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5월 마침 달리기 좋은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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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are you a runner?”
워싱턴D.C.에서 방문 연구원 생활을 하던 3년 전, 취미 얘기를 나누다 미국인 친구가 문득 던진 질문이다. ‘달리기 좋아하느냐’ 정도의 뜻이었겠지만 한국식 문법 교육에 충실하던 내 머릿속에 떠오른 뉘앙스는 조금 달랐다. “당신은 러너입니까?” 썩 잘된 해석이라 할 수 없어도 어쩐지 세상엔 러너라는 부류의 사람이 따로 있다는 말처럼 느껴져서 마음에 들었다.
달리기에 막 재미를 붙여가던 나는 그날 이후 ‘러너’로 살고 있다. 지금은 가을에 열릴 마라톤 대회를 앞두고 훈련을 구상하는 중이다. 아마추어의 마라톤은 인간 승리의 처절한 사투로 자주 그려지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사실 꽤 즐기면서 뛸 수도 있다. 다만 그러려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준비해야 한다. 지금은 봄부터 가을까지 이어지는 새 시즌의 농사를 시작하는 시점이다.
첫 풀코스는 2023년 한국에 돌아와 참가한 춘천마라톤이었다. 3시간 14분 11초를 달려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뜻밖에 약간의 허무가 밀려왔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이 고생을 왜 사서 하고 있을까? 세상은 취미로 수채화를 그리거나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에게 왜 그런 걸 하느냐고 묻지 않지만, 42.195km를 달리겠다고 나선 사람에게는 왜냐고 묻는다. 마라톤은 축구나 농구처럼 재미있어 보이지도 않고 헬스처럼 남들이 부러워하는 몸을 만들어주지도 않는다. ‘왜’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은 아마추어 마라토너에게 일종의 숙명과도 같다.
달리기는 명상에 비유된다. 영적靈的 스포츠라는 이미지가 있다. 마라톤을 하면서 인생의 가르침을 얻었다든가 삶이 바뀌었다든가 하는 이야기도 많다. 내가 찾은 이유는 그렇게 거창한 게 아니다. 어쩌다 TV 중계를 볼 때마다 ‘저 지루한 걸 왜 하고 있을까’ 싶던 마라톤에 빠져든 것은 역설적으로 누가 알아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누구에게도 인정받을 필요가 없었기에 홀가분하게 달릴 수 있었다.
마라토너가 되기로 마음먹고 첫 풀코스 대회를 준비하던 여름, 월간 누적 주행거리 300km를 채우기 위해 비 오는 날에도 뛰었고, 심야에도 뛰었고, 비 오는 심야에도 뛰었다. 아무도 없는 새벽의 트랙에서 비 맞고 뛰고 있는 나를 누군가 봤다면 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일은 바빴고 아이도 돌봐야 했다. 그러나 업무나 육아처럼 주어진 일이 아니었기에 기꺼이 시간을 쪼갰다.
주로走路에서만큼은 직업인이자 아빠, 남편, 아들이라는 역할을 잠시 내려놓고 ‘나’로 돌아가 달릴 수 있다. 새로운 것, 설레는 것이 점차 줄어가는 내 삶에 아직은 의무 아닌 무언가가 남아 있다는 실감이 그때 찾아온다. 달릴 때 잡념으로 가득하던 머릿속이 가벼워지는 느낌과는 다른 차원의 해방감이다.
가을에는 아마추어 마라토너의 꿈이라는 서브 스리(풀코스 3시간 내 완주)에 도전하려고 한다. 과연 가능할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기록을 위해 훈련하고, 절주하며 적절한 ‘키빼몸’(키 빼기 몸무게, 110 전후를 이상적 수치로 본다)을 유지하고, 너무 나태해지지 말자고 다짐하는 일에는 그것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러너로 살아가는 행복은 목표 기록을 달성한 뒤에 알아서 찾아오는 게 아니라, 목표를 향해 가는 길에서 애써 찾아야 하는 것이다. 행복은 상태가 아닌 태도이기에,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달려보려고 한다. 마침 달리기 좋은 계절이다.
이 글에도 언급한 워싱턴D.C.의 방문 연구원 생활이 확정되면서 워싱턴D.C.와 미국의 건축에 대한 책을 쓰겠거니 했다는군요. 하지만 이방인이자 어린아이의 유일한 보호자로서 보낸 시간은 미술관, 학교, 놀이터, 식당 같은 ‘인생 공간’에 대한 생각을 모아주었다고 합니다. 그게 묶여 ‘건축 기자 아빠의 미국 소도시 생활기’라는 부제가 붙은 <모든 날 모든 장소>라는 책이 태어났습니다. “장소를 느낀다는 것은 삶을 보다 예민하게 감각하는 것”이라는 그의 글에 고개를 계속 끄덕이게 됩니다.
채민기 기자는 신문에 실리는 글을 쓰고 매만지는 일을 합니다. 조선일보 문화부에서 건축 분야를 취재하던 2021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딸과 둘이서 미국 워싱턴D.C.로 건너가 조지워싱턴 대학교의 방문 연구원이자 자발적·한시적 싱글 대디로 한 해를 보냈습니다. 지금은 국제부에서 세계 각국 소식을 독자에게 전합니다. 기자와 아빠라는 역할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글 채민기(조선일보 기자) | 담당 최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