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이 연구에 몰두하면 다른 일은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지요. 만년의 그가 난로 곁에 있으려니 더워서 견딜 수가 없어서, 참다못해 하인을 불러 난로의 타는 불을 꺼내버리라고 했답니다.“선생님, 그렇게 더우면 어째서 의자를 뒤로 물리지 않으십니까?”“아, 그렇군! 그런 방법도 있었군.”언젠가 겨울에 여러 명이 유럽을 여행했습니다. 런던에서 비행기로 두 시간 걸리는 다른 도시를 가려는 날,...
빅토르 안,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귀화한 러시아에 최초의 쇼트트랙 금메달을 안겨준 안현수 선수의 러시아 이름입니다. 그를 러시아에 보낸 상황을 떠올리면 속상하지만 재기에 성공한 그의 멋진 스토리에 우리 국민도 함께 즐거워했습니다. 금메달만큼이나 러브 스토리도 화제였죠. 안 선수 부부의 몸에는 서로에 대한 사랑 고백을 담은 문신이 있는데 ‘You complete me’라는 강력한 사랑 고백입니다.‘You com...
60대 후반의 여성이 남편과 딸과 함께 외래 진료실을 찾았다. 앉자마자 속상한 과거사를 어제 일처럼 쉼 없이 30분 가까이 이야기했다. 가족이 “다른 환자도 보셔야 하니 다음에 또 와요”라고 하는데도 이미 한 이야기를 새 이야기처럼 또 했다. “언제 이 일을 겪으셨나요?”라고 묻자 가족이 “40년도 넘은 이야기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과거의 상처, 즉 트라우마에 갇혀버리면 몸은 현재에 있는데 마음은 과거의 괴로...
6월, 어느덧 한 해의 가운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6월부터의 시간을 우리는 하절기라고 부르지요. 사람의 인생에서 하절기가 시작되는 시간을 우리는 특별히 ‘중년’이라고 부릅니다. 남자는 눈물이 많아지고 여자는 ‘나’를 되찾는 자유를 누리고 싶어지는 특별한 변화가 일어 나는 시기입니다. 원래 남자는 여자에 비해 눈물과 친하지 않습니다. 여자가 남자에 비해 우는 횟수도 많고 더 길게, 더 세게 웁니다. 그런데 ...
스트레스는 우리를 열심히 살도록 하는 내 마음의 시스템입니다. 미래를 대비해 지금 성실하게 일해야 한다고 우리 마음을 재촉하는 시스템이지요. 그러나 달려만 가는 인생엔 피로가 몰려오고, 막상 성취한 내 인생의 소중한 콘텐츠도 의미 없이 허무하게 느껴지기 쉽습니다.피곤하고 지친 뇌에 어떻게 다시 효과적으로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느냐 궁금해하시는 분이 많은데요, 내 인생의 소중한 것들을 잘 즐기기 위해선 내 마음...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 ‘죽기 전에 꼭 해보아야 할 일’에 관한 책도 많고 신문이나 잡지 기사들도 자주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죽기 전에 꼭 가보아야 할 여행지’나 ‘죽기 전에 꼭 보아야 할 명화와 명작’ 등 사실 인간이 죽기 전에 꼭 해보아야 할 일이 좀 많겠는가. 문제는 시간이나 돈이 개입되면 일이 순수한 소망대로만 풀리지 않는 데에 있다. 깊게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나에게도 그런 일이 몇 가지...
지하철역에서 계단을 올라오는데 문득 “내가 들러리야?”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울분과 짜증이 섞인 여성의 성마른 목소리였다. 그런데 그 말의 의미와 상관없이 ‘들러리’라는 말의 발음이 무척 아름답게 내 마음에 울렸다. ‘들, 러, 리…’에서 ㄹ은 유음流音이기 때문에 무언가 부드럽게 잘 풀려서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그렇듯이 ‘들러리’란 서양식 결혼식에서 신랑이나 신부를 식장으로 원활히 인도하는 사람을...
남에게 ‘보여지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현대인은 인간이 ‘시각적 주체’라는 것에 대체로 수긍하고 살아간다. 그것은 인간이 육체라는 물질성과 공간성을 차지하고 있는 동안에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이기도 하다. 물질이나 공간은 늘 타인 의 눈에 노출되어 ‘보여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존재가 시각적 담론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없어 보이면 지는 거다’ ‘약해 보이면 죽는 거다’와 같은 이 시대의...
지금까지 살면서 총 열다섯 번 이사를 했다. 이 말을 듣는 사람들은 ‘큰돈 벌었겠구나’ 생각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아마도 내가 조금이라도 그런 이재에 밝았다면 큰돈을 벌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심한 경우 한 해에 두 번 이사한 적도 있다. 옮길 수밖에 없어서 이사한 적이 많지만, ‘아 여기서 한번 살아볼까’ 하는 마음으로 이사한 적도 있다. 어떤 사람은 내게 이사가 취미냐고 빈정거리기도 했다. 지금 되돌...
지금부터 20년 전쯤 결혼을 할 때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당시 수입이라곤 시간강사 월급이 전부였다. 나를 딱하게 여긴 선배들이 만들어준 시간강사 자리였다. 한 곳은 군산에 있는 대학이었고 다른 한 곳은 천안이었다. 군산은 새벽 4시에 일어나 첫 고속버스를 타야 9시에 시작하는 첫 수업에 맞출 수 있었다. 이틀에 할 수업을 하루에 몰아서 하는 탓에 점심도 간신히 먹고 오후 6시까지 연속해서 수업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