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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올빼미형 인간에서 아침형 인간으로 바뀐 것은 14년 전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후였다. 하루아침에 바로 아침형 인간이 되어버렸다. 나는 일본 유학 시절까지는 밤에 절대 잠을 잘 수 없는 DNA를 타고난 인간쯤으로 생각하고 생활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 아침 9시에 수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한 톨 미련도 없이 올빼미형 생활 습관을 바로 버렸다. 일본에 있는 7년 동안 내 생활은 단...
    2014.10
  • 그날 내가 본 것이 무엇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어쩌면 두근거림일 수도 있고 어쩌면 아름다움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나는 그 풍경에 몸을 흠씬 두들겨 맞은 듯한, 어쩌면 수십 분을 된통 끌려다니다 마침내 사지가 너덜너덜해졌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초가을의 문턱, 어느 나무 아래에서 일어난 일이다. 교복을 입은 한 소녀가 호젓한 길을 걷는다. 어깨엔 가방을 메고, 한 손엔 노트 같은 것이 들려 있다. ...
    2014.09
  • 오랜만에 느긋하게 맞는 일요일, 혼자 먹을 거지만 늦은 아침 겸 점심을 공들여 차려봅니다. 오늘 메뉴는 냉콩국수. 음악도 알맞은 볼륨으로 틀어놓고, 반찬 두 가지 예쁘게 덜어놓고 숟가락 가지런히… 이제 콩국만 부으면 끝! 우아하게 식사할 차례입니다. 그런데 냉장고에 넣어둔 콩국 담은 유리병을 꺼내다가 그만 에쿠!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와우, 그 두 가지 다른 물질의 파편이라니…. 어렵사리 만든 진한 콩국이 사...
    2014.08
  • 지오를 만난 건 어느 단체에서 마련한 한글학교에서였다. 그는 베트남 출신의 근로자로 우리나라에 약 2년간 머물렀는데 두 차례 특강이랍시고 한글학교에 출강했다가 알게 되었다. 질문을 많이 했고 질문 수준 또한 남다른 구석이 있어 마음이 많이 간 친구였다. 수업이 끝나고 메일 주소를 알려달라고 해서 알려주었더니 그가 일을 하지 않는 날 내가 사는 그 먼 데까지 찾아와 몇 번 만나기도 했다. 저녁이 아닌 낮에 본 ...
    2014.07
  • 숲에 들어갔다가 잠시 놀랐습니다.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초록을 보러 들어갔다가 보러 간 그 눈은 감고 오랜만에 풍겨오는 풀 냄새를 맡았습니다. 어디선가 기계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 잡초를 베고 있는 듯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향하는 숲 속으로 점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초록의 냄새가 짙어졌습니다. 인적이라곤 하나 없는 그 숲을 이토록 짙푸르게 장악하는 냄새. 그래도 어딘가 깊숙이까지 가봐야...
    2014.06
  • 1년 전 나는 섬에 있었다. 섬 여행이 특별하고도 각별한 취미가 된 것이 고등학교 때부터였으니 섬에 들고 나고 한 지도 꽤 오래된 일이 되었다. 그때 섬에 간 것은 힘겨운 일 때문이었다. 그 일 을 일일이 열거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조금만 밝히자면 당시 많이 믿는 한 사람이 있었고 그 믿는 사람에게 거짓말과 오물을 된통 뒤집어쓴 일이 있었다. 용서하자니 내가 뭐라고 감히 한 사람을 용서할까도 싶었고, 그냥 ...
    2014.05
  • 지난 2월, 세계 최고령 피아니스트이자 세계 최고령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알리스 헤르츠좀머Alice Herz-Sommer가 11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내가 알리스를 알게 된 것은 <백 년의 지혜>라는 책을 번역하면서였다. 번역 작업을 하면서 지면으로 대단한 인물을 많이 만났지만, 알리스처럼 강인하고 낙관적인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사람이 인생에서 얼마나 큰 고통을 겪을 수 있는지, 얼마나 의연...
    2014.04
  •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장은 꽃 시장이다. 번역 작업에 쫓기지 않을 때면 자주 꽃 시장에 간다. 평생 알파벳으로 된 검은 활자에 갇혀 살아서인지 고운 꽃을 보면 설레고 딴 세상에 들어선 기분을 느낀다. 어릴 때 늘 집에 꽃이 있었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10년 이상 꽃꽂이를 배우셨고 전시회에도 참여하셨다. 그래서인지 요즘도 나는 손님이 오는 날은 장보기나 청소보다 꽃부터 챙긴다. 손님 대접에 음식을 가...
    2014.03
  • 음악을 하는 사람은 연주할 때 열심히 들어주는 사람이 제일 고맙다. 연주를 하는데 잡담을 하거나 딴청을 부리는 사람처럼 얄미운 사람은 없다. 그래서 나는 청중이 먹거나 마실 때에는 절대로 연주하지 않는다. 공자는 남이 노래 부를 때는 열심히 들었을 뿐만 아니라, 잘 부르면 다시 불러달라고 재청을 하고 뒤이어 함께 따라 불렀다니 정말 음악을 들을 줄 아는 모범적인 청중이었다. 공자는 식욕이 좋았고 특히 고기를 ...
    2014.02
  • <논어>에 공자가 자기 자신이 이런 사람이라고 말씀한, 즉 자화상에 해당하는 구절이 있다. “그(공자)의 사람됨은 발분하면 밥 먹는 것도 잊고, 즐거움으로 걱정을 잊으며, 늙음이 닥쳐오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초나라의 섭공(섭葉 지방의 관리인 심제량)이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에게 공자의 사람됨이 어떠한지 묻자 자로가 대답하지 못하였는데 이 일을 공자에게 말하자 “너는 왜 내가 이런 사...
    201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