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프랑스 샴페인 방식으로 만든 한국 최초의 스파클링 와인 오미로제를 찾아 떠나고, 만나고, 반하다
자연의 맛을 가득 담은 붉은 열매 오미자. 이 열매가 한 인간의 열정으로 산뜻하며, 거침없고, 섬세하게 올라오는 버블(기포) 가득한 스파클링 와인으로 탄생했다. 버블은 프랑스 샴페인 지방의 제조 방식을 그대로 적용한 것으로, 어느 누구도 생각지 못한 비법이지만 오미자는 문득 그렇게 우리 곁에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 이름은 오미로제OmyRos. 경상북도 문경, 두 개의 계곡이 만나는 옛 궁터 깊숙한 곳에 있는 오미자 농장에서 완전한 유기농으로 생산하는 오미자는 이곳의 자연을 모두 담아낸다. 그리고 3년의 시간을 기다린다. 강한 산미를 부드럽게 하고 효모와 얽힌 잔류물을 완전히 제거해 맑고 선명하며 깊은 장밋빛 오미로제를 얻기 위해.


2011년 초가을, 와인 전문가로 일하는 필자에게 놀랍고도 흥미진진한 사건이 일어났다. 우리나라에서 스파클링 와인을, 그것도 좋은 약재로 널리 알려진 오미자로 만들었다는 것! 사건은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해온 레스토랑에서 오미자로 만든 스파클링 와인을 맛본 게 발단이었다. 먼저 눈에 띈 것이 오미로제OmyRose의 아름다운 색이었다. 붉은색이지만 과하지 않고, 스파클링 와인으로 만들었지만 자연 본연의 색감이 퇴색했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인 버블(기포)에 힘이 있었다. 진정 이런 스파클링 와인이 우리나라에서 만든 것인가? 결국 샴페인 방식으로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스파클링 와인이라 할 수 있는 오미로제를 만나러 길을 나섰다. 마치 프랑스 샹파뉴 지방의 한 와이너리를 찾아 여행길에 오르는 것처럼.


1 병 디자인과 ‘오미로제’라는 이름은 디자인 전문 업체 크로스포인트 손혜원 대표의 작품이다. 한글로는 ‘오미자로 만든 로제와인’, 영어로는 ‘오! 나의 장미(빛깔 술)’라는 의미를 표현한 이름이라고 한다.
2 오미로제의 원료인 오미자는 맛, 색, 향 등이 뛰어난 원료로 관능적 매력이 탁월하다.
3 스파클링 와인 오미로제는 오미자즙을 짜낸 후 1차 발효는 오크통에서, 2차 발효는 병에서 효모와 설탕 등을 더한 뒤 이루어진다.


오미로제의 탄생지, 문경
처음 문경을 찾은 것은 9월 초순이었다. 그동안 세계에서 처음으로 오미로제를 만든 한경대 친환경농축산물연구센터 이종기 교수와 몇 번 만나 신중하게 시음해봤는데, 결론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한식을 중요시하고 막걸리를 5천억 원 넘게 수출하는 이 시점에 국제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우리만의 술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흥분되었다. 와인 전문가로, 특히 프랑스 와인을 선호하는 전문가로 오미로제의 품질을 스스로 확고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오미로제를 만드는 이 교수를 길잡이 삼아, 동무 삼아 길을 떠났다.

목적지는 서울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반 거리, 우리나라의 수많은 전설과 역사를 간직한 문경새재가 있는 그곳, 경상북도 문경이었다. 이곳에서도 20분 정도 더 깊은 계곡으로 들어가니 주변이 산과 사과 과수원, 논으로 둘러싸인 곳에 자리한 허름한 와이너리가 눈에 들어왔다. 변변한 건축물도 없는 그곳에 창고를 짓고 오크통을 수입해 양조 시설을 만들어놓은 것이 보였다.

일단 이곳의 원료인 오미자를 재배하는 곳을 보고 싶었다. 와이너리에서 20분 남짓 떨어진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화강암에 새긴 마을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내 고장, 궁기 一(일)리, 궁터’. 이 지역은 고려를 세운 왕건의 아버지가 살던 궁터라고 한다. 작은 마을의 앞에는 거대한 산이 가로막고 있어 마치 길이 끊겼을 것 같은데 이 교수는 차를 계속 몰았다. 얼마 후 집이 하나 둘 보이는 것 같더니 이내 좁고 맑은 개울을 건너 산속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얼마쯤 들어가자 드디어 사람의 손길이 닿은 흔적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산 아래 개간한 평지에 진흙으로 지은 집이 두어 채 있었다. 이곳이 바로 이 교수가 오미자 원료를 구입하는 농장이었다.


4 1차 발효시킨 와인을 2차 발효시킨 후 마지막 병입하는 마무리과정이다.
5 장밋빛깔 오미로제 스파클링 와인의 첫 맛은 드라이한 편.
6 2차 발효를 마치고 나면 그동안 생긴 효모 찌꺼기가 병 속에 보인다.


언덕에 오미자 터널을 형성하고 있는 농장은 야생에 가깝게 재배하고 있는 듯했다. 고백하건대 그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오미자 열매의 실물을 보았다. 손바닥 반만 한 송이에 붉은 열매가 여럿 달려 있어 마치 빨강 구슬을 엮어놓은 것 같았다.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농장 주인이 아직 충분히 여물지 않아 수확하려면 2~3주 정도 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또 한참 들여다보니 이 교수가 이것이 유기농 오미자라고 덧붙였다. 화학비료는 주지 않고 유기적인 영양분만으로 키운다고. 주변과는 완전히 고립되어 있으니 다른 농장에서 화학비료가 날아올 가능성도 전혀 없을 터였다. 집 아래 수령이 좀 덜 된 오미자가 자라는 밭도 하나 더 있었다. 이 밭 위에는 축구장만 한 공터가 있는데, 농장 주인은 이곳 역시 앞으로 오미자 밭으로 개발할 생각이란다. 나는 프랑스 샹파뉴 지방의 포도밭을 방문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오미자밭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오미자 농장의 가족 또한 기록에 남겼다. 앞으로 몇 년이 걸리지 모르는 작업이지만, 세계에서 유일하게 시작한 오미로제 스파클링 와인의 원재료인 오미자부터, 그것이 실하게 자라나는 농장은 물론, 유기농 오미자를 재배하는 사람들까지 일일이 기록에 남기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2주 후에 오미자를 수확하는 날 다시 한 번 농장을 찾아 그 모습을 또 기록했다. 오미자에서 느낄 수 있는 다섯 가지 맛을 사진으로나마 담고 싶었다. 껍질은 달콤하고 과육에서는 산미가 느껴지며 씨는 맵고 쓰고 떫은맛이 골고루 들어 있는 모습…. 그리고 이 모든 맛이 어우러진 오미로제를 통해 다시 코에서 입에서 하나하나들추어내는 기쁨도 새겨두고 싶었다.

7 세계에서 처음으로 오미자 스파클링 와인을 만든 한경대 친환경농축산물연구센터의 이종기 교수. 이 교수는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오미자 연구에 집중해 4년 만에 스파클링 와인 ‘오미로제’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오미자. 술 담그는 방식은 첨단으로 하되 재료는 토종을 쓰는 ‘술 박사’ 이종기 교수가 한국산 명주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선택한 주인공이다.

세계적 명주를 향한 열정과 끈기
오미자 농장을 방문한 후, 이종기 교수는 어떻게 오미로제를 만들 생각을 했을지 내내 궁금했다. 그의 답변은 간단명료했지만 심오했고, 스토리가 있었다. “자극이 있었지요.” 그에게 열정의 불을 지핀 건 1990년 스코틀랜드 수도 에든버러의 헤리오트-와트 대학원에서 양조학을 공부할 때 프랑스인 동료였다고. 어느 날 세계 각지에서 모인 급우들과 파티를 했는데, 주임교수의 제안으로 각자 자기 나라의 대표 명주를 가져와 시음하게 되었단다. 그날 프랑스인 동료가 멋진 샴페인 글라스와 로제 샴페인을 가져와 소개했는데 그 아름다움에 깊이 빠져 미처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그가 준비한 한국의 대표적인 약재 침출주인 인삼주를 주임교수가 시음하더니 농담 한마디를 던졌단다. “이 술은 허브 향도 있지만, 조미료 맛이 지배적인 것 같군.” 그 말이 이 교수에게는 자극제가 되어 명주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늘 마음속에 품게 된 것이다.

유학 후에는 한국의 유명 양조 회사에 다니면서 실력을 쌓았고, 2007년에는 27년간 다니던 회사를 떠나 영남대에 양조학을 개설했다. 그러자 그의 오래전 결심이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이 교수는 고향인 문경에 내려와 주변의 가능성 있는 재료를 죄다 모으고 실험에 들어갔는데, 그때 가장 한국적인 재료 중 하나로 오미자를 만난 것. 물론 오미자로 스파클링 와인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간 만든 술이 주로 증류주였기 때문에 스파클링 와인에 대한 지식도 다시 습득해야 했다. 그래서 스파클링 와인의 본산지 프랑스 샹파뉴 지방을 아홉 번 이상 드나들며 기술을 어깨너머로 배우고 실험을 계속했다. 그렇게 꼬박 5년이 걸렸다. 하지만 길은 찾으면 보이는 법. 문경의 개인 연구실에서 재료에 파묻혀 연구에 매진하다 보니 마침내 오미자의 발효 기간을 앞당길 수 있는 효모를 발견하는 쾌거를 이루었으며, 개인 특허도 냈다. 하지만 그 당
시에는 기본 문제를 해결했을 뿐 20년 전 프랑스인 동료가 맛보여 준 로제 샴페인에 이르기까지는 부족함이 있었다. 그러나 일단 방향이 잡혔기 때문에 꿈을 실현하는 순간이 점점 다가옴을 느꼈다.


작년, 강남의 유명 와인 바 뱅가에서 첫 선을 보인 오미로제. 프랑스 최고의 요리장인 에릭 트로숑은 오미로제에 어울리는 여덟 가지 카나페를 선보였다. 현재 오미로제는 포도플라자에 있는 와인 숍 와인타임에서 판매한다. 가격 10만 원대.

오미로제, 버블을 가지다
이 교수에 따르면 오미자는 특성상 자연적으로 놓아두면 1차 발효(포도당이 알코올로 변하는 것)하기까지 5년 정도 걸린다. 포도가 보통 일주일 내에 1차 발효가 끝나는 것에 비하면 이렇듯 시간이 오래 걸리는 오미자는 상품화가 어렵다는 의미일 터. 게다가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려면 2차 발효까지 해야 한다. 그래서 그는 샹파뉴 지방 에페르네에 있는 샴페인 연구소에 오미자 원액 샘플을 보내고 스파클링 와인으로 만들기 위한 발효가 가능한지에 대한 답을 기다렸지만, 1년이 넘도록 아무 답변이 없었다. 결국 홀로 연구에 매진하던 어느 날 오미지만을 위한 특별한 자연 효모를 발견해냈다. 이 교수는 우선 오미자 주스를 만들고 자신이 발견한 효모균을 이용해 1차 발효를 했다. 고급 스파클링 와인이 매우 드라이하다는 것에 착안해 오미자 주스 속 모든 당분이 제로가 되도록 1년 반 동안 1차 발효를 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그러나 스파클링 와인 제조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가 남았다. 바로 병 속에서 2차 발효를 완성시키는 것. 그는 효모와 설탕을 넣고 2차 발효에 들어갔다. 그러고 다시 1년 반을 기다려야 했다. 2차 발효를 하는 동안 병 속에서 생기는 가스 때문에 중세 시대 샴페인의 아버지라 불리던 동 페리뇽도 수많은 병이 깨져 나가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는 이야기가 내심 위로가 되었다. 그래서 샴페인에 붙은 이름이 ‘악마의 술’ 아닌가. 이렇게 생긴 가스는 병을 극도로 불완전하게 하지만 제대로 가둘 수만 있다면 잔에 따를 때 아름다운 기포를 선사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병의 압력을 3~5기압으로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이 과정이 성공했다 해도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다. 2차 발효로 생긴 병 속의 찌꺼기를 압력의 변화 없이 제거해야 하는 것. 동 페리뇽 시대처럼 수동으로 하는 방법도 있지만, 지금은 모두 기계를 이용해 보다 완벽하게 처리해서 기압 유지에 빈틈이 없다.

처음 문경의 오미자 와이너리를 방문하던 날, 이 교수가 시음해보라며 준 오미로제는 수동으로 찌꺼기를 제거한 것이었다. 한국, 그것도 작은 지방 도시인 문경에서 프랑스 오크통들을 보며 우리나라 최초의 천연 스파클링 와인을 시음하는 것은 감동 그 자체였다. 잔에 따르자 흰색 거품이 장미 빛깔과 어우러져 엷은 분홍빛을 띠며 힘차게 솟아오르더니 잠시 후 잔의 맨 아래부터 아주 섬세한 기포가 끊임없이 올라오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코를 깊이 대고 향을 맡아보니 상큼함과 스파이시한 향기가 코끝을 기분 좋게 자극했다. 이 교수의 꿈이 실현된 오미로제를 만난 것이다.

와인 가도를 꿈꾸며
한 병의 샴페인이 탄생하는 데는 3년이 걸린다. 오미로제도 최소 3년의 시간을 들여 만든다. 술은 관능적인 매력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원료의 색깔과 향기, 맛이 가장 중요한 요소다. 2011년산 오미로제 스파클링 와인을 세상에 선보이자 관능적인 매력에 많은 사람의 찬사를 받았다. 강남의 유명 와인 바인 뱅가에서 세상에 첫선을 보이던 날, 프랑스 최고의 요리장인 에릭 트로숑Eric Trochon은 오미로제에 어울리는 여덟 가지 카나페 음식을 직접 내놓기도 했다. 좋은 샴페인의 섬세한 맛은 얼마나 오랫동안 2차 숙성을 했는지와 버블의 크
기가 대변한다. 오미로제의 작고 섬세한 버블은 이 스파클링 와인의 품위를 말해주며, 마실수록 온몸으로 퍼져 들어가 오미자 고유의 신비한 효능을 체험하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내로라하는 와이너리에서 잘 만든 와인 못지않은 맛을 자랑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오미로제의 단맛은 포도당이 아닌 오미자 자체에서 우러나온 천연의 맛이라는 것. 오미로제가 어떻게 세월과 더불어 숙성되면서 변해갈지 기대된다. 오미로제의 탄생과 숙성의 모든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면서 하나의 스토리를 완성하고 싶다. 그리고 이 교수의 오랜 숙원인 오미자 와인 가도를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와인 가도처럼 백두대간을 따라 멋지게 형성한 뒤 그 길을 따라 여행하고 싶다. 술 익는 마을을 하나하나 거치면서 각 마을이 보여주는 향기와 맛을 함께 즐기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글과 사진 김혁(와인 문화 공간 포도플라자 관장)

담당 신민주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