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
‘쉬다’의 명사형은 ‘쉼’
‘자다’의 명사형은 ‘잠’,
이렇게 동사를 정리하면 곧 명사가 됩니다.
‘놀다’는 ‘놀음’도, ‘노름’도 되는군요.
‘놀다’를 수동으로 만들어보면 ‘놀리다’가 되니,
‘논다’라는 단어는 조금만 옆으로 가도 변형이 묘하게 일어나네요.
‘노름’을 왜 운칠기삼이라고 하는지를 알려준 분이 ...
최근에 나를 마주하는 게 어색한 순간들이 있었다. 그동안 나는 내가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인 줄 알았다. 얼마 전, 우연한 계기로 어떤 포럼에 참여한 일이 있다. 어쩌다 보니 뒤풀이 자리에 합석하게 됐는데, 한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도통 종잡을 수가 없었다. 하는 일이든 관심사든 취향이든, 나와는 판이한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 내 앞에 놓인 물만 자꾸 홀짝였다. “...
얼마 전 수학자 마이클 아티야Michael Atiyah 박사의 강연이 큰 화제가 되었다. 그가 수학의 가장 유명한 난제 중 하나인 ‘리만 가설(Riemann Hypothesis)’을 증명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매년 열리는 하이델베르크 석학 포럼은 젊은 학자들에게 수학과 계산 과학을 연구하는 최고 석학들의 이야기를 듣고 대화를 나눌 기회를 제공하는 목적의 행사로, 최근 학문 동향에 대한 개괄적 내용이나 거시...
물러설 것 같지 않던 무더위가 떠난 산촌에 가을빛이 참 곱다. 샛물 흐르는 곳 양지 녘에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집을 짓고 아내와 함께 산촌에 산다. 장닭이 홰를 친 지는 오래되었다. 알싸한 공기가 방 안 가득하다. 고양이 오월이가 문 앞에서 얼른 나오라고 야옹거리면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창문을 연다. 안개 낀 앞산이 신비롭다. 빨랫줄에 이슬이 은방울처럼 맺혔다. 여름내 꽃을 피운 무궁화는 오늘도 꽃봉오리를...
가을
어려운 학업을 마친 소년처럼
가을이 의젓하게 돌아오고 있습니다
푸른 모자를 높게 쓰고
맑은 눈을 하고 청초한 얼굴로
인사를 하러 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참으로 더웠었지요” 하며
먼 곳을 돌아돌아
어려운 학업을 마친 소년처럼
가을이 의젓하게 높은 구름의 고개를 넘어오고 있습니다
-조병화
&...
몇 해 전 미국 버클리에 머문 적이 있다. 버클리는 샌프란시스코 바로 옆에 위치한 도시로, 바다가 아름답다. 샌프란시스코를 향해 길게 뻗은 잔교가 유명하다. 이 잔교 옆에 해산물 식당이 있다. 제법 고급 식당이라 내 돈 주고 가서 먹기는 좀 어려운 곳인데, 어느 날 초대를 받았다. 부두는 요트로 가득했고, 따뜻하고 맑은 햇살이 비쳐 그곳에 잠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의, 적어도 그 순간의 생이 찬란한 여유로 가득...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초년생이 되어 독립한 이후 거쳐온 수많은 원룸이 요즘 들어 가끔 떠오른다. 3~4분 정도면 청소가 끝날만큼 자그맣던 방들. 이불을 바꾸거나 책상에 놓을 스탠드의 디자인을 선택하는 게 대단한 이벤트였고, 창밖으로 하늘은커녕 옆 건물의 벽만 보여 숨이 막히기도 했지만, 거기서 보낸 온전히 혼자였던 시간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함으로 몸 곳곳에 스며들어 나의 일부가 되었다.
...
“밤의 문신을 읽어내고, 정오의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가면 또한 벗겨내야 한다.” 옥타비오 파스Octavio Paz는 그의 시 ‘깨어진 항아리’에서 그렇게 노래했다. 멕시코의 언어에 대해, 그리고 옥타비오 파스의 시에 대해 문외한인 나는 “햇볕으로 목욕하고 밤의 과실을 따 먹으며 별과 강이 쓰는 글자를 해독해야 한다”는 그의 시를 이해하기보다 다만 느낄 뿐이다. 그런데 왜 나는 대륙의 횃불 밑에 앉아 그...
엑상프로방스에 도착한 것은 지난 1월 29일. 몸담고 있는 대학에서 연구년을 받아 1년간 살 예정으로 이곳에 왔다. 극심한 한파로 베란다의 세탁기가 얼어붙는 바람에 공동 세탁실을 이용하다 온 탓에 더욱 그랬겠지만, 겨울 같지 않은 이곳 날씨가 참 좋았다. 더구나 눈을 시리게 만드는 파랗고 맑은 하늘을 보자니 과분한 대접을 받는 것 같아 송구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떠나온 한국 날씨를 검색하며 여전한 한파를 확...
얼마 전 글쓰기 강좌를 개강했다. 첫날 자기소개 시간에 ‘왜 글쓰기를 배우는지’ ‘무슨 글을 쓰고 싶은지’ 스물다섯 명이 돌아가면서 이야기했다.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모이다 보니 그 내용도 제각각이다. “올해는 꼭 책을 내고 싶다” “남에게 관심받는 게 좋아서 쓴다” “몸이 아팠던 경험을 정리해보고 싶다” “글 쓰는 게 제일 돈이 안 들고 재밌다” 등등 새 학기를 맞는 신입생처럼 다 큰 어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