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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칸 다실갖기- 차를 즐기는 사람들]조각보 작가 김명숙 씨 사람과 자연이 벗 삼은 소박한 다실
마당 한가운데 감나무에 앉아 수런거리는 새소리에 아침을 맞이하고 창가로 드리우는 햇살을 보고 시간을 가늠하는 곳. 경남 하동, 조각보 작가 김명숙 씨의 자연이 함께하는 소박한 다실을 찾았다.

1경남 하동, 소박한 한옥 별채에 마련한 한 칸 다실.

“마을 회관이 우측에 보이면 거의 다 도착한 거예요.” 아담한 마당이 있는 단아한 한옥을 꿈꾸다 고향 안동에서 하동으로 터전을 옮기게 되었다는 조각보 작가 김명숙 씨. 시원스럽게 펼쳐진 논밭을 지나 자그마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에 들어서니, 낮은 나무 대문 안쪽으로 동화 같은 정원이 자리한 소박한 한옥이 눈에 띈다. 뒤편의 대나무 숲과 뜰을 보고 첫눈에 반해 3년 전 이곳에 터를 잡은 그는 오래된 한옥을 보수하면서 가장 먼저 다실을 마련했다. 차를 즐긴 지 10년째, 김명숙 씨에게는 긴 시간 간직해온 아름다운 다실 풍경이 있었다. 안온한 햇살이 가득한 방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창문이 있고, 그 창가에는 작은 옹기들을 가지런히 놓아둔다. 여문 꿈 한 가지를 보태면 창 너머로 목련 나무 한 그루 심는 것. 봄에는 청초한 꽃잎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겨울에는 앙상한 나뭇가지에 솜이불 같은 눈을 이고 있는 풍경을 바라본다면 더없이 행복할 것이다. 결혼 후 20년 이상을 살아온 아파트에서는 이 모든 그림이 하나의 꿈에 불과했다. 작은 창밖으로는 나무가 아닌 칙칙한 콘크리트 벽이 시야를 가로막았고, 차를 마시며 자연의 새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그가 고향을 등지고 차 맛 좋은 남도에 소박한 한옥을 마련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꿈꾸던 다실을 가질 수 있다는 것. 물론 다실은 하루 중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잠깐이라도, 다실에서 차 한잔하고 있으면 문득 일상이 특별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언젠가 운동 삼아 뒷산에 올랐는데, 예쁜 나뭇가지가 눈에 띄어 꺾어다 호리병에 꽂아두었어요. 차를 마시며 바라보는데, 갑자기 그 시간이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다실은 사람을 감성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앞뜰 감나무에 새들이 앉아 지지배배 우는 모습이 정겨워 보이고 비 오는 날 창문 밖 처마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멋진 하모니로 들리니 말이다. 호젓이 혼자 마실 때는 나 자신을 돌아보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친구가 왔을 때는 그를 아끼는 마음을 전하는 우정의 표현으로 차를 즐긴다. 친구랑 둘이 차를 즐기지만, 다음에는 그 친구가 다른 친구를 데리고 오고, 어느새 단체 손님이 몰려오기도 한다. 이처럼 다실은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우리 집을 좋아하고 자주 찾는 것이 바로 소박해서가 아닐까요. 이 정도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에서인 것 같아요. 좋은 다기가 가득 진열된 다실에 들어가면 차를 접하기 전에 덜컥 겁을 먹지요. 우리 집 다실은 그냥 시골 방 같아 부담이 없으면서도, 조용해서 차를 즐기기 좋아요. 찻잔은 동네에 도자기 굽는 사람이 있어 자연스럽게 하나둘 모은 거예요.”


2 다실 한가운데 소나무를 켜서 만든 오픈 수납장이 있다. 차 사발을 하나씩 장식하면 그 자체로 소박한 아트월이 된다.
3 조각보와 문틀, 다기, 꽃이 어우러진 다실 풍경. 나뭇가지와 들꽃이 어우러진 자연스러운 꽃꽂이를 즐긴다.


한 칸 다실로 사용하는 별채에는 원래 방이 두 칸 있었다. 한옥과 흙집의 경계가 모호한 별채의 방을 하나로 트고 천장을 뜯어낸 뒤 서까래 구조를 살렸다. 대신 방 가운데 오픈 수납장을 세워 내력벽처럼 천장을 지지할 수 있게 했다. 크고 작은 창문이 많은데, 전면에는 통창을 만들어 조각보를 커튼 삼아 드리웠다. 조각보를 짓는 것 외에도 전통 문을 컬렉션하는 김명숙 씨는 문을 가로로 뉘어 다기장으로 사용한다. 청자, 백자, 분청사기부터 투각한 것까지 많은 종류의 찻잔이 문창살에 하나씩 끼워져 있다. 송판 두 개를 겹친 소박한 찻상을 사용하고 바닥에는 다다미를 깔았다. 여름에는 눅눅하지 않고 겨울에는 한기를 막아주어 방석이 필요 없다. 마치 꽃이 자연 속에 있을 때 제일 예쁜 것처럼, 집 자체가 소박하니 집처럼 소박한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은 듯 잘 어울린다.
“찻잎을 직접 따고 덖어보니 세상에 맛없는 차는 없더라고요. 좋은 차, 좋은 다기, 좋은 찻상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시작할 필요는 없어요. 우선 차 마시는 것 자체를 즐기세요. 형식은 그다음에 갖추어도 충분합니다.” 얼마 전부터 그의 딸도 차를 즐기기 시작했다. 여느 젊은이처럼 차보다 커피를 좋아하던 딸 윤나 씨는 하동 집에 놀러 올 때면 책을 읽거나 차를 마시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곤 했단다. 어머니의 영향 때문인지 결혼 준비를 하면서 거실을 다실로 꾸미고 싶어 하는 딸에게 아끼던 느티나무 찻상과 찻잔 몇 가지를 내주었다는 김명숙 씨. 처음에는 무리하지 않고 분수에 맞게 차를 즐기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차를 즐기다 보면 다도의 형식적인 부분들을 자연스럽게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단다. 차를 왜 조용히 마셔야 하는지, 찻잔은 왜 두 손으로 잡아야 하는지, 찻상은 왜 낮아야 하는지 머리로 배우지 않아도 가슴으로 깨닫게 된다.

대나무를 스치는 바람이 맑은 소리를 선사하는 오후 3시, 녹차를 마시기 좋은 시간이다. 멀리 짙푸른 산 그림자가 바라다보이는 다실에 앉아 차를 마시고 조각보를 지으며 마음을 걸러낸다. 자신을 돌아보며 몰입하는 행복한 순간, 30분이면 충분하다.


소박한 다실 꾸밈 아이디어
1
한식 다실에 조각보 소품이 조화롭다. 조각보는 버려지는 조각 천을 바느질해 또 다른 쓰임새를 만드는 것. 보통 옷을 짓고 남은 천, 오래 사용해 낡은 천 등을 오려 이어 붙이는 것으로 이 세상에 허투루 버릴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조상들의 지혜다. 한복집에서 자투리를 얻어다 조각보를 짓는 김명숙 씨는 모시 조각보를 창문에 드리워 커튼처럼 사용한다.
2 오래 전부터 옛날 문을 수집했다는 김명숙 씨. 안동 골동품 가게 학고당(054-857-3331)에서 구입한 것이다. 오래된 한지를 뜯어내고 가로로 뉘여 벽에 세워두면 다기장으로 변신. 액자처럼 걸어 황토벽을 장식하기도 한다.


3 조각천과 바느질 도구들이 들어있는 바구니는 소박한 다실에 잘 어울리는 소품이다. 자연의 감각이 느껴지는 찻상은 소나무 송판 두 개를 겹쳐 사용하는 것. 소나무를 두툼하게 켜서 사포질하고 동백기름을 발라 말린다. 동백기름 대신 올리브유를 얇게 세 번 정도 덧발라도 된다.
4 벽장 아랫부분은 문을 달지 않고, 색동 베개를 넣어 장식했다. 겨울에는 몸이 따뜻해지는 발효차를 즐기는데, 발효차는 작은 항아리에 넣고 한지 뚜껑을 덮어 보관하는 것이 좋다. 다실 안에는 크고 작은 항아리가 곳곳에 놓여져 있는데, 물을 담아두는 용도로도 사용한다. 단지에 물을 정화시켜 사용하는 것은 차를 마시는 데 기다림의 미학을 배울 수 있다.

이지현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