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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아이디어]전통 공예에서 현대 디자인까지 오방색의 재발견
우리에게는 ‘오방색’이라는 독특한 색채 문화가 있습니다. 삼라만상의 모든 이치를 음양오행의 원리로 이해한 우리 선조들이 동서남북과 중앙의 오방위에서 청색・백색・적색・흑색 ・황색 등 다섯 가지 색을 찾은 것이지요. 전통 방식으로 염색한 쪽빛 무명, 아마포로 덧바른 흰색 문갑, 붉은색 주칠 소반, 황금빛 호박 노리개, 흑칠 반닫이 등 선조들의 생활 속에서 발견한 다섯 가지 빛깔을 모티프로 봄빛 가득한 디자인 제품을 모았습니다. 오방색에서 오간색에 이르기까지, 우리 전통 색의 아름다움과 그 의미를 만나봅니다.

,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기운
청색은 방위로는 동쪽을 상징하며, 계절로는 만물이 소생하는 봄으로 성장과 풍요를 의미한다. 청색도 적색과 마찬가지로 액막이로 많이 쓰였다. 태양이 솟는 동방을 의미하는 청색은 강한 생명력을 나타내는, 양기 가득한 색이라 잡귀를 예방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혼례에서 청사가 빠지지 않고 신부 옷에 청색을 넣은 것도 같은 이유. 오행 사상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동방이고 방위와 맞는 색이라 하여 청색은 서민에게도 허용해 상하 구별 없이 널리 사용되었다. 더 나아가 음양오행설을 근거로 고려 충렬왕 때와 조선 태조 초기에는 흰옷을 입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다. 서방의 색인 흰색이 동방인 우리나라의 기운을 막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왼쪽) 쪽빛 무명 옷감은 전통 염색가 한광석 씨 작품. 30여 년 이상 벌교 지곡리에서 전통 방식의 천연 염색을 계승해오고 있는 그는 쪽색이 곧 조선 색이라 말한다. 봄이면 씨를 뿌리고 여름이면 쪽풀을 베어 염료를 만들고 가을이면 염색한 천을 마름할 때까지 모든 작업이 전통 방식 그대로 그의 두 손에서 이루어진다. 소파는 하이메 아욘이 2006년 발표한 쇼 타임 시리즈의 하나로 고전 뮤지컬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것이다. 유기적이고 미래적인 디자인의 플라스틱 소재와 클래식한 느낌의 가죽 디테일이 이루는 대비와 조화가 인상적이다. aA 디자인 뮤지엄에서 판매. 장소는 쿠바.

(오른쪽) 플라스틱 소재의 파피루스 체어는 카르텔, 꽃 그림이 있는 조립식 스툴은 도데카에서 판매. 부드럽고 보송보송한 고무 소재의 하늘색 다용도 함과 스텔톤 Stelton 보온 물병, 플러스마이너스제로 디자인의 짙푸른 색 전자계산기는 10꼬르소꼬모에서 판매. 청화백자 접시는 모두 정재효 씨 작품으로 정소영의 식기장에서 판매. 이창화 씨 작품인 찻주전자, 이지혜 씨 작품인 구름 모양 자석 장식은 모두 이도에서 판매. 푸른색 트레이 위에 아홉 개의 작은 사각 종지가 담긴 오브제는 피터르 스톡만스 Pieter Stockmans 작품으로 리유에서 판매.



, 온화하고 너그러운 자연의 색
오방색에서 흰색은 방위상으로 서쪽을, 계절로는 가을을 나타낸다. 우리 민족에게 흰색은 곧 소색 素色이다. 소색은 가공하지 않은 무명, 삼베, 한지 등에서 볼 수 있는 자연의 흰색이다. 빛나는 흰색을 만들기 위해 무명을 뽕나무 잿물에 삶아 표백하기도 했다지만 우리 일상의 흰색은 소색이었다. 조상이 살던 집 안 풍경을 보면 벽과 창은 한지와 닥종이 등 백색조로 마감되어 있고 문인화와 함께 공간을 장식하는 백자 항아리가 놓여 있다. 사람들은 흰옷을 즐겨 입었으며 문갑과 장롱 같은 가구도 무채색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무색에 가까운 은은하고 편안한 주거 공간의 색감은 주변의 화려한 자연의 색과 안정적인 조화를 이루어냈다. 백의민족인 우리 선조들이 즐겨 사용한 소색에서 전통문화가 지닌 자연주의의 단면을 읽을 수 있다.

(왼쪽) 표면을 리넨으로 마감한 가구가 우리 민족이 즐겨 사용한 흰색, 즉 소색의 예를 잘 보여준다. 다실의 다기장, 거실의 장식장이나 오디오장 등으로 활용하기 좋은 이 장은 문이 앞뒤로 달려 있어 공간을 나누는 파티션 역할도 한다. 장응복 씨 디자인으로 모노콜렉션에서 판매. 물결무늬 청화백자 볼은 정재효 씨 작품, 원형 접시의 테두리를 십각으로 변화를 준 백자 접시는 송민호 씨 작품으로 모두 정소영의 식기장에서 판매. 장소는 aA 디자인 뮤지엄.

(오른쪽) 코끼리 모양과 토끼 모양은 펠트로 만든 티포트 워머로 팀블룸에서 판매. 삼각형 접시와 테이블 위 소서는 친환경 일회용 그릇 브랜드 와사라 제품으로 2010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서 만나볼 수 있다. 다양한 오브제가 놓인 원형 플라스틱 커피 테이블은 1960년대 네덜란드 빈티지로 aA 디자인 뮤지엄 소장품. 백자 항아리는 서영기 씨 작품으로 한국공예문화진흥원에서 판매. 도자기로 만든 계량스푼 세트와 접시 한가운데 부엉이가 앉아 있는 모양의 레몬즙기는 팀블룸, 소라 모양 오브제와 함께 놓인 머그잔과 볼은 모두 정소영의 식기장에서 판매. 세 칸으로 나뉜 화이트 볼은 이노메싸, 종잇장처럼 단면이 얇은 원형 오브제는 피터르 스톡르스 작품으로 리유에서 판매.



, 자연의 생명력과 태양의 에너지
적색은 음양오행설에 따르면 방위로는 남쪽에, 계절로는 여름에 속한다. 양기가 왕성하고 만물이 무성해 생명을 낳고 지키는 힘으로 상징되어 생명의 근원과 신비, 태양을 의미하는 색이다. 길한 의미뿐 아니라 잡귀와 병마의 접근을 막는 주술적 의미도 있다. 노인과 어린이가 늘 홍색 주머니를 차고 다닌 것도 모두 이런 의미 때문이다. 양의 색인 적색은 혼례 등 길한 일에는 반드시 청색과 짝을 이뤄 사용했다. 전통적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순수한 빨간색은 권력을 상징했기에 일반 서민이 빨간색을 즐겨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말 고종이 곤룡포 색을 적색에서 황색으로 바꾸면서 일반인의 적색 사용이 완화되었다. 외국인 선교자 에른스트 오페르트는 <조선 기행>에서 당시 어린이들의 가장 흔한 옷 색깔로 진홍색을, 부녀자의 복색으로는 장밋빛을 들었다. 이처럼 조선시대 초・중기에는 상위 계급의 색으로, 말기에는 일반인의 의복에 적색이 많이 사용되었다.

(왼쪽) 붉은빛 주칠은 생칠에 천연 염료인 주사 朱砂 가루를 섞은 옻칠이다. 주사는 매우 귀한 재료였던 만큼 왕실 이외에는 사용이 금지되었다. 왕비의 방에 주칠 나전 삼층장, 주칠 경대 등이 놓였고, 주칠 소반은 원반이라 하여 주칠 대원반과 곁반인 주칠 소원반으로 임금의 수라상에만 사용할 수 있었다. 상판에 매화가 그려진 풍혈반과 주칠 개다리 소반은 이형만 씨 작품, 자개로 그림을 그려 넣는 나전칠기와 달리 색옻칠로 그림을 그린 채화칠기 원반은 최종관 씨 작품으로 모두 크로스포인트 갤러리에서 판매.
채화칠기 소반 위의 진사 도자기는 이창화 씨 작품으로 정소영의 식기장에서 판매. 소반 앞에 놓인 볼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부엌 가구는 이탈리아 스나이데로 Snaidero사의 ‘비너스’로 유선형 대칭 구조를 이루는 스틸 소재 상판과 조명등, 붉은색 가죽으로 마감한 수납장 도어가 고급스러움을 더한다.

(오른쪽) 베르너 판톤의 하트 콘 체어는 비트라에서 판매. 밝고 경쾌하게 해석한 복고풍 디자인의 클래식 TV는 LG전자 제품. 원기둥 모양의 주황색 화병은 디자인 갤러리, 자주색 초는 어바웃어, 자줏빛 투명 유리 화기는 이노메싸에서 판매. 오렌지색 블랭킷은 겐조 제품으로 다브에서 판매. 다듬잇돌 모양의 도자기 테이블은 이창화 씨 작품으로 정소영의 식기장에서 판매.
테이블 위의 향초는 딥디크 제품. 꽃잎 모양의 주황색 플레이스 매트와 자줏빛 화병은 피숀에서 판매.



, 풍요로운 대지의 빛
오행설에서 황색은 빛의 색이고 흙의 색이다. 흙은 만물을 소생시키는 근원이고 풍요의 상징이기에 황색은 오색 중 가장 고귀한 색으로 여겼다. 방위로 보면 동서남북의 중앙에 위치하며 천하를 통치하는 천자를 상징한다. 신라시대부터 중국 제도를 모방해 황제의 색이라 해서 일반인은 황색 옷을 금했다. 고려시대까지 황색 곤룡포의 전통을 이어왔지만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청색 곤룡포를 입었다. 고려의 색인 황색, 즉 토 土의 기운을 누를 수 있는 것은 상극인 목 木의 기운을 가진 청색이라고 여겼기 때문. 태종대에는 중국 황제의 색이라는 이유로 조선의 왕도 황색을 입지 못했으나 이는 조선 말기 청국의 간섭에서 벗어나면서 사라졌다. 고종은 대한제국을 이끌면서 스스로를 황제라 이르며 황룡포를 입었고 이후 서민들도 치자로 물들인 황의를 입는 풍속이 유행했다.

(왼쪽) 1950년대 영국에서 제작한 빈티지 캐비닛은 aA 디자인 뮤지엄에서 판매. 프랑스 패션의 대가 앙드레 쿠레주 패션 하우스가 디자인한 병, 일일이 수공으로 작업한 레이블이 시각적인 풍미를 더하는 샴페인 ‘아르만 데 브리냑’은 인덜지코리아에서 판매.

(오른쪽) 스툴 위에 놓인 대삼작노리개는 담연 제품. 대삼작노리개는 옛 여인들이 큰머리 정장을 할 때 사용한 것으로 노리개 중 화려하기로 으뜸이다.
아이 주먹만큼 큼지막한 밀화불수 蜜花佛手, 산호 가지, 나비 형상의 옥 등이 한 세트로 삼작을 이룬다. 이 중 밀화는 반투명한 황색 호박을 이르는 것으로 노리개를 비롯해 족두리, 화관 등을 장식하는 소재로 조선시대 복식에서 중요한 요소였다. 클래식한 멋을 더하는 스탠드 조명등은 와츠라이팅, 라임 옐로 컬러의 사다리는 카르텔에서 판매. 원형 스툴은 꼰비비아 제품. 테이블 스탠드 조명등은 카르텔, 옆에 놓인 열매 모양의 장식 볼과 바닥에 놓인 유리 볼은 피숀에서 판매.



흑, 만물을 관장하는 신의 세계
오방색에서 흑색은 북쪽을, 계절로는 겨울을 나타낸다. 흑색은 태양이 사라진 어둠을 상징하며 죽음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만물의 생사를 관장하는 신으로 여기기도 한다. 흑색의 범위에는 검은색, 현색, 담흑색, 회색까지 포함한다. 검은색도 흑, 암, 현, 칠 등 여러 가지가 있어 검은색을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 선조들이 복색으로 사용한 흑색에는 두 종류가 있다. 붉은빛이 도는 흑색은 왕세자의 관복이나 백관의 시복 색상이었고 붉은빛이 없는 흑색은 흉례복의 색상이었다. 쪽물을 짙게 들여 붉은빛이 도는 검은색인 아청과 같은 귀한 흑색은 주로 제복에 사용했고 천한 흑색은 천민의 옷에 사용했다. 때로는 오간색이 오방색을 대신하기도 했는데 벽색이 청색을 대신하고 자색과 홍색이 적색을, 유황색이 황색을 대신하듯 검은색을 대신한 것은 압두록색(청둥오리 이마의 녹색)이라 하여 녹색 계열이었다.

(왼쪽) 옻나무 껍질에 상처를 내어 나오는 액을 받아 수분을 제거하면 맑고 투명한 생칠 生漆이 된다. 이 생칠에 산화철을 섞어 만든 흑색의 칠 도장이 바로 흑칠 黑漆이다.
흑칠은 궁중과 사대부뿐 아니라 일반 서민도 널리 사용한 도장법으로 때로는 흑칠 자체의 위엄을 드러내기도 하고, 때로는 나전의 화려함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도 했다. 흑칠 나전 반닫이는
20세기 초반에 제작한 것으로 크로스포인트 갤러리 소장품. 장소는 JK 스페이스 갤러리.

(오른쪽) 바버 오스거비가 디자인한 파빌리온 체어는 aA 디자인 뮤지엄, 하나씩 떼어 사용하는 막대 초는 어바웃어, 와이어 테이블 램프는 에이치픽스, 스틸 소재의 정사각형 테이블은 디자인 파일럿, 빈티지 포스터 같은 디자인의 케이스에 담긴 비누는 산타마리아 노벨라에서 판매. 과일이 담긴 청자 볼은 이은범 씨 작품으로 정소영의 식기장에서 판매. 입구가 뾰족한 올리브 그린 도자기 화병은 에이치픽스, 수세미 열매 모양의 유리 화기는 모두 디자인 갤러리에서 판매. 벽에 기대어놓은 작품은 김건희 작가의 에칭 판화로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성은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