 동료 의식, 양육, 휴식, 가학, 감각, 시뮬...
살아오면서 행복에 관해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는 행복한가?” 하고 자문한 적도 없고, 불행하다고 한탄한 적도 없다. 삶은 행복해야 한다, 사람은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오히려 “삶은 고행”이라는 부처의 말에 동의해, 사는 게 힘든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행복에 대한 기대도 불행에 대한 걱정도 없이 덤덤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작년에 산문집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가...
나는 사계절 중 특히 6월을 좋아한다. 생일이 있는 달이기도 하지만 나무가 향기를 뿜어내고, 산 숲에서 뻐꾹새가 노래하는 생명감이 좋아서다. “올해 희수喜壽 아니신지요?” 독자의 문자메시지를 받고 그 뜻을 찾아보니 77세를 가리키는 거란다. 어느새 나이가 그리 되었을까? 낯설지만 현실로 받아들이며 가만히 웃어본다. 오늘 배달된 장미꽃 바구니를 보면서 생각한다. 77세답게, 50년 이상 수도원에 살아온 수녀답게...
그동안 여러 권의 책을 쓰면서 ‘행복’이라는 주제를 티 나지 않게 피해왔다. 그와 관련해 쓴 거라고는 행복은 오로지 ‘찰나의 느낌’일 뿐이라는 것, 행복과 욕망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정도가 기억난다. 살아오면서 꾸준히 평온하던 시절이 없어서 행복이라는 개념을 어색해했다. 그러니 작년 12월 초, 이듬해 봄의 결혼기념일이 20주년임을 알아차렸을 때도 거추장스럽게만 여겼다. 원래도 기념일을 좋아하지 않...
봄이 작은 걸음으로 다가온다. 마당에 오는 봄을 지켜보면 한 해도 같은 모습이 없다. 2월 중순이면 약속을 지키는 복수초가 첫째로 노란 꽃을 피운다. 옮겨 심은 적도 없건만 저절로 퍼져서 여러 그루가 되었고, 키가 부쩍 자라면서 이파리가 얼마나 멋진지 모른다. 해가 나면 피고 해가 지면 지고를 반복하다가 방울 같은 씨방이 달리는데, 그것도 예쁘다. 그 과정이 한 달 이상 지속된다면 믿을까? 참으로 기특한 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