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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 서간 에세이집 펴낸 소설가 신경숙 씨 변화할 수 있는 지점은 슬픔을 느낄 때
정읍에서 살던 어린 시절, 신경숙 씨는 물을 길으러 우물에 갔다가 빠진 적이 있다. 떨어질 때의 두려움이나 공포와는 달리 우물 속은 안온했다. 한국과 일본의 미묘한 관계도 이와 비슷하다. 역사적으로 청산해야 할 문제는 많지만 ‘계급장 떼고’ 사람과 문학 속으로 들어가면 껄끄러움보다는 인간적인 친밀함을 느끼게 된다. 신경숙 씨와 일본 작가 쓰시마 유코와 교환했던 편지를 읽노라면 이를 실감하게 된다.

작년 초겨울부터 금년 봄까지, 신경숙 씨는 한 해가 꽉 차고 조금 넘치는 기간을 두 여인과 함께 지냈다. 한 명은 조선시대 말기의 궁중 무희 리진이고, 다른 한 명은 일본 여성 작가 쓰시마 유코. 리진과 함께 근대 개화기 조선과 아름다운 시대 벨 에포크 프랑스를 넘나들며 보낸 시간은 <푸른 눈물>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일보>에 연재되었고, 석 달 전 <리진>(문학동네)이라는 두 권짜리 소설책으로 출간되었다. 6년 만에 나온 다섯 번째 장편소설이다.

서울과 도쿄를 사이에 두고 작년 1월부터 12월까지 쓰시마 유코와 주고받은 스물네 통의 편지는 공개 서간문의 형식으로 한국과 일본의 월간 문예지에 동시에 연재되었고, 보름 전 <산이 있는 집 우물이 있는 집>(현대문학)이라는 서간 에세이집으로 출간되었다.

열두 달간 주고받은 스물네 통의 편지
신경숙 씨와 함께 서신을 교환한 쓰시마 유코는 일본을 대표하는 중견 작가로 국내에는 <나>(문학과 지성사)라는 소설집이 출간되어 있다. 작가는 좋아하지 않는 수식이지만, 그는 한국에서도 <인간 실격>으로 잘 알려진 일본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1909~1948)의 딸이기도 하다.

그가 쓰시마 유코를 처음 만난 것은 10여 년 전 한·일 작가 심포지엄 때다. 그는 그 중견 일본인 작가에게 ‘나도 모르게 그토록 이끌렸다’고 고백한다. “언어가 달라 서로 깊은 얘기는 나누지 못했지만 우리는 서로를 좋아하고 있었다. ‘서로’라고 써놓으니 내가 쓰시마 선생 마음을 내 마음대로 표현해놓은 것 같긴 한데 내 느낌은 그랬다.” - <산이 있는 집 우물이 있는 집> ‘작가의 말’ 중에서

그 후 단체 또는 개인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쓰시마 유코는 그의 작품을 이야기하는 패널로 나왔고,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이해가 한국의 어떤 이 못지않게 깊다는 것에 놀라워하기도 했다. 그 역시 심포지엄 때 한국어로 번역된 쓰시마 유코의 작품을 한 편씩 읽으며 조갑증을 느끼던 차에 한국에서 출간된 작품집 <나>를 접하게 되었고, 그제야 자신이 왜 그에게 그토록 이끌렸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가 구사하는 이야기의 세계가 내겐 낯설지 않고 친밀했다. 분석을 하지 않아도 정서가 먼저 그의 작품을 받아들였다. 어떤 이야기들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이야기, 이미 내가 쓴 이야기와 메아리처럼 닮아 있는 경우도 있었다.” - <산이 있는 집 우물이 있는 집> ‘작가의 말’ 중에서

“편지를 전할 때는 마치 종이비행기를 날려 보내는 느낌이었어요. 내가 쓴 글에 대한 그분의 반응을 접하고, 그분이 쓴 글에 대한 내 반응을 보내고, 서로의 반응에 대해 또 반응하고…. 참 즐거운 일이었어요. 쓰시마 선생은 참 멋진 분이시죠.”

두 편의 글, 두 개의 감정
편지를 주고받을 때 그는 <리진>을 쓰고 있었다. 역사소설을 쓰지 않으려 했던 그는 서사의 숨결을 죽이려고 노력했지만 주인공 리진 안팎의 시대적 상황은 그 의지와 무관하게 너무나도 혹독했다. 역사소설이 되지 않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자신만의 호흡으로 걸러내기 위해 그는 더 많은 자료를 구해야 했고, 읽어야 했으며, 고민해야 했다.

“<리진>을 쓰면서 새로운 경험을 했어요. 수많은 사료를 접했고, 백 년 전 한국과 일본의 관계, 리진이 처했던 역사적 상황에 대해 아주 껄끄럽고 복잡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죠. 리진에 대한 감정, 그리고 편지를 주고받는 일본인 작가에 대한 감정…. 소설을 연재하면서 일주일에 하루 이틀간 시간을 내 편지를 썼는데, 그러다 보니 마음이 조금 불편했어요.”

사료를 읽으며 백 년 전으로 돌아간 그는 저항감을 많이 느꼈다. “가련한 약소국…. 일본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 휘둘리고. 지금도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아요. 눈치 보고, 주장도 못하고…. <리진>을 쓸 때, 처음에는 을미사변 장면을 적극적으로 가져올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나중에는 가져왔지요.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너무나도 아픈 시대였어요. 그 당시의 정황만큼은 내 시각과 내 시선으로 묘사해보고 싶었어요.”
어쩔 수 없는 ‘한국인 작가’ 신경숙은 이러한 감정을 가진 채 일본인 작가와 서신 교환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연스러웠어요. 쓰시마 선생은 일본이라는 사회에 갇혀 있지 않은 분이었어요. 우리가 친근감 있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둘 사이에 국경이 없었기 때문일 거예요. 그분이 일본 사회에 대해 비판할 때는 내가 위로해주고 싶을 정도였어요. 냉철하면서도 부드러운 분이세요. 정치적인 문제는 정치적으로 풀고, 작가는 작가로서 교류를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싶어요.”

겨울과 여름, 슬픔과 아름다움
그와 만나 이야기를 나눈 8월 중순의 평창동 언덕은 우기의 적도처럼 무더웠다. 그리고 로맨틱해야 할 매미 울음과 계곡에서 물 흐르는 소리는 도심의 소음만큼 시끄러웠다. 그의 편지에 묘사된 ‘산동네’ 평창동은 겨울이 깊은 곳이다. 그리고 그는 그 겨울의 깊이와 정적, 그리고 ‘양말을 덧신고 무릎도 담요로 감싸며 어깨에 숄을 둘러야 하는’ 추위를 좋아한다.
“겨울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여름은 읽고 쓰기에 적당한 계절이 아니지요?”
“겨울만큼 여름도 좋아해요. 작가나 예술가에게는 여름이 작품 활동하기에 좋은 계절 아닌가요? 그렇지 않나요?”
아닌 것 같은데.
“사람을 힘들게 하잖아요. 그게 좋아요. 힘겹게 지내고 나면 허탈해지지만, 겨울과 여름은 힘을 쏟아 부을 만한 계절인 것 같아요.”
여름에 대한 그의 설명은 서간문에 쓴 겨울에 대한 설명과 거의 흡사했다. 아름다운 것에서 슬픔을 보고, 슬픔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그이기에 겨울과 여름의 공통분모는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봄이 좋아졌어요.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오던 재작년에 담가에 수국을 심었는데 작년 봄에 딱 한 송이가 피는 거예요. 잘못 사 왔나 보다, 하면서 음식물을 말려 거름을 주고 그랬어요. 그랬더니 올봄에는 어찌나 많이 피던지. 그 작은 수국이 걱정될 정도로 많이 피었어요. 담 밖으로 이만큼이나 나갔지요. 지나가는 모녀가 ‘어머, 수국이다, 진짜 예쁘다’ 하는 소리 들으면서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은 적도 있어요.”
그는 그 수국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너무나 아름답다 못해 슬퍼지기까지 한다고 한다.
“좋다가도 슬퍼져요. 아스라하게 슬픈 느낌이 와요. 저 꽃이 항상 저렇게 있지 않을 테니까. 지니까. 하늘도 그렇고, 아이들의 발뒤꿈치나 손가락도 그렇고, 너무나 예쁘지만 변하게 되잖아요. 그게 너무 슬퍼요. 변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은근한 상실처럼 와요. 내 소설도 그 지점 어디에 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은 무엇이 슬프세요?”

나는 도발적으로 물었다.
“그건 비밀이지요. 공개하면 안 되지요.” 그는 가볍게 대답했다.
겨울을 좋아하고, 겨울만큼 여름을 좋아하고, 이제는 겨울과 여름보다 봄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지만, 그 계절에 대한 취향의 변화는 결국 ‘그 지점 어디’에서 만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자리에서 그에게 ‘사실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가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어도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을 것이다. 아름다움, 슬픔, 변화, 상실, 힘겨움, 허탈…. 이러한 감정, 성질, 현상, 상태의 고리가 연결되는 ‘그 지점 어디’는 그의 문체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조세희 소설의 행간, 김정환 시의 자간과 전혀 다른 신경숙 문체의 호흡. 그 행간과 자간 사이, 가늠할 수 없는 지점에서 명멸하며 오늬에 오늬를 물고 다가오는 독특한 호흡은 그 순한 외양과 다르게 독자를 꼼짝 못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20대의 한 토막을 유사 난독증으로 보냈는데, 그 시절 유일하게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글이 그의 소설이었다. 순하고 곱다 못해 더듬거리고 머뭇거리며 어수룩하기까지 했던 그 문체는 내게 무형의 물리력으로 작용했고,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나는 ‘점선 따라 그리시오’에 복종하는 유아처럼 자의와 타의, 흥미와 권태를 넘나들며 기댄 벽에서 등을 떼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보아도, 그것은 정말 가슴 뛰는 경험이었다.

리진과 쓰시마 유코가 준 힘
그런데 겨울이나 여름보다 봄을 더 좋아한다는 그의 취향 변화에는 조금 더 의미를 부여해도 될 것 같다. 석 달 동안 두 권의 소설책과 한 권의 에세이집을 내고 난 지금, 그는 전에 없는 에너지로 충만해 있다.
“다른 작품을 끝냈을 때와 다르게, 지금 상황에서는 뭔가 허전해야 할 텐데 그렇지가 않아요. 오히려 <리진>은 내게 에너지가 되어준 느낌이에요. 다음 작품으로 빨리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리진> 전에 쓰다가 만 작품이 있거든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인데, 무겁고 진중한 어머니로 다가가다가 멈추게 되었지요. 쓰다가 멈춘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리진>이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고…. 아무튼 끝내고 나니 숨통이 트이고, 행복한 느낌을 갖게 되는 작품을 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행복한 느낌을 갖게 되는 작품…. 이다음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그는 잠시 그의 문체처럼 머뭇거리며 그 희고 맑은 얼굴로 ‘독자’인 내게 정공법적인 질문 하나를 던졌다.
“내 글이 그렇게 우울한가요? 내 글을 읽으면 정말로 우울해지나요?”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희고 맑았다. 그 얼굴에 묻은 표정이 걱정거리를 가지고 있는 소녀 같다는 생각을 하며 자동기술법처럼 대답했다.
“울고 싶은 놈이 뺨 맞은 것처럼, 우울하고 싶은 사람, 또는 우울할 여지가 있는 사람이 읽어서 우울해지는 것 아닐까요?”

우울한 것과 우울증은 다른 것이고, 중·고등학교 때 배운 것처럼 소설의 기능과 역할 중 하나는 이른바 감정 정화가 아니던가. 내가 제대로 대답을 한 것인지를 곱씹는 동안 그는 말을 이었다. “리진과 쓰시마 선생이 준 힘 같은데, 이제는 읽을 때 행복한 느낌이 드는 책을 낼 자신이 생겼어요.” 리진과 쓰시마 유코가 준 힘, 읽으면서 행복한 느낌이 드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임의적이지만, 인터뷰가 끝날 무렵에 들려준 이야기로 그다음 작품의 온기를 짐작해본다. 7월 말, 그는 일본어판 <산이 있는 집 우물이 있는 집>의 발간에 맞춰 일본에 갔다가 쓰시마 유코와 함께 그 작가의 아들이 잠들어 있는 외국인 묘지에 갔다.

“요코하마에 있는 외국인 묘지였어요. 납골함이 아주 예뻤어요. 아들의 납골함에는 ‘D-51’이라는 번호가 매겨져 있었는데, 그 번호는 일본에 처음 들어온 증기기관차 번호라고 하더군요. 쓰시마 선생은 집에서 기른 장미 몇 송이를 들고 갔어요. 저하고 서신 교환을 시작하면서 식물을 기르기 시작했다고 하시더군요. 납골함이 들어 있는 곳의 문을 열어보니 크리스마스트리,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가 주고 간 말 인형, 편지, 도마뱀 모형 등 무엇인가가 잔뜩 들어 있었어요. 가족사진도 있었는데, 아들이 ‘혼자 있으면 심심할까 봐 넣어놨어’라고 하셨어요. 쓰시마 선생은 밝고 산뜻한 얼굴로 물건 하나하나를 집어가면서 아들 주려고 어디서 어떻게 사 온 것인지 등을 설명하셨지요.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들르신다고 했어요. 그 아들에게 저를 인사시켜주셨는데, 마치 살아 있는 누군가에게 인사를 시켜주시는 느낌이었어요. 상처를 겪고도 저렇게 밝은 표정일 수 있다니…. 그분과 함께하면서 정말 많이 듣고, 보고, 배웠어요. 그분에게 나는 마음으로 ‘인사시켜줘서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했어요.”

작가와 작품 세계의 공통분모
그를 직접 만나기 전에 글과 사진으로 짐작했던 그의 음성, 그 어조는 그동안의 짐작과 거의 일치했다. 문체와 어조, 작품의 분위기와 작가의 인상이 신기할 정도로 일치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느닷없이 궁금해진 것이 있었다.
“시를 쓸 생각은 없나요?”
“너무 멀리 와서, 시 쓰는 마음으로 글을 쓸 순 있어도 시를 쓸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소설이나 에세이가 아닌 다른 글은요?”
“구본창 선생의 사진을 가지고 글을 쓴 적이 있어요. 의미 있고 흥미로운 작업이었지만, 몇 개월 후에 그만두게 되었어요. 소설에 쓸 이야기가 다 나오는 거예요. 내 창고가 비겠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소설용 글, 에세이용 글 따로 염두에 두고 쓰는 타입이 아니거든요. 순간순간 느끼는 것들이 다 나오고, 그렇다고 에세이가 소설보다 품이 더 적게 드는 것도 아니고….”
인터뷰를 마치고 그와 헤어지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창고 비우지 마시고 좋은 소설 많이 써주세요’ 하고 인사를 했다.

취재 후기 신경숙 씨가 말하는 행복 <행복>과 만나는 자리라서 그랬을까? 그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행복’이라는 말을 자주 올렸다. 쓰시마 유코 선생과의 서신 교환이 행복했고, 차기작도 행복한 느낌의 소설이 될 것이라고 했다. “행복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는데, 순간순간 행복해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사람들 모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행복해지려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요. 행복해지기 위해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겐 이 세상과 나 사이에 있는 커다란 창 같은 역할을 해주는 글쓰기가 그렇지요.” 그의 아름다운 말들 중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행복해지려는 쪽으로 가고 있다’는 말을 마음에 새긴다. 참 든든한 말이다.

김선래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7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