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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엌으로 가마솥이 들어왔다 전통 부엌세간 열 가지
돌, 나무, 쇠, 흙… 자연 그대로의 재료를 가장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만든 우리나라의 전통 조리도구는 웰빙을 추구하는 현대의 라이프스타일과 코드가 일맥상통한다. 게다가 장인들의 조형 감각이 더해진 예술품으로서 눈마저 즐겁게 한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옛날 부엌에 놓였던 조리도구, 서양의 ‘모던 키친’에서 오히려 더욱 멋스럽게 빛을 발한다.


(왼쪽) 가마솥 Iron Pot


무쇠 가마솥으로 할 수 있는 것. 고슬고슬한 밥 짓기와 구수한 숭늉 끓이기는 기본, 곰국 끓이기, 갈비찜 하기, 고구마 굽기, 깨 볶기,나물 볶기, 튀김, 솥뚜껑에 달걀 프라이하기 등 온갖 요리가 다 된다. 캠핑할 때 야외용
화덕 위에 올리면 더치 오븐 대용으로도 활약한다. 가마솥에 밥을 지으면 무쇠에서 빠져나온 철분이 밥에 스며들어 철분 함량이 높아지는데, 오래된 가마솥일수록 더 좋다. 무쇠솥을 구입하면 우선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 2~3번 세게 문질러 닦아 헹군 뒤 약한 불에 올려 기름을 바르며 ‘길들인’ 후에 사용해야 한다. 3대째 장인 정신으로 가마솥을 만드는 ‘운틴가마’에는 앙증맞은 3인용(3만 원)부터 15인용(7만 5천원)까지 다양한 크기의 가마솥이 있다.

(오른쪽) 체 Sieve
곡물 가루를 곱게 치거나 액체를 밭거나 거르는 데 쓰는 기구 ‘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주방에서 자주 사용하는 도구다. 아일랜드 조리대 위쪽, 프라이팬이 걸려 있어야 할 자리를 전통 체가 대신 차지했다. 유연하고 질긴 육송을 떠서 둥글게 말아 이음매를 솔뿌리로 꿰매 ‘체바퀴’를 만들고, 가늘고 내구성이 좋은 말총으로
정밀하게 ‘체불’을 짠 뒤 체바퀴에 체불을 메워 완성한다. 씨줄과 날줄이 교차하며 만들어낸 패턴은 ‘버버리’와 ‘닥스’만큼이나 모던하다. 어떤 인공적인 재료나 방법도 사용하지 않은 전통 체에서는 공장에서 대량생산한 스테인리스 스틸 체와는 견줄 수 없는 기품과 멋이 느껴진다.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3대째 전통 체의 맥을 잇고 있는 최성철 장인의 작품으로 ‘최성철 공방’에서 구입할 수 있다.


(왼쪽) 옹기 Earthenware
흙을 빚어 재래식 자연 유약을 바르고 1,200℃에서 구워낸 옹기는 때깔이 곱고 두드리면 맑은 쇳소리가 난다. 옹기 항아리는 스스로 숨을 쉬어 나쁜 성분을 밖으로 밀어내어 맛을 고를 줄 아는 기특한 녀석이다. 풍만하고 균형 있게 흐르는 곡선의 아름다움을 지닌 항아리와 옛 모양 그대로 만든 자배기, 시루, 새우젓독, 간장병, 뚝배기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오브제지만 요즘은 양념 단지, 연꽃 물확, 우산꽂이, 티테이블, 화병을 대신해 은근한 매력을 발산하기도 한다. 1980년 처음으로 남부식 전통 옹기를 재현하고 1986년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은 ‘징광옹기’는 식탁 위의 주먹만 한 소금 단지에서부터 고추장 항아리까지 크기와 디자인이 다양한 옹기를 지어낸다.

(오른쪽) 조리도구 Cooking Tools
할머니의 할머니가 일하시던 부엌에는 주걱, 국자, 초벌밀대, 강정밀대, 마무리밀대, 고추장 젓개, 시루떡 켜는 칼, 두텁떡 자르는 칼, 인절미 써는 칼, 부침개 뒤집개 등 쓰임새에 따라 모양새가 각기 다른 조리도구가 놓여 있었다. 전통적으로 음식 만들 때 사용하는 모든 도구는 단단하며 살균 작용을 하는 평나무로 만들었는데, 떡살 장인 김규석 씨는 옛 문헌의 고증을 토대로 우리의 전통 조리도구를 재현해냈다. 홈이 파인 뒤집개(슬롯 터너), 구멍 뚫린 거품 국자(스키밍 래들), 스파게티 스푼, 평평한 뒤집개(햄버거 터너)는 모두 헹켈, 막대 끝에 구슬이 달려 전구의 필라멘트를 연상시키는 거품기는 WMF 제품. 그 밖의 그레이비 국자, 가운데 홈이 파인 스푼, 반자동 거품기는 모두 쉐어 마인드에서 판매. 나무로 만든 전통 조리도구는 ‘김규석 공방’에서 구입.


(왼쪽) 떡살 Rice-cake Pattern
우리 속담에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당장 먹을 떡에도 살 박아 먹으렸다”라는 말이 있다. 선조들은 떡을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으로 보는 데 그치지 않고 떡에 아름다운 무늬를 찍어 격을 높였다. 자식 많이 낳고 편안하게 오래오래 잘 살게 해달라는 기원이 담겨 있는 떡살 무늬는 박달나무, 감나무, 대추나무 등을 깎아 만든 예술품이다.
‘손잡이 떡살’은 전통 떡살의 맥을 잇고 있는 김규석 장인의 작품으로 ‘김규석 공방’에서 구입할 수 있다. 패턴이나 문양을 찍어내는 것은 물론이고 그냥 세워놓아도 멋스러운 장식품이 된다. 케이크 몰드와 쿠키 틀은 모두 정우공업 제품.

(오른쪽) 석쇠 Grill
‘적쇠’ 또는 ‘적철’이라고 부르는 석쇠는 서민들의 풍류가 느껴지는 한국의 전통 그릴 도구. 옛날에는 참숯을 피워 무쇠 화로에 담고, 삼발이나 다리쇠를 놓고 그 위에 석쇠를 얹은 뒤 고기, 생선, 떡 등을 구워 먹으며 멋과 운치를 즐겼다. 철사나 구리를 그물처럼 얽어서 주로 두 겹으로 만드는데, 떡이나 고기를 하나하나 뒤집지 않고 석쇠를 뒤집어가며 안팎을 고루 구울 수 있으니 얼마나 매력적인 도구인가. 지금도 직화구이의 맛을 선호하는 가정에서는 석쇠를 즐겨 사용한다. 가스레인지 위에 석쇠를 올리고 은근한 불에서 노릇하게 식빵을 구워보자. 석쇠 자국이 먹음직스럽게 찍힌 직화구이 토스트가 완성된다. 열전도율 높은 구리줄을 손으로 꼬아 만든 큰 석쇠는 ‘가야석쇠’ 제품. 


1 됫박  Measuring Bowl
나무로 만든 말, 되, 홉은 곡식이나 액체의 분량을 재는 그릇. 1말은 10되이고, 1되는 10홉이다. 10홉, 즉 1되를 큰되(대승大升)라 하고 그 반을 작은되(소승小升)라고 한다. 1되는 원래 약 1.8ℓ지만, 현재는 되와 ℓ의 환산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1되를 2ℓ로 정하고 있다. 되는 삼국시대부터 사용해온 계량 단위로, 도량형법이 미터법으로 바뀌면서 사용이 줄었다. 하지만 쌀이나 보리 등 곡물의 양을 잴 때나, 떡을 만들기 위해 쌀가루와 고물의 비율을 맞출 때는 계량컵보다 됫박이 더 어울린다. 앤티크 됫박은 곡성당에서 판매. 계량스푼과 계량컵 등 서양 측정 도구들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2 절구 Mortar
향이 살아 있는 음식이 맛있다. 커피 원두도 먹기 직전에 분쇄해야 향을 최대로 살릴 수 있고, 돈가스 전문점에서도 소스에 뿌릴 참깨를 먹기 직전에 빻을 수 있도록 서빙해준다. 향은 휘발성이라 시간이 지나면 날아가버리기 때문이다. 영국의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는 소형 절구를 이용해 양념을 찧으며 요리 퍼포먼스를 펼친다.
할머니의 부엌에 있던 전통 절구의 자리를 요즘은 믹서와 분쇄기가 대신하지만, 절구공이로 재료의 분도를 ‘적당히’ 조절하면서 찧어 곧장 요리에 사용했을 때만큼 맛과 향이 깊을 수는 없다. 싱크대에 올려놓는 것만으로도 아우라가 느껴지는 돌절구(3만 6천 원)는 전북 장수의 천연 곱돌을 깎아서 만든 것으로 ‘장수청정마을’에서 판매한다. 절구질할 때 돌가루가 떨어져 나오지 않는다. 갈거나 찧을 때 사용하는 스테인리스 스틸 도구는 모두 실리트 제품.

3 무쇠 칼 Kitchen Knife
손에 쥐었을 때 착 달라붙는 전통 무쇠 칼은 어떤 명품 외제 칼도 흉내 내지 못할 만큼 야무지다. 버선발처럼 선이 고운 무쇠 칼(1만 원)은 남원에서 3대째 대장간을 운영하는 ‘은성식도’ 박판두 장인이 만드는데, 칼날에 ‘朴’자가 찍혀 있어야 진품이다. 강철을 두드려 칼 모양으로 오린 뒤에 석탄불에 빨갛게 굽는다. 망치로 두드려 잡성분을 빼고 모양을 반듯하게 잡아주는 ‘다디미질’과, 빨갛게 달아오른 칼을 찬물에 담가 단련시키는 ‘담금질’을 거쳐 단단하고 날렵한 부엌칼을 완성한다. 날이 무뎌졌다 싶으면 숫돌에 갈거나 질그릇에 슥슥 문지르면 금세 날이 선다. 부엌칼의 진가는 무채를 썰어봐야 제대로 알 수 있는데, 손목에 힘은 적게 들어가면서 깔끔하고 간결하게 무채가 썰린다.

구선숙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