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4월 제 삶에 그렇게 많은 실패는 없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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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적으로 실패는 ‘뜻한 것을 이루지 못하거나 목표나 계획을 달성하지 못한 상태’를 의미한다. 하지만 내가 카이스트 실패연구소에서 만난 학생들에게 듣는 이야기는 그런 구체적 실패가 아니다. 그들이 진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은 ‘실패한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혀 도전하기 어려운 마음의 상태다.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 실패한 것처럼 느껴지는 이 막연한 감정은 어디서부터 오는 걸까?
이런 감정을 말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상대적 박탈감’ ‘무력감’이다.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 사회의 높아지는 기준 속에서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자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이 감정을 증폭시킨다. 이런 감정이 쌓여 결국 무기력해지는 번아웃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영수도 그런 감정을 호소한 학생이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일상의 실패를 관찰해 사진으로 기록하는 ‘포토보이스’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그는 실패연구소가 자기처럼 늘 실패한 것처럼 느끼는 사람을 연구하는 곳인가 궁금했다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실패를 제출하는 과제라면 누구보다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나는 영수가 어떤 사진을 찍어 올지 궁금했다. 청년들이 말하는 막연한 실패감의 실체를 엿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한 달 후 그가 전한 이야기는 예상과 달랐다.
“일상을 들여다보니 그렇게 많은 실패는 없더라고요. 그런데 왜 저는 늘 실패하고 있다고 느꼈을까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에요. 기대만큼 사진을 많이 제출하지 못한 건 실패일 수도 있지만, 이걸 깨달았다는 점에서 제게 이 프로젝트는 성공이에요.”
실제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많은 학생이 비슷한 소감을 전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한 발짝 떨어져 관찰하는 경험 자체가 전환점이 되었다고 말했다. 눈앞의 과제와 불확실한 미래를 좇으며 달려가던 학생들에게 자신과 주변의 일상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시간은 그 자체로 배움의 기회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전에는 인식하지 못하던 자신을 재발견하기도 하고, 실패와 성공에 대해 지닌 고정관념을 깨닫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과정을 거치며 막연한 부정적 감정에 오래 머무르지 않게 된 것이 큰 성과였다. 이는 단순히 ‘실패를 극복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변화시키고 의미를 재구성하는 과정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 요인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직장, 안정적 수입 같은 외적 지표가 행복으로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다’고 믿는 것과 현실, 지금의 감정과 객관적 상황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 여러 연구들도 성취와 행복의 연관성이 그리 강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주관적 의미 부여다. 포토보이스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이 경험한 것도 바로 이런 자기 인식의 변화였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관찰하며 이전까지 ‘실패’라고 단정 지은 경험을 다른 관점에서 재해석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 더 건강한 자기 인식과 행복감을 찾아갔다. 또한 성공과 실패, 그리고 행복의 기준은 결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지 않다. 포토보이스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는 자기 성찰이 타인과 공유하는 과정에서 더 풍부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경험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 모두 비슷하다’는 공감을 얻는 동시에, 각자 해석과 결정은 다를 수밖에 없음을 인식했다. 이는 저마다 목표와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결과이며, 결국 모든 사람이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했다. 나아가 내 삶도 과거의 선택이 만들어낸 유일한 것이며, 그 자체로 의미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러한 깨달음 속에서 우리는 성공과 실패, 행복에 대한 각자의 정의와 기준을 고민하고 만들어가야 함을 배웠다.
많은 사람이 ‘실패한 것 같은 느낌’을 경험한다는 것은 우리가 행복에 대해 잘못된 가정을 하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진정한 행복은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결국 ‘실패한 것 같은 느낌’에서 벗어나 행복에 도달하는 첫걸음은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타인과의 의미 있는 관계 속에서 자신만의 기준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젊은 과학자들이 행복하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분위기 조성이 중요하다’는 신념 아래 설립되었다는 카이스트 실패연구소. 실패와 행복의 상관관계라니, <행복> 독자가 그야말로 귀 기울여 들어볼 만한 이야기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우선 영수 씨도 겪었다는 ‘실패한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혀 도전하기 어려운 마음의 상태부터 제대로 들여다볼 생각입니다. 안혜정 교수는 중앙대학교에서 사회 및 문화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여러 사회문제에 관여하는 한국인의 가치관과 인식을 문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연구합니다. 2018년 행정안전부에서 주관하는 실패박람회 ‘실패 의제 연구’에 참여했고, 실패박람회 및 재도전 프로젝트 민간 기획단 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2021년부터 카이스트 실패연구소에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캠페인을 기획하며 실패에 관한 문화적 인식과 대처 역량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글 안혜정(카이스트 실패연구소 교수) | 담당 최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