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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와 함께 읽는 글 헤르만 헤세에게 배우는 독서의 기술
한 집안의 가풍은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부와 명예가 아닌 삶의 지혜를 물려주는 부모. 자녀와 함께 읽으면 더 좋을 헤르만 헤세가 家의 독서법을 시작으로 우리 시대의 자녀 교육 지도를 다시 그려보자.

헤르만 헤세에게 배우는자녀와 함께 읽는 글헤르만 헤세는 인도와 중국 등 동양 정신에 매료된 집안에서 자랐는데, 그런 가풍이 그를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인도와 중국의 고전을 읽도록 이끌었다. 우리가 유독 헤세의 작품에 더 이끌리는 것은 그가 동양의 문화와 정신을 받아들이고 내면화해 그의 작품 속에 담아냈기 때문이다. 소설 <수레바퀴 아래에서>는 ‘입시지옥’이라는 말이 나도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절로 가슴이 아려오는 작품이다. 헤세가 29세 때인 1906년에 쓴 이 작품은 신학교를 중퇴하고 인생의 방랑을 누구보다 일찍 시작한 작가의 전기와 같은 소설이다. 헤세의 방황은 15세부터 시작되었지만 작가의 꿈을 품었기에 책만은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의 서재에 틀어박혀 하이네, 고골리, 투르게네프 등의 작품을 읽었고, 소년 시절부터 횔덜린의 ‘방랑’이라는 시와 아이헨도르프의 ‘방랑아’ 등 유달리 ‘방랑’에 관한 시를 좋아했다. 그 역시 평생 방랑을 즐기며 방랑에 대한 글을 많이 썼다. 헤세는 자신이 쓴 <짧게 요약된 이력서>에서 10대 시절의 책 읽기를 이렇게 회상한다. “내 나이 15세 때부터 모든 힘을 바쳐 의식적으로 자아 형성에 힘을 기울였다. 우리 집에 할아버지의 서재가 있었는데, 이 서재에는 책이 가득 차 있었다. 이 많은 책을 대할 수 있었다는 것은 나에게는 행운이었으며, 커다란 기쁨이었다.”
헤세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요인을 발견할 수 있는데, 다름 아닌 친가와 외가의 가풍이다. 그 가풍은 헤세의 독서 취향, 나아가 그의 작품 세계에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다. 특히 외할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헤르만 군데르트 박사는 선교사이자 의사, 교사로 인도에서 23년을 살았는데, 인도 방언 사전인 <말레이어 대사전>을 편찬할 정도로 자타가 인정하는 이 분야의 전문가였다. 헤세는 “나는 소년 시절에 외할아버지의 넓은 서재에서 인도에 관한 책과 불교에 관한 책을 보았으며 또 읽었다”라고 회상했다. 외할아버지 서재에서 인도, 중국과 같은 동양 세계를 보다 깊게 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로빈슨 크루소>와 <걸리버 여행기>를 읽었고, 오노레 드 발자크, 빅토르 위고 같은 작가의 책도 찾아내 읽었다. 그러는 동안 그는 어느새 책벌레가 되어 있었다.
친할아버지 카를 헤르만 헤세 박사는 지방청의 의사였고 러시아 제국 영사였다. 아버지 요하네스 또한 러시아 추밀원 고문관이며 의사로 활동하다 인도에서 선교 활동을 했다. 헤세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영향으로 노자 등 중국의 사상가들도 자연스럽게 접했다. 아버지 요하네스는 <그리스 이전의 진리의 증인 노자>를 저술할 만큼 동양 사상에 빠져 있었다. 헤세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논어> <시경> <역경>등을 읽었으며 <여씨춘추>도 알게 됐다. 외할아버지와 친할아버지의 영향으로 헤세의 집안에서는 늘 성경을 읽었을 뿐만 아니라 인도 언어와 석가, 노자 등 동양의 학문을 연구했다. 헤세의 집은 종교적인 색채와 함께 음악을 사랑하는 분위기, 그리고 동서양의 학문을 연구하는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었다. 또 늘 낯선 세계를 다녀온 여행자들이 드나들었는데, 이는 후일 헤세의 방랑벽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헤세는 고희에 접어들면서 자신을 일생 동안 길러주고 깊은 감명을 준 두 가지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첫째는 양친의 집안에 깃든 기독교적이며 세계적인 정신이었고, 둘째는 중국인들의 지혜에 관한 독서였다고 한다. 두 가지 모두 외가와 친가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 덕분에 헤세는 작가이기 이전에 근면한 독서광이자, 욕심 많은 장서가이며, 뛰어난 서평가가 될 수 있었다.
“인생은 짧고, 저세상에 갔을 때 책을 몇 권이나 읽고 왔느냐고 묻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무가치한 독서로 시간을 허비한다면 미련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책의 수준이 아니라 독서의 질이다. 아무 생각 없이 산만한 정신으로 책을 읽는 건 눈을 감은 채 아름다운 풍경 속을 거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독서에 대한 헤세의 이 글을 읽으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헤세의 어린 시절에서 엿볼 수 있듯이 집 안에 책의 향기가 피어나고 서재에서 가족이 오순도순 책을 읽는다면 이것이야말로 행복한 가정, 나아가 자녀를 큰 인물로 만드는 시작이 아닐까. 헤세는 그 시작으로 ‘우리 집 필독서 리스트’를 만들고 집 안에 작은 서재를 꾸밀 것을 제안했다.
대문호 헤르만 헤세의 탄생은 개인의 노력과 아울러 동양 문화를 사랑한 외가와 친가의 가풍과 그 정신세계가 빚어낸 위대한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정세영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