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주신 책을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소박한 정원>이라는 책을 옆에 두고 조금씩 읽으니 마음이 편해집니다. 정원 때문에 생각났는가 봅니다. 1987년 10월 15일 폭풍우가 영국 남부를 덮쳐서 무려 1억 5천만 그루의 나무가 뿌리째 뽑히는 큰 재해를 겪었답니다. 그 처참한 현장은 재앙 그 자체여서 연일, 그리고 오랫동안 앞다투어 보도되었다고 합니다.이로써 여러 가지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
남서풍에 향기가 실려 오고, 귀뚜라미 울음이 느려지기 시작하면서 밤하늘의 별자리가 바뀌는 이맘때는 늘 아름다웠다. 어떤 맑은 날, 편지함 옆의 흰 자작나무 위로 흰 기러기 떼가 날아가는 광경은 숨 막힐 만치 아름답다. -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 중이 글귀를 날려 보낸 사람한테 일단 잠깐 감사, 그리고 나중에 시간 나면 보아야지 하고 옆으로 미뤄두었습니다. 그리고 까맣게 잊고 있다가 이 시를 보...
“이게 뭐야?”“그러기에 들어오지 말라니까….”친구는 머쓱하게 제가 앉을 자리를 만들면서 도리어 왜 왔느냐고 핀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아직 짐을 못 풀었어… 아마 마음의 짐이 안 풀렸는지도 모르지….”씁쓸하게 고개를 돌리는 그녀는 남편과 거의 헤어질 것 같은 상황을 맞고 있었습니다.이렇게 따로 나오기 전의 그녀와 집은 남다른 눈썰미, 손맛, 거기에 깔끔함까지 갖추어 친구들이 부러움의 시선을 보내고 자문까지 ...
“으메, 이거 무신 맛이여. 오줌 맛만도 못한 걸 어떻게 돈을 받고 팔 수가 있데그려. 물장사, 물장사라 카드니 이럴 때 쓰는 말인겨.” 고속도로 휴게실에는 쏟아놓은 승객들로 왁자지껄한데 어느 아주머니가 하는 말이었습니다. 무얼 가지고 그러는 걸까, 뒤돌아보니 이온 음료 캔을 한 모금 뱉어내면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제 손에도 같은 캔이 들려 있었으니 “몇 번 마셔보세요. 저도 처음에는 그랬다니까요. 나중에는 ...
한겨울의 산속이었습니다. 여기저기 눈이 쌓여 있는데, 새끼 곰 한 마리가 눈도 제대로 뜨기 힘든 듯 둔한 몸으로 커다란 바위 아래서 비척비척 기어 나왔습니다. 시절로 볼 때, 곰은 한창 동면을 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는 왜 깨어난 것일까요? 카메라가 새끼 곰을 좇으니, 여기저기를 헤매고 있었습니다. 눈이 녹은 바위 위에 한참을 웅크리고 있다가 해 질 무렵이 되자 내려와, 다시 바위틈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것이었...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이 ‘마음’이라고 한다. 그러기에 마음을 얻는 것이 천하를 얻는 일이요, 마음을 세우는 것이 나를 세우는 일이라 했던가. 이러한 마음을 전하고 마음을 얻고 마음을 간직하는 데 시詩만 한 것이 있으랴. 마음을 들여다보고 마음을 고르고 마음을 세우는 일은 시심詩心, 그러니까 시의 마음에 가깝다. 마음의 맨 윗길에서 가장 말갛게 제 스스로를 비추고 있는 것, 마음의 맨...
지난 석가탄신일은 내 50돌이기도 했다. 살면서 인류 구원을 한 인물도 아니니 해마다 꼬박꼬박 찾아오는 생일이 뭐 그리 대단하랴. 우리 가족에게 생일이란 애틋한 카드 한 장으로 서로의 마음을 전하면 충분했다. 그래도 50돌은 좀 특별했던지 남편과 아이들이 며칠 머리 맞대고 꾀를 보태 <서유난 여사 일대기-전반전>이란 근사한 사진집을 만들어 선물로 내놓았다. 케이크 안엔 보석 선물도 들어 ...
불평을 잘 늘어놓지 않는 아내가 가끔 소망인지 불만이지 모를 소리로 혼자 넋두리를 하곤 했다. 사실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몇 개월이라도 좋으니 꼬박꼬박 월급을 받아봤으면 한이 없겠다!” 솔직히 월급은 음악평론가와 같은 프리랜서에게는 아득한 단어다. 아내한테는 미안하다. 월급은 액수를 떠나서 살림하는 아내에게는 한 달의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준다는 장점이 있다. 들쑥날쑥한 프리랜서의 통장은 짜증...
드디어 산딸나무를 구했다. ‘드디어’라고 말한 것은 꽤 오랫동안 그러기를 원했다는 표현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몇 년 전의 경험이 보태진다. 길가의 나무 장수가 산딸나무라고 파는 나무가 있어서 옳다구나 하고 한 그루 손에 들고 왔건만 나중에 다른 나무임을 알아낸 것이다. 흰색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네 장의 순백색 꽃잎이 여간 밝지 않아서 좋아했는데, 그것은 병아리꽃나무라는 이름이 붙은 나무였다. 어...
‘아는 게 병’이라는 말이 왜 생겼는지 알 것 같다. 자판기 커피면 만족하는 저렴한 입맛이던 사람이 에스프레소에 맛을 들이고 나니 황금색 크레마가 없는 에스프레소가 나오면 화가 난다. 한때 청담동 근처를 다니는 사람들만 커피 맛에 그렇게 예민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맛이라는 게 알면 알수록 까다로워진다. 에스프레소 한 잔 마시려면 회사를 나와 한참을 걸어야 하는데도 가끔 그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