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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에게 ‘보여지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현대인은 인간이 ‘시각적 주체’라는 것에 대체로 수긍하고 살아간다. 그것은 인간이 육체라는 물질성과 공간성을 차지하고 있는 동안에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이기도 하다. 물질이나 공간은 늘 타인 의 눈에 노출되어 ‘보여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존재가 시각적 담론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없어 보이면 지는 거다’ ‘약해 보이면 죽는 거다’와 같은 이 시대의...
    2015.01
  • 지금까지 살면서 총 열다섯 번 이사를 했다. 이 말을 듣는 사람들은 ‘큰돈 벌었겠구나’ 생각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아마도 내가 조금이라도 그런 이재에 밝았다면 큰돈을 벌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심한 경우 한 해에 두 번 이사한 적도 있다. 옮길 수밖에 없어서 이사한 적이 많지만, ‘아 여기서 한번 살아볼까’ 하는 마음으로 이사한 적도 있다. 어떤 사람은 내게 이사가 취미냐고 빈정거리기도 했다. 지금 되돌...
    2014.12
  • 지금부터 20년 전쯤 결혼을 할 때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당시 수입이라곤 시간강사 월급이 전부였다. 나를 딱하게 여긴 선배들이 만들어준 시간강사 자리였다. 한 곳은 군산에 있는 대학이었고 다른 한 곳은 천안이었다. 군산은 새벽 4시에 일어나 첫 고속버스를 타야 9시에 시작하는 첫 수업에 맞출 수 있었다. 이틀에 할 수업을 하루에 몰아서 하는 탓에 점심도 간신히 먹고 오후 6시까지 연속해서 수업을 했다....
    2014.11
  • 내가 올빼미형 인간에서 아침형 인간으로 바뀐 것은 14년 전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후였다. 하루아침에 바로 아침형 인간이 되어버렸다. 나는 일본 유학 시절까지는 밤에 절대 잠을 잘 수 없는 DNA를 타고난 인간쯤으로 생각하고 생활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 아침 9시에 수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한 톨 미련도 없이 올빼미형 생활 습관을 바로 버렸다. 일본에 있는 7년 동안 내 생활은 단...
    2014.10
  • 그날 내가 본 것이 무엇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어쩌면 두근거림일 수도 있고 어쩌면 아름다움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나는 그 풍경에 몸을 흠씬 두들겨 맞은 듯한, 어쩌면 수십 분을 된통 끌려다니다 마침내 사지가 너덜너덜해졌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초가을의 문턱, 어느 나무 아래에서 일어난 일이다. 교복을 입은 한 소녀가 호젓한 길을 걷는다. 어깨엔 가방을 메고, 한 손엔 노트 같은 것이 들려 있다. ...
    2014.09
  • 오랜만에 느긋하게 맞는 일요일, 혼자 먹을 거지만 늦은 아침 겸 점심을 공들여 차려봅니다. 오늘 메뉴는 냉콩국수. 음악도 알맞은 볼륨으로 틀어놓고, 반찬 두 가지 예쁘게 덜어놓고 숟가락 가지런히… 이제 콩국만 부으면 끝! 우아하게 식사할 차례입니다. 그런데 냉장고에 넣어둔 콩국 담은 유리병을 꺼내다가 그만 에쿠!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와우, 그 두 가지 다른 물질의 파편이라니…. 어렵사리 만든 진한 콩국이 사...
    2014.08
  • 지오를 만난 건 어느 단체에서 마련한 한글학교에서였다. 그는 베트남 출신의 근로자로 우리나라에 약 2년간 머물렀는데 두 차례 특강이랍시고 한글학교에 출강했다가 알게 되었다. 질문을 많이 했고 질문 수준 또한 남다른 구석이 있어 마음이 많이 간 친구였다. 수업이 끝나고 메일 주소를 알려달라고 해서 알려주었더니 그가 일을 하지 않는 날 내가 사는 그 먼 데까지 찾아와 몇 번 만나기도 했다. 저녁이 아닌 낮에 본 ...
    2014.07
  • 숲에 들어갔다가 잠시 놀랐습니다.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초록을 보러 들어갔다가 보러 간 그 눈은 감고 오랜만에 풍겨오는 풀 냄새를 맡았습니다. 어디선가 기계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 잡초를 베고 있는 듯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향하는 숲 속으로 점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초록의 냄새가 짙어졌습니다. 인적이라곤 하나 없는 그 숲을 이토록 짙푸르게 장악하는 냄새. 그래도 어딘가 깊숙이까지 가봐야...
    2014.06
  • 1년 전 나는 섬에 있었다. 섬 여행이 특별하고도 각별한 취미가 된 것이 고등학교 때부터였으니 섬에 들고 나고 한 지도 꽤 오래된 일이 되었다. 그때 섬에 간 것은 힘겨운 일 때문이었다. 그 일 을 일일이 열거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조금만 밝히자면 당시 많이 믿는 한 사람이 있었고 그 믿는 사람에게 거짓말과 오물을 된통 뒤집어쓴 일이 있었다. 용서하자니 내가 뭐라고 감히 한 사람을 용서할까도 싶었고, 그냥 ...
    2014.05
  • 지난 2월, 세계 최고령 피아니스트이자 세계 최고령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알리스 헤르츠좀머Alice Herz-Sommer가 11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내가 알리스를 알게 된 것은 <백 년의 지혜>라는 책을 번역하면서였다. 번역 작업을 하면서 지면으로 대단한 인물을 많이 만났지만, 알리스처럼 강인하고 낙관적인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사람이 인생에서 얼마나 큰 고통을 겪을 수 있는지, 얼마나 의연...
    201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