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업業으로 알고 살아가지만 가끔 꼭 시를 쓰고픈 때가 있다. 내면의 울림이 너무 커서 이야기로 만들 수조차 없는 순간, 언어는 낯선 감정을 물어 와서 집을 집고 그것을 ‘시詩’라고 부른다. 5년 전, 경상남도 마산에 있는 고향집을 판 후에도 한참이나 시 비슷한 것을 쓰고 또 지웠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85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 후로 17년 가까이 고향집 문패에는 아버지 이름이 그대로 적혀...
겨우내 명태 난젓과 안동식혜를 끊이지 않고 먹었다. 떨어질 만하면 택배가 왔다. 명태 난젓은 생명태를 무와 함께 난도질해 ‘갖은 양념’ 한 반찬이고 안동식혜는 일반 식혜를 끓이기 전에 고춧가루와 무를 버무려 삭힌 식혜다. 둘 다 시원하고 칼칼하고 입 안에서 아삭아삭 씹힌다. 먹을수록 인이 박인다. 주변을 둘러봐도 나 말고는 이런 음식을 아는 사람조차 없다. 손 많이 가는 이것들을 만들어 밀폐 용기에 담아 비닐...
딸이 초등학교 3학년 때 국어시험을 치렀다. 딱 하나가 틀렸다.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의 뜻을 잘못 적었다. 호초, 당초 맵다지만 시집살이에 비할까. 며느리는 그저 입 다문 채 들어도 못 들은 척, 봐도 못 본 척하라는 옛 속담이 딸에게는 생경했던 모양이다. 빈 칸으로 남겨둘 수 없어 제 딴에 답을 적긴 했다. 딸의 답안지를 본 담임선생이, 속된 말로 뒤집어지더란다. 딸은 선생이 왜 웃었...
작년 가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낙지만 잡았다. 대단한 집착 혹은 열정의 날들이었다. 낮에는 뻘밭에서, 저녁 술자리에선 낙지잡이꾼들의 경험밭에서, 밤엔 꿈밭에서 땀 흘리며 낙지를 잡았다. 한번 빠지면 된통 빠지는 성격이라 꿈을 꿔도 낚지 잡는 꿈만 꿨다. 시 쓰는 놈이 시 쓰는 꿈을 꿔야지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낙지 잡기에는 묘한 매력이 있었고 나는 그 매력에 독하게 중독되었다.“뻘...
전철을 탔는데 좌석이 없어 서 있었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며 웃는다. “어머, 선생님도 전철을 타세요?” “예. 저는 운전을 못하니까 주로 전철이나 버스를 타요.” 물론 나는 택시를 탈 수도 있다. 그러나 전철, 버스를 타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느낄 수 있어 참 행복했던 ‘첫’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기 위해 전철이나 버스를 탄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출근 시간 두 시간 전에 ...
하늘공원을 떠나며...부엌 창으로 하늘을 보았다. 아파트 뜰의 감나무에 성기게 매달려 있는 붉은 잎과 푸른 하늘이 명료한 콘트라스트를 이루고 있었다. 한 번만 더… 이렇게 중얼거리고 싶도록 아름다운 날은 짧디짧게 스치고 지나갈 뿐이다, 인생처럼. 뒤죽박죽인 우울한 옷장 속을 정리하며 생각했다. ‘알차게’ 주말을 보낼 것인가, 드물게 좋은 날 놀러 갈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였다. 갈등을 길게 ‘때리고’ 있을 ...
骨三穿이란 말을 한동안 화두로 들고 지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강진 유배시절 제자인 황상의 글 속에 나오는 말이다. 일흔이 넘어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메모해가며 책을 읽는 황상을 보고 사람들이 그 나이에 어디다 쓰려고 그리 열심히 공부를 하느냐고 비웃었다. 그가 대답했다. “우리 스승은 귀양지에서 20년을 계시면서 날마다 저술에만 힘써 과골, 즉 복사뼈가 세 번이나 구멍 났다. 스승께서 부지런히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