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02월 낙지 잡는 법 (함민복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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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낙지만 잡았다. 대단한 집착 혹은 열정의 날들이었다. 낮에는 뻘밭에서, 저녁 술자리에선 낙지잡이꾼들의 경험밭에서, 밤엔 꿈밭에서 땀 흘리며 낙지를 잡았다. 한번 빠지면 된통 빠지는 성격이라 꿈을 꿔도 낚지 잡는 꿈만 꿨다. 시 쓰는 놈이 시 쓰는 꿈을 꿔야지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낙지 잡기에는 묘한 매력이 있었고 나는 그 매력에 독하게 중독되었다.
“뻘이 뻔드름한 데로 가봐! 낙지 구멍 있는 데는 낙지가 칙게(몸이 직사각형이고 일회용 라이터 반만 한 게)를 다 잡아먹어 뻘이 좀 반들반들하다니까.” 삼년 농사 도와줘야 가르쳐주지 절대 안 가르쳐준다는 낙지 잡는 비법을 취중인 동네 형님한테 듣고 ‘이제 됐구나!’ 무릎을 치며 얼마나 기뻐했던가. 밤을 설친 그 다음 날 낙지 담을 통을 좀 더 큰 스티로폼으로 바꿔 들고 뻘길을 나섰다. 배를 타고 나가는 사람들 외에도 뻘길로 걸어 나가는 낙지꾼들이 사십 명은 족히 되었다. 뻘길을 한 삼십여 분 걸어가자 낙지꾼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낙지 잡기를 시작한 지 칠 년 밖에 안 되는 초보자인 나는 예의상 제일 나중에서야 뻘 방향을 잡고 낙지를 찾아나갔다. 드넓은 뻘 중에 ‘뻘이 뻔드름한 데’가 잘 분별되어 보이지 않았다. 멀리서 보면 좀 반들반들하게 보이는 곳이 있어 무릎까지 빠지는 뻘을 가로질러 가보면 어찌 된 일인지 뻘들이 똑같아 매번 허탕을 쳤다. 그러자니 어려서 산골에 살 때 일이 떠올랐다. 산에 나무를 하러 가 억새밭을 만나는 날은 다른 때보다 나뭇짐이 작아졌다. 멀리 있는 억새들이 더 크고 빽빽하게 서 있는 것 같아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다가 시간을 다 보내서였다. 그때처럼 욕심에 빠져 낙지가 많아쉽게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곳을 찾아 헤매다 보니 힘만 더 들었다. 동네 형님한테 설 배운 비법이 역효과를 냈던 것이다.
“이 사람아, 어제 거기선 뻔드름한 데를 찾으면 안 되지. 거긴 낙지가 막 새로 앉은 데니까, 칙게 구멍이 무조건 많은 데로 가야지. 그래야 낙지 구멍도 멀지 않고 잡기도 쉽지. 자네 같으면 먹고살기 힘든 곳에 새 터전을 잡겠나. 낙지들 머리가 보통 좋은 게 아닌데.” 아하, 그랬으니…. 결국 나는 헤맬 수밖에 없었구나.내가 손쉬운 비법으로 낙지를 잡는 길은 멀기만 하구나. 낙지가 들어간 구멍을 쉽게 찾는 법을 배우는 것도 힘이 드니 땅속에 들어앉은 낙지를 쉽게 잡아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얼마나 더 힘들까.
“내가 낙지 잡는 거 배울 때, 그러니까 육십 년 전만 해도 장화가 어디 있었나. 한겨울에 언 뻘밭을 맨발로 들어갔어. 발이 시린 거야 참지만 손이 시려 낙지를 잡을 수가 있어야지. 뻘 속에서 낙지를 움켜쥔 건지 아닌지 이건 뭐, 감각이 있어야지. 그래서 한 사람이 오줌 마렵다고 하면 우르르 몰려가 오줌발에 손가락을 녹이고 낙지 구멍을 쑤셨어. 추우면 오줌 자주 마렵잖아.” 동네 친구 아버지 이야기를 들은 후 나는 낙지 쉽게 잡는 법을 아예 포기했다. ‘낙지 잡는 법이라 해서 어디 지름길이 있겠는가’ 하는 깨달음이 왔기 때문이다. 그 후 바다에 나가 낙지를 잡지 못해도 속이 상하지 않았다. 낙지 잡는 법을 스스로 하나하나 힘겹게 터득할 때마다 신이 났다. 땅속 낙지 구멍은 참으로 다양했다. 백 개면 백 개 낙지 구멍의 길이가 다르고 구멍에서 가닥을 친 구멍 수와 모양이 달랐다. 삽으로 파고 손으로 쑤셔 들어가면 낙지들이 숨어드는 곳도 다 달랐다. 몸소 체험하지 않고 그 많은 경우의 수를 어찌 다 배울 수 있단 말인가.
뻘 속에 박혀 있는 죽은 조개껍질에 벤 손등의 상처가 손바닥 손금보다 더 깊고 많이 파이고 나서야 나는 낙지 한 코(20마리)를 처음으로 잡았다. 한번 한 코를 넘긴 후론 바다에 나갈 때마다 이십에서 삼십여 마리를 잡게 되었다. 작년 가을 나는, 쉬운 지름길을 버리고 온몸으로 밀고 나가면 힘든 일도 해낼 수 있다는 고귀한 선물을 낙지 잡기를 통해 수확한 셈이다.
이 글을 쓴 함민복 시인은 고향을 떠나 강화도에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그가 지난 명절에 고향 충주에 갔습니다. 어머니와 이모님들을 뵙고 인사를 드리는데 이모님께서 물으셨답니다. “너, 험한 일 하러 다니누?” 조개껍질에 벤 손등 위에 난 거친 상처를 보고 물으셨던가 봅니다. 요즘 그의 시와 산문은 낙지를 잡는 갯벌과 새우를 잡는 바다 위에서 태어납니다. 온몸으로 부딪치며 경험하고 깨우친 것들이 글이 됩니다. 바닷가에서 노총각으로 살고 있는 강화살이의 흔적은 최근 발간된 <미안한 마음>(풀그림)에서 살필 수 있습니다.행복이가득한집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