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03월 절망을 견디는 힘 (차동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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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동엽 신부의 두 번째 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꿈’에 대해 말하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요즘 분위기는 영 딴판이다. 오히려 절망을 언급하면 공감하는 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나는 이 시대적 분위기에 찬성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절망을 수긍하는 것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는 말한다. “불행을 치유하는 약, 그것은 희망 외에는 없다.” 맞는 말이다. 절망을 몰아내는 것은 희망뿐이다.
만약 집 안에 강도가 들었다고 치자. 어떻게 할까? 일단 두 눈 딱 감고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하지만 예상보다 강도는 민첩하고 힘이 세다. 조용히 물건만 훔치려던 강도가 난폭해져 위협하고 위기의식을 느낀 당사자는 오히려 ‘가만 있는 게 더 좋았을 것’이라며 후회한다. 최악의 시나리오다. 이럴 때 최선의 방법은 경찰을 부르는 것이다. 경찰이 오면 강도는 제압되고 만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삶에 절망할 때 절망이라는 강도를 물리치는 최선의 방법은 희망이라는 경찰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절망감이 엄습할 때 절망을 상대로 씨름을 해서는 절망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절망이 밀려올 때 절망을 보지 않고 희망을 붙들면 절망은 발붙일 틈이 없게 된다. 어둠이 엄습했을 때 이를 몰아내는 방법은 무엇인가? 펌프로 퍼낸다고 어둠이 사라질까? 방법은 오직 하나다. 빛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대체의 법칙’이라 부른다. 심리학에 기초를 둔 이 원리는 말하자면 이렇다. “사람의 뇌는 두 가지 반대 감정을 동시에 지닐 수 없다. 곧 사람의 머리에는 오직 한 의자만 놓여 있어 여기에 절망이 먼저 앉아버리면 희망이 함께 앉을 수 없고, 반대로 희망이 먼저 앉아버리면 절망이 함께 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법칙을 올바로 깨닫기만 해도 우리는 절망을 쉽사리 대적할 수 있다. 의자는 하나다. 절망하고 있을 땐 희망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절망을 없애려고 하지 말고 희망을 붙잡는 것이 상책이다. 절망하거나 싸우지 말고 자꾸 희망을 가져야 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희망으로 넘지 못하는 절망을 견디는 힘은 사랑에서 나온다. 사랑! 그 리얼한 교환의 현장이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한 장면에서 클로즈업된다. 이 영화는 러시아에 사는 유대인들의 고통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테빗의 아내는 살기가 너무 힘들어 테빗에게 갖가지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러자 테빗이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한다.
“Do you love me?(당신은 나를 사랑하오?)”
그러나 아내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또다시 자신의 고통을 호소한다. 자신이 25년 동안 아이를 낳으면서 힘들고 어렵게 살았다는 둥 그간 고생한 이야기를 죽 늘어놓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테빗이 다시 한 번 말한다.
“I know that, But do you love me?(그것은 알고 있소, 그러나 당신은 나를 사랑하오?)”
이 이야기를 우리는 반어법으로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아내의 끊임없는 불평에 동문서답으로 응하는 것 같이 보이는 테빗의 말 속에는 그의 속 깊은 사랑의 철학이 담겨 있다.
“당신이 힘든 것 이상으로 나도 힘들다고! 요즘 세상 살기가 얼마나 각박한 줄 알아? 더구나 러시아에서 유배자처럼 살아야 하는 내 처지가 얼마나 고달픈 줄 알아? 당신이 쏟아내는 불평불만보다 나는 더 힘들단 말이야. 하지만 나는 결코 그 불평불만을 당신 앞에 늘어놓지 않아. 왠 줄 알아?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야. 당신을 사랑하기에 나는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다고. 그래서 묻는 거야. 당신은 정말 날 사랑해?”
결국 이건 치유의 말이다. 사랑 하나만 있으면 삶의 애환 따윈 쉽게 견뎌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절망<희망<사랑. 요약하자면 이들의 힘의 세기는 이렇게 나열할 수 있겠지요. 연탄 배달, 쌀 배달을 하던 어린 시절부터 ‘희망’으로 점철된 인생을 산 차동엽 신부. 지금은 사제로서 사람을 ‘사랑하고’ ‘살리는’ 일에 힘쓰는 그의 삶에서 바로 이 부등식을 발견합니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졸업, 서울 가톨릭대학교·오스트리아 빈 대학교· 미국 보스턴대학교 등에서 수학,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1991년 사제로 서품까지 이어진 인생의 행로마다 그는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는 희망을 무기처럼 품고 살았다는군요. 행복의 이정표 같은 밀리언셀러 <무지개 원리>를 썼고, 얼마 전 <잊혀진 질문:내 가슴을 다시 뛰게 할>을 통해 우리 고달픈 인생들의 흉금을 대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