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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겨울의 산속이었습니다. 여기저기 눈이 쌓여 있는데, 새끼 곰 한 마리가 눈도 제대로 뜨기 힘든 듯 둔한 몸으로 커다란 바위 아래서 비척비척 기어 나왔습니다. 시절로 볼 때, 곰은 한창 동면을 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는 왜 깨어난 것일까요? 카메라가 새끼 곰을 좇으니, 여기저기를 헤매고 있었습니다. 눈이 녹은 바위 위에 한참을 웅크리고 있다가 해 질 무렵이 되자 내려와, 다시 바위틈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것이었...
    2008.08
  •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이 ‘마음’이라고 한다. 그러기에 마음을 얻는 것이 천하를 얻는 일이요, 마음을 세우는 것이 나를 세우는 일이라 했던가. 이러한 마음을 전하고 마음을 얻고 마음을 간직하는 데 시詩만 한 것이 있으랴. 마음을 들여다보고 마음을 고르고 마음을 세우는 일은 시심詩心, 그러니까 시의 마음에 가깝다. 마음의 맨 윗길에서 가장 말갛게 제 스스로를 비추고 있는 것, 마음의 맨...
    2008.07
  •  지난 석가탄신일은 내 50돌이기도 했다. 살면서 인류 구원을 한 인물도 아니니 해마다 꼬박꼬박 찾아오는 생일이 뭐 그리 대단하랴. 우리 가족에게 생일이란 애틋한 카드 한 장으로 서로의 마음을 전하면 충분했다. 그래도 50돌은 좀 특별했던지 남편과 아이들이 며칠 머리 맞대고 꾀를 보태 <서유난 여사 일대기-전반전>이란 근사한 사진집을 만들어 선물로 내놓았다. 케이크 안엔 보석 선물도 들어 ...
    2008.06
  •  불평을 잘 늘어놓지 않는 아내가 가끔 소망인지 불만이지 모를 소리로 혼자 넋두리를 하곤 했다. 사실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몇 개월이라도 좋으니 꼬박꼬박 월급을 받아봤으면 한이 없겠다!” 솔직히 월급은 음악평론가와 같은 프리랜서에게는 아득한 단어다. 아내한테는 미안하다. 월급은 액수를 떠나서 살림하는 아내에게는 한 달의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준다는 장점이 있다. 들쑥날쑥한 프리랜서의 통장은 짜증...
    2008.05
  •  드디어 산딸나무를 구했다. ‘드디어’라고 말한 것은 꽤 오랫동안 그러기를 원했다는 표현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몇 년 전의 경험이 보태진다. 길가의 나무 장수가 산딸나무라고 파는 나무가 있어서 옳다구나 하고 한 그루 손에 들고 왔건만 나중에 다른 나무임을 알아낸 것이다. 흰색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네 장의 순백색 꽃잎이 여간 밝지 않아서 좋아했는데, 그것은 병아리꽃나무라는 이름이 붙은 나무였다. 어...
    2008.04
  • ‘아는 게 병’이라는 말이 왜 생겼는지 알 것 같다. 자판기 커피면 만족하는 저렴한 입맛이던 사람이 에스프레소에 맛을 들이고 나니 황금색 크레마가 없는 에스프레소가 나오면 화가 난다. 한때 청담동 근처를 다니는 사람들만 커피 맛에 그렇게 예민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맛이라는 게 알면 알수록 까다로워진다. 에스프레소 한 잔 마시려면 회사를 나와 한참을 걸어야 하는데도 가끔 그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영...
    2008.03
  • ‘나는 운이 참 좋은 사람이다’라며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는 순간이 있다. 주로 울다 말고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그렇다. 대책 없이 시작된 넋두리와 그 끝의 눈물바람을 죄다 받아주고 있는 수화기 너머 누군가. 때론 “울지 마, 바보야”라고 말해주기도 하고, 때론 “그래, 실컷 울어, 바보야”라고 말해주기도 하며, 또 가끔은 그저 침묵으로 가만가만 달래주는 친구. 그렇다. 몇 안 되는, 내 오래된 친구...
    2008.02
  • 나는 장영희 서강대 교수의 칼럼을 좋아한다. 착하고 곱게 세상을 보는 마음이 신문지 바깥까지 배어 나오는 데 감동한 나머지 팬레터를 보낸 적도 있다. 하지만 장 교수의 칼럼이 내 글과 나란히 실린 날이면 전전긍긍한다. 장 교수 글이 훨씬 좋은 건 어쩔 수 없다 쳐도, 독자들이 착한 신데렐라(장 교수 글)와 사악한 계모(내 글)를 보듯 비교할 것 같아 혼자 찔릴 때가 많다. “신문에 난 당신의 글을 읽으면 마음...
    2008.01
  •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집을 떠났다. 공부를 해야 한다며 미국으로 훌쩍 떠나버렸다. 매일같이 얼굴을 보던 아들을 이젠 방학에나 겨우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내는 내가 그렇게 얘기하는 것 자체를 섭섭해하지만, 나는 머지않아 그 녀석이 방학에도 무슨 중요한 할 일이 있다며 집에 못 올 것 같다고 통보해 올 것을 각오하고 있다. 이젠 내 둥지를 떠난 것이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이젠 우리 식구가 아니다. 적어...
    2007.12
  • 아내는 올해 내 생일 선물로 1인용 소파 하나를 들여놓았다. 가족이 모이기로 한 날 저녁 집에 돌아와 보니 이 깜짝 선물이 마치 오래전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거실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된 골조 위에 빨간색 매트리스로 된 몸체가 S자 모양의 굴곡을 이루며 비스듬히 얹혀져 있고, 그 옆에는 책이나 찻잔 같은 물건을 올려놓을 수 있는 자그마한 유리 탁자가 붙어 있었다.근래에 이렇게 마음...
    20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