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창순 박사의 첫 번째 글봄에 피는 꽃은 대개 잎이 없다. 목련도 개나리도 진달래도 꽃이 피었다가 진 다음에야 잎이 돋는다. 그리고 그런 봄꽃은 아무리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도 애잔함이 느껴지곤 한다. ‘어째서 그런 걸까?’ 하는 의문이 올봄에서야 들었다. 그리고 생각해낸 답은 ‘꽃과 이파리가 영원히 만나는 일 없이 홀로 피었다가 지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꽃무리를 이루는 색채의 향연조차 절대 고독이...
차동엽 신부의 세 번째 글가장 오래된 질문이지만 아직도 똑 부러지는 답변을 얻지 못한 물음 가운데 하나가 ‘행복’에 관한 것이 아닐까. “행복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나?” 얼마나 쉬운 물음인가! 하지만 그 응답은 천차만별이며 많은 경우 핵심에서 비껴 있기 일쑤다.한 기자가 미국 최대 부호로 꼽히던 록펠러의 딸에게 물었다고 한다. “당신은 모든 여성이 부러워하는 사람입니다. 실제로 행복하십...
차동엽 신부의 두 번째 글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꿈’에 대해 말하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요즘 분위기는 영 딴판이다. 오히려 절망을 언급하면 공감하는 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나는 이 시대적 분위기에 찬성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절망을 수긍하는 것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는 말한다. “불행을 치유하는 약, 그것은 희망 외에는 없다.” 맞는 말...
차동엽 신부의 첫 번째 글 다섯 살 때 겨울의 끝자락, 봄바람이 여전히 서늘한 기운을 머금고 살랑거릴 즈음이었다. 동네 형과 누나들이 새 학기를 맞아 모두 학교엘 갔기 때문에, 내가 너덧 명쯤 되는 아이들 ‘왕초’가 되어 신나는 놀이를 주모했다. 우리는 주로 나보다 한 살 아래 재선이네 초막 돼지우리 옆에서 진을 치고 놀았다. 딱지치기도 하고 양지바른 볏짚 울타리에 기대어 햇볕도 쬐곤 했다.그러던 어느 날, ...
“두 살은 똥오줌 가리는 것이 자랑, 세 살은 이가 나는 것이 자랑, 열 살은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자랑, 스무 살은 섹스를 해봤다는 것이 자랑, 서른 살 넘어 쉰이 될 때까지는 돈 많은 것이 자랑, 예순 살은 아직도 섹스하는 것이 자랑, 일흔 살은 아직도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자랑, 여든 살은 아직도 자기 이가 남아 있다는 것이 자랑, 아흔 살은 똥오줌을 가리는 것이 자랑.” 오늘 아침, 친구가 어느 작가의...
장석주 시인의 세 번째 글한 선사禪師가 바위에 벽돌을 열심히 간다. 하도 이상해서 그 까닭을 물으니,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들려고 한다는 답이 돌아온다. 벽돌을 가는 이는 회양懷讓(677~744)이고, 그 까닭을 물은 이는 마조馬祖(709~788)다. 6대 조사로 꼽는 혜능慧能(638~714)이 “네 문하에서 젊은 말 한 마리가 나와 온 세상을 누빌 것이다”라고 한 이가 바로 마조다. 회양은 그 마조의 스승이...
장석주 시인의 두 번째 글
뜰 안의 산벚나무와 느티나무와 은행나무의 잎들이 먼저 누렇게 탈색이 되었다. 빨간 고추를 말리던 양광陽光은 눈부시지만 열기는 미지근하다. 계곡의 물들이 차가워지고 무서리 내리고 초본식물이 무릎을 꺾고 무너지면서 늦가을은 처연하다.늦가을의 나는 봄비에 연두를 머금고 촉촉하던 버드나무를 보던 날의 나와 다르다. 늦가을의 나는 몇 날 며칠 하늘이 구멍난 듯 장대비가 쏟아지던 그 여름의...
장석주 시인의 첫 번째 글귀 기울이면 집과 인접한 심씨沈氏 문중門中 소유의 밤나무 숲에서 후두두 알밤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새벽의 정밀靜謐을 깨고 밤나무 숲에 그득 차 있는 침묵의 깊이를 깨우는 소리다. 젖은 풀 위로 알밤들이 나신을 드러내고, 곧 부지런한 촌로들이 자루 하나씩을 어깨에 메고 이 열매들을 거두러 오리라. 밤나무 숲과 붙은 마른땅은 애초에 고추밭이었다. 열한해 전 나는 그 땅에 집을 짓고,...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우리가 그 집에 도착했을 때, 문가에 서서 부부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당연히 우리는 ‘환영합니다’란 말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런 말은 실생활이 아니라 책이나 영화에서나 쓰는 말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확신했다. 일생 동안 우리는 그런 말을 한 번도 직접 사용해본 적이 없으며, 마찬가지로 남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 조차도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다. _디미트리 ...
서명숙 씨의 네 번째 글 2007년 고향 제주로 30여 년 만에 귀향해 ‘사람이 사람답게 걸을 수 있는’ 제주 올레길을 내면서 내게는 또 다른 꿈이 싹트기 시작했다. 끊어진 길은 잇고, 사라진 길은 불러내고, 없는 길은 뚫어가면서 낸 이 길 위에서 ‘축제다운 축제’를 한판 벌여보는 것! 그런 꿈을 갖게 된 건 ‘한국형 축제’에 얽힌 쓰라린 기억 때문이다. 기자 시절 전국 이곳저곳의 축제 현장을 때로는 취재진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