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10월 네 대의 바이올린이 만드는 하나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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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악4중주, 현악기 주자 네 명이 연주하는 실내악이다. 바이올린 둘과 비올라, 첼로로 구성한다. 그런데 음악이나 악기에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는 그저 바이올린 둘, 바이올린 같은데 아주 미세하게 큰 바이올린, 그리고 확실히 큰 바이올린을 들고 연주하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악기가 바이올린을 닮았으니 각각의 연주자에 대한 우스갯소리가 있다. ‘내가 제일 잘해’라고 믿는 제1바이올린, ‘나도 너만큼 해’라고 우기는 제2바이올린, ‘나도 한때 바이올린 했었어’라고 강변하는 비올라, 그리고 ‘난 깽깽대는 바이올린이 싫어’라고 말하는 첼로가 그것이다. 이는 단순히 악기에 대한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소통을 통한 조화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통일, 조화’ 등을 의미하는 ‘앙상블ensemble’이란 단어가 있다. 음악에서는 두 사람 이상이 하는 합창이나 합주를 뜻하는데, 현악4중주도 앙상블이 생명이다. 그런데 바이올린 둘이 서로 더 잘났다고 우기기 시작하면 소리가 커진다. 바이올린을 시기하는 비올라가 바이올린 소리를 이기려고 들면 소리의 균형이 깨진다. 바이올린 소리를 싫어하는 첼로가 바이올린 소리를 지우려 하면 곡이 엉망이 된다. 현악4중주를 비롯한 모든 앙상블은 서로의 소리를 듣고 조화를 이루려고 노력할 때 비로소 가능한데, 다른 이들의 소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소리를 내고자 하면 앙상블은 불가능하다.
여기 현악4중주 같은 네 세대가 있다. 아직은 학교에서 공부할 것이 많은 청소년 세대, 사회에 첫발을 떼기 시작한 청년 세대, 사회의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는 장년 세대, 이제는 한발 물러난 노년 세대가 그것이다. 한창때인 청소년과 청년이 서로 잘났다고 떠들며 위 세대를 무시한다. 장년은 나도 너희 때는 잘나갔다고 거들먹거리며 자신보다 앞선 세대를 경계한다. 노년은 내가 다 해봐서 안다며 ‘라떼’를 얘기하거나 시끄럽다고 귀를 막는다. 각 세대가 서로의 목소리는 듣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만 내면 이 사회는 ‘콩가루’ 자체일 수밖에 없다.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문해력도 마찬가지다. 장년층 이상이 ‘금일, 사흘, 중식’이라 말하면 그 아래 세대는 ‘금요일, 4일, 중국 음식’으로 알아듣는다며 그들의 무식을 욕한다. ‘생파(생일 파티)’에 ‘문상(문화 상품권)’으로 ‘생선(생일 선물)’을 대신하며 이전 세대들이 못 알아들을 말로 대화한다. 이건 문해력 문제가 아니라 어휘력 문제이자 소통의 문제다. 알아듣지 못한다면 알아들을 수 있는 어휘를 쓰면 되고, 모르는 말이 있으면 맥락으로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말을 듣고 뜻을 새겨야 세대 간 소통이 가능해지고 갈등도 사라진다.
훌륭한 대화술의 최고이자 마지막 단계는 역시 ‘듣기’이다. 말은 누군가 들으라고 하는 것이고, 대화에서 들어주기만 잘하더라도 그 대화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다. 큰 목소리가 아닌 큰 귀가 필요한 순간이다. 크기가 다르지만 결국은 모두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내기 위한 바이올린이다. 나이는 다르지만 모두 같은 시대를 나누어 사는 운명 공동체이니 이들의 행복은 듣기에 달려 있다.
지난해 <행복> 12월호에 실린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 칼럼을 기억하시나요? 30년 넘게 우리말의 말소리와 방언을 조사하고 연구하며 살아온 한성우 교수가 ‘당의정’과 ‘탕후루’의 언어적 연관성을 짚어 “따뜻한 말차림은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지름길”이란 이야기를 전했죠. 그렇다면 다정하고 원활한 소통을 위한 단정한 말매무새는 어떻게 지닐 수 있을까요? 한글날이 있는 10월호를 맞이해 한성우 교수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그의 답변이 담긴 원고를 받고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말씨와 말투로 말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대화술의 근본은 ‘듣기’라는, 모두가 알지만 대부분이 자주 잊고 지내는 이야기를 되새겨주었습니다. “서울에도 사투리가 있거등여. 구수하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서울말도 있걸랑?” 한성우 교수는 요즘 서울말에 대한 글을 쓰고 그것을 전파하는 데 푹 빠져 있습니다. <방언정담>을 시작으로 <우리 음식의 언어> <노래의 언어> <문화어 수업> <말의 주인이 되는 시간> <꿈을 찍는 공방> <말씨 말투 말매무새> 등 말의 주인인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인문 교양서를 집필하면서 이 땅의 모든 말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일깨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서울의 말들 – 여기도 사투리 있걸랑>을 펴내어 서울말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고 그 가치를 새롭게 조명했습니다.
글 한성우(인하대학교 한국어문화과 교수) | 담당 양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