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차가운 계절이면 프리지어꽃을 화병이나 물컵에 꽂아둔다. 열매인지 꽃인지 언뜻 구분이 가지 않는 그 노란색 꽃을 무척 좋아한다. 집사람과 연애하던 시절에는 한 번씩 프리지어꽃을 사 들고 갔다. 가난하던 그 시절에 프리지어꽃은 내가 전할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이었다. 그 꽃 틈으로 그림과 글을 섞어서 보내준 것이다. 그래서인지 프리지어를 보면 온몸 안에 옛 생각이 마구 엉킨다. 덤으로 노란 수선화도 좋아해서 ...
요즘은 상자도 참 흔한 세상이다. 소소한 물건 하나만 사더라도 튼튼하고 예쁜 상자에 담아 포장해준다. 내가 고른 물건이야 당연한 기쁨이지만, 덤으로 딸려온 상자는 의외의 행복감을 선사한다. 일회용일지언정 휙 던져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집은 좁으니 상자가 늘어나는 것이 문제가 아닌 건 아니다. 그렇지만 몇 주, 몇 달, 몇 년 혹은 몇십 년을 두고 완상玩賞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 뿐이겠는가. 끝내 버...
새해, 이 단어가 누구의 이름이기나 한 듯이 속으로 가만히 불러봅니다. 이름은 이르름, 어딘가에 이르고 싶은 뜻에서 나온 말이랍니다. 그래서 지난해 못다 했거나 실패한 일을 뒤로하고 새롭게 해보라고 부추기는 이름으로 새해를 부르겠습니다. 펼쳐질 한 해를 위해 이맘때쯤이면 언제나 결심이라는 것을 하곤 합니다. 밥을 좀 더 천천히 먹어야겠다. 칫솔을 입에 문 채로 수돗물을 먼저 틀지 말아야겠다. 목욕탕에서 머릿수...
따뜻함은 종교다. 아니, 종교 이상이며 종교 이전이다. 따뜻함이 없다면 풀씨 하나도 움트지 못할뿐더러 제아무리 뛰어난 유전자일지라도 생명력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좌절과 역경, 희망을 돌보는 종교는 어느 사원이나 돌탑이 아닌, 그 사원이나 돌탑을 세우게끔 한 어느 한 사람에게서 출발한다. 꺼지지도 흔들리지도 않는 따뜻함을 유지하던 한 사람, 그가 곧 사원의 첫 번째 주춧돌이자 창틀이며 범종이고 바이블...
지구는 가슴뿐인 신체다. 그도 처음엔 수족을 갖춘 몸이었겠지만 헤아릴 수 없는 우주 시간 속에서 자전과 공전을 거듭하는 사이 돌출부나 모난 곳은 다 마모되어 한 덩어리 둥근 가슴만 남았으리라. 풍파에 씻기고 깎여 너나없이 닮은꼴이 되어버린 해변의 몽돌들, 제아무리 개성파였을지라도 결국 엇비슷한 모습의 노인이 되고 마는 우리네 또한 일생이라는 단 한 번의 공전을 향해 쉬지 않고 자전하는 존재다.나의 공전축도 어...
힐링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열망이 힐링 열풍을 가져왔기에 아주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많은 분이 마음의 병은 다른 사람만이 고쳐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제가 스스로 마음의 병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릴까 합니다. 첫 번째 예방법은 자기 인식입니다. 우리 마음에는 ‘어른자기, 아이자기’ 두 자기가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 두 자기는 번갈아가면서 밖으로 나와 다른 ...
“우리 딸이 그리 공부를 잘하지 못해요. 이 녀석 중간 정도인 거지. 즈 엄마가 이에 만족을 하겠어요? 아빠인 내가 나서서 애가 공부를 좀 더 하도록 잔소리를 해달라고 해서 마음먹고 이야기를 시작했지. 암튼 중간보다 좀 더 잘해볼 수 있도록 독려도 하고 자극도 주려는 것이 목적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돌려가면서 묻고 들어주다가 성적 이야기를 하면서 ‘네가 중간이구나?’ 했더니 ‘아빠, 나는 중간이 아니고 중심이...
양창순 박사의 네 번째 글인터넷 서점을 둘러보다가 정이현 작가의 <너는 모른다>라는 책 제목에 눈길이 갔다. 그 제목을 보는 순간 “그래, 너는 모른다. 나 역시도 그렇지만…”이란 독백이 절로 나왔다. 아마도 요즘 계속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 때문이었던 듯하다. 누구도 결코 자신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생각. 그렇다면 스스로도 모른 채 저지르는 잘못은 어디까지 허용하고 이해해주어야 하는 걸까 하는 의...
양창순 박사의 세 번째 글강아지를 키우다 보니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 두 번은 산책을 나가야 한다. 어느 때는 새벽이나 늦은 밤에 집을 나서야 할 때도 있다. 산책을 거르면 녀석의 만만치 않은 반발에 부딪혀야 하는 탓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덕분에 얻는 것이 아주 많다는 점이다.우선 몸이 건강해진다. 늘 시간에 쫓기는 처지에 하루 두 번의 산책이라니, 전 같으면 그런 호사는 꿈도 꾸기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은 ...
양창순 박사의 두 번째 글나는 우리 속담에 관심이 많다. 언젠가는 속담과 심리를 엮어서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을 정도다. 상담을 할 때면 각기 상황에 맞는 속담을 하나씩 정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도 한다. 사람들의 반응도 좋다. 어렵게 느껴지던 문제들이 쉽고 재미있게 이해된다는 것이다. 새삼 우리 선조들의 현명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일 년 시집살이 못하는 사람 없고 벼 한 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