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8월 치앙마이의 그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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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여행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 좋은 곳에 가서 좋은 걸 보고 와!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관광객이 가득한 명소에 갔다가 관광객이 가득한 식당에서 밥을 먹고, 관광객만 있는 숙소로 이동하는 게 여행의 전부인 걸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때마침 에어비앤비라는 숙박 시스템이 등장했다. ‘타인의 일상으로 들어가보세요. 진짜 여행을 해보세요.’
한동안 그런 여행을 즐겼다. 신선했다. 관광객이 오히려 구경거리가 되는 동네에서 잘 통하지 않는 말로 주문을 하고 진땀을 빼고, 커피를 받아 자리에 돌아와 창밖을 보면 햇살이 조금 더 투명해 보였다. 거슬리는 요소가 없었다. 나는 완전히 이질적인 존재였기 때문이다. 남의 인생에 들어간 듯, 사실은 무엇과도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골치 아플 일이 없었다. 이런 게 돈으로 사는 자유구나.
하지만 그래서였다. 어느 저녁, 한 기차역에서 엄청난 외로움을 느꼈다. 모두가 바쁘게 어딘가에 가고 있었다. 진짜 일상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목적지가 있었고 만날 사람이 있었다. 나에게는 없었다. 어디에도 갈 수 있지만 어디도 가고 싶지 않았다. 연결되지 않았다는 것은 동시에 외로워진다는 뜻이었다.
이럴 바엔 화려한 관광지에서 같은 관광객들과 공감할걸. 평범한 주택가엔 골목과 슈퍼마켓뿐이었다. 힐끔대는 시선도, 에어비앤비의 싸구려 가구도 싫어졌다. 이건 그냥 조금 불편한 일상이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또 비행기표를 검색했다. 분명 뭔가가 있을 텐데 하면서.
얼마 전에 치앙마이에 다녀왔다. 20만 원대 비행기표를 봤기 때문이다. 나는 집에서 일하니까 물가가 싼 치앙마이에서 지내면 생활비가 비슷하게 나올 것이라는 계산이 섰다(보통 이런 계산은 엄청나게 엉성하고, 높은 확률로 완전히 틀린다). 번역할 책과 노트북 등을 바리바리 싸 들고 한 달간 지낼 콘도에 도착했다. 일정이 빠듯해서 가자마자 작업을 시작했다. 주로 카페에서 작업했는데, 책을 놓을 거치대에 헤드폰까지 가지고 다녔더니 어깨가 뻐근했다. 아니 집의 작업 환경이 훨씬 좋은데 왜 난 여기서 조그만 노트북으로 씨름을 하고 있는 거야. 이쯤 되면 내 문제다. 여기선 이게 싫다, 저기선 저게 싫다. 어쩌라는 건가! 친구가 치앙마이 날씨는 어떠냐고 물어봤다. 몰라, 오늘 밖에 안 나가봐서⋯. 기력이 없어 배달 음식을 자주 시켜 먹었다. 그래도 치앙마이니까 수박 주스도 커피도 엄청나게 맛있었지만⋯.
원고를 보내고 드디어 여유가 생겼다. 갑자기 수영을 배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긍정적인 타이밍을 놓쳐선 안 된다. 나는 수영을 못 해서 사람들이 인생 사진을 찍는 인피니티 풀 구석에서 튜브에 바람을 넣곤 했다(그런 후 튜브 사용이 금지라는 말에 쓸쓸히 돌아가기도 했다). 돌고래처럼 수영하는 법을 가르친다는 선생님의 페이스북을 찾았다. 쪽지를 보냈다. “몇 번이라도 강습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이틀 뒤 강습이 시작되었다.
그는 의외로 엄격한 사람이라서 나는 뙤약볕 아래 30분 정도 자세를 연습한 다음 겨우 물에 들어갈 수 있었다. 기초는 중요하지만 나는 다음 주에 돌아가야 하는데…. 하지만 신기하게도 첫 번째 수업이 끝날 즈음 나는 뒤로 둥둥 뜰 수 있게 되었다. 밤에 살짝 수영장에 나가보았다. 우기의 밤하늘은 오히려 맑다. 한바탕 비가 내렸기 때문이다. 나는 낮에 배운 대로 몸을 슬쩍 눕혀보았다. 선생님 없이도 될까? 오늘의 레슨을 떠올렸다. “침대에 눕는다고 생각해. 물은 너를 도와줄 거야.” 떴다! 이거 내 소원이었는데. 물에 둥둥 떠서 밤하늘을 보는 것. 회색 구름, 남색 하늘, 노란 달, 멀리 날아가는 비행기.
나는 물 밖으로 겨우 나와 있는 입으로 혼잣말을 했다. “행복하다. 나 진짜 행복하다.” 어떤 여행이 내게 잘 맞는지는 아직도 탐구 중이고 아직 모르는 것이 많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치앙마이의 그 밤은 정말로 행복했다.
잠 못 드는 새벽, 마음을 위로해주는 ‘나만의 새벽 플레이리스트’는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입니다. 2010년대 홍대 인디 신의 전성기 한가운데를 지난 이들이라면 아마 그 리스트에 필시 오지은이 부른 ‘익숙한 새벽 세 시’가 있을 겁니다. 뮤지션이자 작가인 오지은이 이번 달 자신의 이야기를 보내주었습니다. 싱어송라이터로 인디 신을 이끌던 그 시절부터 자신만의 색이 묻어나는 작사로도 유명했죠. 그는 2007년 데뷔해 앨범 <지은> <3> 등을 발매했습니다. 프로젝트 그룹 ‘오지은과 늑대들’ ‘오지은서영호’ 등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2010년 여행 에세이 <홋카이도 보통열차>를 펴내며 작가로 데뷔해 <익숙한 새벽 세시> <마음이 하는 일> 등을 집필했으며, 최근엔 <아무튼, 영양제>를 발간했습니다. EBS 라디오 <오지은의 이런 나라도 떠나고 싶다>를 진행하며 DJ로 활약하기도 했으며, 현재는 유튜브 채널 <오지은 임이랑의 무슨 얘기>를 운영 중입니다.
글 오지은(뮤지션, 작가) | 담당 양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