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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전략] 한가위에 가장 고단하고 섭섭한 여인, 아내를 위하여 야한 속옷 선물, 지금이 기회다
아내는 누군가의 며느리다. 그걸 잊고 살다가도 한가위 같은 명절이 다가오면 새삼 깨닫는다. 명절이면 아내는 시댁에 가야 하고 시댁에 가면 며느리가 되는 것이다. 며느리는 명절에 바쁘고 아프다. 챙겨야 할 일도 많고 챙겨야 할 사람도 많다. 그리고 그것은 오롯이 며느리인 아내 몫이다. 풍요로워야 할 명절 추석에 아내의 몸과 마음은 가난해진다. 뿐만 아니라 아프다. 명절 보름 전부터 아내는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도 잘 안 된다. 추석 연휴 내내 변비와 두통을 앓고 각종 알레르기성 질환에 시달린다.
그러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은 아내의 속사정은 전혀 모르는 눈치 없는 남편이 하는 말이다. 한가위에 아내는 잘 먹지도 잘 자지도 못한다. 반면에 눈치 없는 남편은 잘 먹고 잘 잔다. 아내의 고충일랑 아랑곳없이 말이다.

남편은 어머니가 해주는 밥이 무조건 맛있다. ‘맛있다’는 말은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의 맛’이 ‘있다’는 말이다. 어머니가 만든 음식을 어렸을 때부터 먹고 자란 사람은 그 맛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고 느낀다. 그것은 단순히 맛뿐만 아니라 추억과 사랑과 온기와 그리움이 그 음식에서 환기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명절 때 남편은 시댁에만 가면 밥을 많이 먹는다.
밥을 배불리 먹었으니 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그곳은 항상 남편을 믿어주고 응원하고 감싸주는 어머니가 계신 집이 아닌가. 아마 열 달 동안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 그때 가장 편하고 가장 안전하고 가장 충만했던 기억이 살아나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니 어머니 곁에만 있으면 남편은 무턱대고 마음이 놓이고 편안해지면서 하염없이 졸리는 것이다. 남편이 입이 찢어져라 하품이라도 하면 시어머니는 방에 자리를 봐주신다. 바깥일 하느라 고단할 텐데 눈 좀 붙이라면서. 정작 고단한 사람은 며느리인데 말이다. 그런데도 눈치 없는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 방으로 들어간다. 음식 장만하랴 상 차리랴 설거지하랴 바쁜 아내를 두고.아내는 명절에 가장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음식을 만들고 상을 차리고 웃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잘 먹지 못하는 사람이다. 아내는 가장 시장한 사람이면서도, 식구들의 배를 모두 채운 다음 숟가락을 드는 사람이다. 그나마 변비 때문에 입맛이 없어 몇 술 뜨지도 못한다. 아내는 가장 고단한 사람이면서도, 식구들 잠자리를 다 봐준 다음에야 비로소 자신의 육신을 눕히는 사람이다. 식구들이 모두 잠든 뒤에도 몸과 마음이 고달파서 제대로 잠 못 이루는 사람이다.

명절에 아내는 며느리가 된다. 여자도 아니다. 그런 상실감이 한가위를 지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내의 지친 몸과 마음을 더 힘들게 한다. 그때쯤이면 둔하고 눈치 없는 남편도 아내의 기색을 살피기 시작한다. 뭔가 따뜻한 말을 건네고 싶지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남편은 모른다. 그러니 남편은 아내의 추석 선물로 속옷을 준비해야 한다. 아내는 다른 식구들을 가장 많이 챙기면서도, 정작 자신은 챙김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니까. 가장 많은 선물을 사면서도, 정작 자신을 위한 물건은 나중으로 미루고 사지 않는 사람이니까. 아내는 가장 풍요롭다는 한가위에 가장 가난하고, 가장 섭섭하고, 가장 지친 사람이니까. 자신을 여자도, 무엇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한가위에는 아내에게 야한 속옷을 선물해야 한다. 무엇보다 남편 자신을 위해서 그래야 한다. 야한 속옷을 입고 세상에서 가장 섹시해진 아내를 한껏 누릴 사람은 바로 남편 자신이니까. 언제나 선물은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한 법이니까.  

나도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