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 몇 해 전 미국 버클리에 머문 적이 있다. 버클리는 샌프란시스코 바로 옆에 위치한 도시로, 바다가 아름답다. 샌프란시스코를 향해 길게 뻗은 잔교가 유명하다. 이 잔교 옆에 해산물 식당이 있다. 제법 고급 식당이라 내 돈 주고 가서 먹기는 좀 어려운 곳인데, 어느 날 초대를 받았다. 부두는 요트로 가득했고, 따뜻하고 맑은 햇살이 비쳐 그곳에 잠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의, 적어도 그 순간의 생이 찬란한 여유로 가득...
    2018.07
  •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초년생이 되어 독립한 이후 거쳐온 수많은 원룸이 요즘 들어 가끔 떠오른다. 3~4분 정도면 청소가 끝날만큼 자그맣던 방들. 이불을 바꾸거나 책상에 놓을 스탠드의 디자인을 선택하는 게 대단한 이벤트였고, 창밖으로 하늘은커녕 옆 건물의 벽만 보여 숨이 막히기도 했지만, 거기서 보낸 온전히 혼자였던 시간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함으로 몸 곳곳에 스며들어 나의 일부가 되었다.  ...
    2018.06
  • “밤의 문신을 읽어내고, 정오의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가면 또한 벗겨내야 한다.” 옥타비오 파스Octavio Paz는 그의 시 ‘깨어진 항아리’에서 그렇게 노래했다. 멕시코의 언어에 대해, 그리고 옥타비오 파스의 시에 대해 문외한인 나는 “햇볕으로 목욕하고 밤의 과실을 따 먹으며 별과 강이 쓰는 글자를 해독해야 한다”는 그의 시를 이해하기보다 다만 느낄 뿐이다. 그런데 왜 나는 대륙의 횃불 밑에 앉아 그...
    2018.05
  • 엑상프로방스에 도착한 것은 지난 1월 29일. 몸담고 있는 대학에서 연구년을 받아 1년간 살 예정으로 이곳에 왔다. 극심한 한파로 베란다의 세탁기가 얼어붙는 바람에 공동 세탁실을 이용하다 온 탓에 더욱 그랬겠지만, 겨울 같지 않은 이곳 날씨가 참 좋았다. 더구나 눈을 시리게 만드는 파랗고 맑은 하늘을 보자니 과분한 대접을 받는 것 같아 송구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떠나온 한국 날씨를 검색하며 여전한 한파를 확...
    2018.04
  • 얼마 전 글쓰기 강좌를 개강했다. 첫날 자기소개 시간에 ‘왜 글쓰기를 배우는지’ ‘무슨 글을 쓰고 싶은지’ 스물다섯 명이 돌아가면서 이야기했다.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모이다 보니 그 내용도 제각각이다. “올해는 꼭 책을 내고 싶다” “남에게 관심받는 게 좋아서 쓴다” “몸이 아팠던 경험을 정리해보고 싶다” “글 쓰는 게 제일 돈이 안 들고 재밌다” 등등 새 학기를 맞는 신입생처럼 다 큰 어른들...
    2018.03
  • 우리 식탁에 어느새 빵이 밥보다 더 자주 오르고 있습니다. 빵을 본고장 유럽보다 더 맛있게 만드는 재주 많은 사람도 속속 등장하고, 올리브 오일이 근사한 테이블 세팅과 함께 들기름ㆍ참기름보다 더 자주 소개됩니다. 오래전 애국자를 자처하며 외제라면 애써 피하던 저에게 누군가가 세상을 바꾸려거든 남의 것이라도 성공한 가장 좋은 것을 사용해봐야 우리 것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해준 적이 있습니다. 예컨대 절대적으로 ...
    2018.02
  • “올해가 가기 전에 한번 봐야지.” 연말이 되면 으레 친구들에게서 이런 연락이 오지만, 해가 갈수록 사람이 많은 시끌벅적한 모임이 재미없고 피곤하다. 그러다보니 ‘이날은 안 되고 이날도 안 되네’ 하는 식으로 만남에 수동적 태도가 된다. 지난 연말, 반갑고 유쾌한 모임도 있었지만 빨리 집에 가서 발 닦고 자고 싶어지는 모임도 있었다. 그중 한 친구를 만난 일이 내내 기억에 남는다.   “왜 그렇게 ...
    2018.01
  • 이 질문 좋죠? 남에게 장난삼아 물어도 좋고, 스스로에게 물어도 좋지 않나요? 그리고 ‘지금 나는 남에게 어떤 존재일까?’ ‘더 나이 들면 어떤 삶을 살게 될까?’를 생각해보기에도 적절한 질문 같습니다. 글자도 참 비슷하게 생겼네요. 둘 다 네모난 큰 가방을 들고 있어요. 그 가방 속에 쓸데없는 것이 가득하면 짐이고, 남에게 꺼내어줄 게 있으면 힘이 아닐까요? 재료들이 쌓여 있는 마루방, 겨울 햇살을 맞아들...
    2017.12
  • 얼마 전 몇 가지 사연이 겹쳐 한동안 나 혼자 아기를 돌보아야 하는 일이 생겼다. 이 아기는 20개월을 좀 넘긴 나이로 키는 대략 내 무릎 높이 정도였는데, 관찰해본 결과 특별히 소리를 지르며 난폭하게 군다거나 울부짖으며 드러눕거나 하는 일은 잦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사소한 일에도 진심으로 즐겁게 웃었으며, 가끔 신기한 것을 보았을 때는 얼굴에 격렬한 호기심을 드러내었다.&...
    2017.11
  • 내가 사는 마을은 산골이다. 앞산과 뒷산 거리가 100m가 될까 말까, 그 정도다. 그 사이에 50m 정도의 폭으로 강물이 흐르고 있다. 해가 짧은 겨울이면 앞산에서 해가 떴다 싶은데 금세 진다. 오죽 해가 짧으면 노루 꼬리만 하다고 했을까. 오후 4시 반 정도면 뒷산 자락에 붙어 있는 마을에 산그늘이 내려앉는다. 계곡이나 마찬가지여서 마을의 공간이 좁다. 집을 통해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
    201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