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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칸 다실갖기] 사기장 신한균 씨의 다도 이야기 찻사발 우리의 보물
영롱한 찻물처럼 맑은 사람이 되게 하는 힘은 가족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차 한잔에 있습니다. 한잔의 차를 마시기 위한 일련의 과정에는 단순히 마신다는 행위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정신적 기쁨, 인생의 향기로움을 얻을 수 있는 이 시간을 위해 <행복>에서 ‘한 칸 다실 갖기’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허달재, ‘문향’, 한지에 설색, 2008

우리나라는 신라 때부터 조선 초까지 차의 나라였다 차인들이 차를 마시는 행위를 다도 茶道라 하는데, 중국인들은 다도를 차를 이용한 행위 예술이라 하여 다례 茶禮라 부르기도 한다. 왕성하던 우리의 차 문화는 조선 중기부터 퇴보의 길을 걷게 된다. 다행히 오늘날 다도를 즐기는 차인이 늘어나고 있다. 조선 시대에 사라졌던 차 문화가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에차는 빠르고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정신 수양과 건강 음료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주요한 다구 중 하나인 찻사발과 그릇에 대해 몇 마디 드리고자 한다.
조선 중기,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30~40년 전쯤, 우리 땅에는 각 지방마다 그 지방의 토속미를 듬뿍 담은 그릇이 있었다. 이 그릇은 사발 혹은 그보다 조금 작은 보시기였다. 이들은 청자와 분청자, 백자에 속하는 것도 있었고,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도 있었다. 밥그릇, 약그릇, 반찬 그릇, 젓갈 그릇, 필세, 제기 등 그 용도는 다양했다.
이것이 일본으로 건너가 말차(가루차)를 마시는 찻사발이 되었다. 그 중에서 한 점은 국보로, 다른 많은 것들은 보물(중요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다. 국보로 지정된 사발과 같은 종류를 일본인들은 ‘이도(井戶) 다완’이라 부르며 찻사발의 황제로 받들고 있다. 이도라는 말은 ‘다나카’나 ‘나카무라 와 같이 일본 사무라이 성씨 姓氏의 하나다. 우리가 ‘막사발’이라 하거나 일본식 한자 발음인‘정호 井戶’ 다완이라 부르는 것이 그것이다.

막사발이 아니라 황도사발 일본의 한 미학자가 말했다. “우리의 국보인 이도 다완을 한국인들은 천한 잡기라는 뜻으로 ‘막사발’이라 부른다. 이것은 한국인이 이도 다완을 예술품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비록 한국 땅에서 태어났지만 이도 다완을 예술품으로 승화시킨 사람은 심미안을 가진 우리 일본의 차인들이었다. 하여 이도 다완의 진정한 고향은 일본이다. 그래서 우리의 국보가 되었다.”
여기에 길게 시비할 이유가 없다. 이도 다완(필자는 황도사발이라 부르며, 그렇게 불러주길 바라고 있다)은 막 쓰는 막사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영남 지방의 민가에서 제사 때 밥(메)을 올리는 제기, 즉 제기용 메사발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민족에게 제기는 신주단지와 같은 물건이다.
도자기 기술은 16세기까지는 중국과 우리나라가 최고였다. 그 기술로 빚어낸 사발이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사기장 후손인 우리가 조상이 만든 사발을 ‘막사발’이라 천하게 부르니 가슴이 답답하다.

도자기 그릇은 생명체다 한 점의 도자기가 태어나는 과정을 따라가 보면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 불에 의해 살아 있는 도자기와 죽은 도자기가 결정된다. 그러나 생명을 얻었다고 해서 모두 살아 있는 그릇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기장들에게 전해지는 말이 있다.
“그릇은 사기장이 1/3을, 장작으로 불타는 가마가 1/3을 만든다. 마지막 1/3은 사용하는 사람이 만들어낸다.”
이 말은 그릇을 사용하는 자에 의하여 그 그릇이 명품이 될 수도 있고 흔한 잡기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우리 옛 사기장(일본말로는 도공)들은 도자기를 ‘판다’고 하지 않고 ‘시집보낸다’고 했다.

옛 어른들의 손때가 묻은 가보 옛날 학생 때 들은 이야기다. 한번은 한국의 교수들이 대만의 어느 대학 총장으로부터 식사 초대를 받았다. 만찬이었다. 그런데 음식이 담긴 그릇은 금이 가거나 약간 깨지기까지 했다. 초대받은 교수들이 그것을 의아하게 여겼다. 어떤 사람은 불쾌한 기색까지 내보였다. 그것을 알아차린 대학 총장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 그릇들은 대륙에서 피난 올 때 목숨 걸고 챙겨 온 우리 집 가보입니다.” 누군가 나에게 어떤 그릇이 좋으냐고 묻는다면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의 손때가 묻어 있고 숨결이 남아 있는 그릇’이라 답할 것이다.

(왼쪽) 사기장 신한균 선생이 만든 찻사발

글을 쓴 신한균 선생은 고 신정희 사기장의 장남이다. 경남 양산 통도사 부근에서 신정희요를 운영하고 있다. 매년 세계 각국의 유명 화랑에 초대되어 전시회를 연다. 저서로는 <우리 사발 이야기>, 도예 장편 소설 <신의 그릇>, 이 소설의 일본어판 <神の 器>, 한・일 찻사발을 비교 분석하여 일본에서 출판한 <고려다완 高麗茶碗>, 일본다도학회 회장과 공동으로 저술한 <사발> 등이 있다.


최혜경, 신한균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