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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의 백가기행]시인 박남준 씨의 악양산방 홀로 있어도 두렵지 않고 세상에 나가지 않아도 근심이 없다
지리산을 등지고 섬진강을 바라보며 너른 들판을 품은 땅. ‘굶어 죽는 사람 없고 자살하는 사람 없다’는 지리산의 온화하고 풍요로운 기운이 내리쬐는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에 시인 박남준 씨의 3칸 오두막집이 있다. 한 달 생활비 30만 원이면 족하다는 이 빈자는 자연의 품 안에서 그 누구보다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


박남준 시인의 오두막은 객이 많은지라 부엌 찬방에 넉넉한 크기의 평상을 놓았다.

점을 치는 책이 <주역 周易>이다. 주역의 ‘택풍대과 澤風大過’ 괘에 보면 ‘독립불구 둔세무민獨立不懼 遁世無悶’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홀로 있어도 두렵지 않고, 세상에 나가지 않아도 근심이 없다’는 뜻이다. 세상과 떨어져 혼자 있어도 두렵지 않을 수 있는가? 두렵지 않다면 점을 칠 필요가 없다. 세상에 나가지 않아도 근심이 없을 수 있는가? 근심이 없으면 이 역시 점을 칠 필요가 없다. 두려움과 근심이 없는데 점을 쳐서 무엇하겠는가. 그만큼 세상살이에서 ‘독립’과 ‘둔세’는 어렵다. 내가 보기에 시인 박남준 씨는 독립한 사람이다. 혼자 산다. 결혼을 하지 않았고, 동거도 하지 않았다. 숨겨놓은 자식도 없다. 그렇다고 스님도 아니다.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은 스님은 절이 있고 신도가 있다. 박남준 씨는 승복도 입지 않았고 절도 없다. 그러면서도 산에서 산다. 이 세상에 나와서 철저하게 혼자 사는 것이다. 주역으로 풀이하면 ‘독립불구’의 인생이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이 ‘독립자’는 무엇을 먹고, 어떤 집에서 사는가. 순전히 시 詩만 써서 먹고산단 말인가? 누가 먹을 것을 갖다 주는 것인가? 그 거처는 어떻게 생겼는가? 박남준 씨는 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사람임에 분명하다. 독립불구 박 시인은 지리산 남쪽 자락인 악양 岳陽에 산다. 악양면 동매리 東梅里 동네 맨 뒤쪽에 있는 3칸 오두막집이다. 악양은 동천 洞天이다. 원래 동천은 신선들이 사는 곳을 일컫는 표현인데, 풍광이 좋다. 뒤는 지리산이요, 앞은 섬진강이고, 그 사이에 수백만 평의 넓은 들판이 있어서 곡식이 많이 난다. 섬진강을 따라 내려가면 남해 바다가 나온다. 산과 강과 들판과 바다가 모두 어우러진 곳이 악양이다. 지리산은 ‘굶어 죽는 사람 없고 자살하는 사람 없는’ 산이다. 인삼 빼고 모든 약초와 산나물이 있는 산이 지리산이다. 그 지리산 영봉의 기운이 내리쬐는 곳이 악양이다. 섬진강에는 은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만 가지 민물고기가 산다. 섬진강 너머로는 백운산이 보인다.

(위) 오두막 곳곳에 방울 같은 작은 장식품이 공중에 매달려 있다. 이동할 때마다 머리에 부딪치는 것이 거추장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머리에 부딪치라고’ 달아 놓은 물건이다. 집이 작아 천장도 낮다 보니 방울이 없다면 낮은 대들보와 문틀에 이마를 찢기 십상이라 방울로 이를 방지한 것이다.


1 2천여 장의 CD로 채워진 이곳이 15평 남짓한 이 작은 오두막에서 가장 호사스러운 공간이다.
2 시인의 오두막집은 동네 끝자락 막다른 골목에 자리해 더없이 한적하고 아늑하다.



3 뒷마당에는 박남준 시인이 직접 만든 연못과 원두막이 있다.
4 여름이면 커다란 잎에 비 떨어지는 소리가 그만인 파초가 무성하게 자라난 정원에서 박남준 시인이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지리산 기운이 남해 바다로 곧바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산이 백운산이다. 그래서 더 좋다. 악양은 이런 곳이다. 그러다 보니 대한민국의 낭인들이 한번 살아보고 싶어 하는 지역이 바로 악양이다. 양지바르고 먹을 것 풍부하면서 지리산과 백운산의 영봉 靈峰들이 품고 있는 명당이 이곳인 것이다. 어릴 적에는 어머니 품이 좋듯이, 성인이 되어서는 안개와 저녁노을을 바라볼 수 있는 영봉의 품에 안겨야 한다. 상팔자가 아니면 영봉의 품속에서 살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조직과 봉급을 떠나서는 두려움과 근심을 떨쳐버릴 수 없는 머슴의 삶을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악양동천 岳陽洞天은 이런 두려움을 가시게 해주는 천혜의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악양면 동매리에 있는 박 시인의 집은 스님이 사준 집이라고 한다. 본인이 돈을 모아 장만한 집이 아니다. 그는 이곳에 오기 전에는 김제의 모악산에 살았다. 모악산 문수암 올라가는 길 중간에 있던 흙집에서 살다가 양지바른 이 악양으로 이사 오게 된 것인데, 평소 알고 지내던 스님이 이 집에서 살기를 강력하게 권유했다. 집이라기보다는 오두막이라는 표현이 더 맞다. 장식은 일절 없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만 배치되어 있다. 오두막 크기는 3칸이다. 방 하나에 부엌 하나가 전부다. 15평이나 될 것 같다. 방에는 책들이 꽂혀 있고, 눈에 띄는 품목은 CD이다. 약 2천 장의 CD가 책장에 쌓여 있다. 이 오두막의 일용할 양식은 CD요, 음악임을 알 수 있다. 빈자 貧者의 친구는 음악이 되는 것인가! 부엌이 가관이다. 시인은 요리를 잘한다. 특히 국수를 잘 끓인다. 와인 잔도 대여섯 개 선반에 얹혀 있다. 손님들이 자주 온다는 증거다. 간장 종지, 참기름 병, 반찬 그릇 등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다. 부엌에는 일고여덟 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목재로 만든 네모진 평상이 있다. 밥상도 되고 술상도 되고 찻상 茶床도 되고, 책을 보는 책상도 된다. 투박함과 세월이 같이 묻어 있어서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평상이다. 그 평상 옆에 자그만 책꽂이가 있고, 무슨 책이 꽂혀 있는가 하고 보니, <민물고기> <야생화> <자원수목도감> <육조단경> <원각경> <문학사상> <체 게바라 평전> <월든> <한국민간요법> 같은 책들이다. 자연, 경전 그리고 혁명이 그 키워드라 하겠다.


이 작은 오두막은 손님이 많다. 많을 때는 하루에 4~5팀의 손님이 다녀가기도 하는데, 박남준 시인은 손님이 오면 차를 대접하거나 음식을 대접하는 부엌 찬방 한구석에 돼지 저금통을 마련해 놓았다. 질병과 가난으로 인해 고통받는 세계의 아이들과 북한 어린이들 위한 모금함이다.

“음악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가?” “하나만 꼽는다면 독일 출신의 데이비드 달링 David Dalling의 첼로 곡을 좋아한다.” “혼자 사는 즐거움이 있는 것인가? 있다면 무엇인가?” “밥을 해서 된장국에 말아 먹고 난 다음에 샘물을 길어 와 차를 끓여 마시고, 음악을 듣는 것이다. 이때가 가장 행복하다. ‘나만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죄책감 비슷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한 달 생활비는 얼마나 드는가?” “30만 원쯤 든다. 여기저기에서 나오는 원고료 수입이다. 담뱃값과 오토바이 기름 값이 주요 지출이다. 쌀값은 별로 안 든다. 1년에 먹는 쌀은 평균 2~3가마니 정도 되는데, 손님이 오면 같이 먹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이 드는 셈이다. 인근에서 농사짓는 후배들이 쌀은 갖다 준다. 그래서 쌀 걱정은 없다. 작년에는 7가마니나 들어와 오히려 내가 다른 후배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몸만 크게 아프지 않으면 큰돈 들어갈 일이 별로 없다.” “반찬거리는 어떻게 충당하는가?” “텃밭에서 내가 직접 재배한다. 가지, 호박, 무, 고추, 깻잎, 향이 독특한 고수 등이 나온다. 반찬거리는 자급자족이다.”


1 산 위에서 내려오는 계곡이 집 옆으로 흐른다. 계곡의 물소리는 그에게 자연의 음악이다.
2 시인은 처마를 받치는 기둥에 자신의 이름을 써놓아 문패로 삼았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 같은가?” “한국 사람들은 이만하면 충분히 누리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경제가 문제’라고 입에 달고 다닌다. 바로 이것이 문제다. 잘살고 있는데 왜 자꾸 위기 의식을 조장해서 사람들 마음을 초조하게 만드는 것인가?” “우리 사회가 돈만 밝히는 천박한 사회로 가고 있다는 말인데, 그 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달라.” “음식점에 가니까 종업원이 나를 보고 ‘사장님, 어서 오세요’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나, 사장님 아니요. 손님이라 부르시오’ 하니 ‘다들 사장님이란 말을 좋아해요’라고 답하더라. 음식점을 나갈 때 그 종업원은 나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사장님 부자 되세요! 대박 나세요!’ 대략 10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 ‘사장’과 ‘대박’ 그리고 ‘부자’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사회가 그만큼 천박해졌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삶이 바람직한 것인가?” “돈을 쓰지 않는 삶이 바람직하다. 돈을 적게 쓰면 돈을 적게 벌어도 된다. 돈을 적게 벌면 시간이 남는다. 남는 시간에 인생을 즐겨야 한다.” “어떻게 인생을 즐긴단 말인가?” “나무, 꽃, 돌, 물고기, 구름, 석양, 한가롭게 흩어져 가는 연기를 보면서 즐겨야 한다. 이런 것이 다 나를 즐겁게 해준다. 쾌락의 근원인 셈이다.” “이 오두막에 손님이 많이 오는 것 같다. 속세를 완전히 떠난 ‘둔세’는 아닌 것 같다. 어떤 손님들이 오나?” “손님이 많으면 하루에 4~5팀도 온다. 손님 치르기에 바쁘다. 선반에 놓인 와인 잔은 그래서 있다. 살면서 상처를 받은 30~50대 여성 독자들도 이곳을 찾아온다. 이들에게는 말없이 차를 대접한다. 그리고 그냥 음악을 듣는다. 그러다 보면 흑흑 하면서 울음을 터트리는 경우가 있다. 한참 울다 ‘죄송해요’라며 눈물을 닦는다.” “악양에 방외지사가 얼마나 들어와 사는가?” “악양면 전체 인구는 4천 명 정도이다. 이 가운데 스님이 1백50명가량 인 것으로 알고 있다. 많을 때는 스님이 3백여 명 있었다. 스님이 시골집을 얻어 조용히 토굴 생활을 하기에 악양의 산세가 적당한 것이다. 귀농인은 1백 가구 정도 된다. 도시에 살다가 농사를 짓기 위해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귀촌인 歸村人도 있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산골 생활을 하기 위해서 들어온 사람이 귀촌인이다. 귀촌인들은 공예품도 만들고 염색도 하고 전통차를 만들기도 한다. 귀촌인이 대략 50명 정도 된다. 젊은 귀촌인이 유난히 많은 곳이 악양이다.”


3 대나무로 만든 창고 문에 손수 지은 농사로 찬거리를 해결하는 시인의 농사 도구가 걸려 있다.
4 재래식 별채 화장실. 재와 나무 톱밥을 뿌려 관리하는 화장실은 웬만한 입식 화장실보다 더 깨끗하고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오두막 크기는 15평밖에 되지 않지만 이 오두막을 둘러싼 풍광은 기가 막히게 좋다. 방문 앞으로는 키가 4m에 가까운 파초가 서 있다. 석류도 심어져 있고, 대봉감나무, 봉숭아 등도 있다. 집 뒤로는 커다란 암석을 중심으로 조그만 연못을 팠다. 연못을 팠으니 원두막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원두막도 후배들과 함께 손수 만들었다. 여름에는 이 원두막에 앉아 악양 들판의 푸른 벼 이삭을 감상한다. 집 옆으로는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이 흐르고 항상 물소리가 들린다. 자연의 음악인 셈이다. 악양 골짜기의 계단식 논이 눈에 들어온다. 9월 하순에는 누렇게 익어가는 황금색과 아직 남아 있는 푸른색이 서로 미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시점이다. 황금색이 주는 풍요와 푸른색이 주는 젊음이 어우러져 있다. 경제적 풍요와 미학적 색감이 어우려져 있다고나 할까. 이 두 가지 색의 배합이 골짜기 계단을 전부 색칠해놓은 상태다. 어떻게 보면 이 계단 논들이 피아노 건반이다. 지리산을 노래 부르게 하는 피아노 건반 같다. 건반을 누르듯이 한 번쯤 손으로 연주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장엄한 지리산 전체를 연주할 것 같다. 지리산 영봉 속에 색을 칠해놓은 이 논을 바라보는 것만 해도 삶은 남루하지 않은 것이다. 삶은 이런 풍광을 보면서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정원 庭園에는 두 가지가 있다. 방내정원 方內庭園과 방외정원方外庭園이 그것이다. 방내정원은 집 담장 안에 있는 정원이고 방외정원은 담장 밖으로 보이는 차경 借景이다. 이 오두막은 방외정원이 기가 막히다. 이곳은 수백만 평의 후원과 수백만 평의 정원을 갖추고 있다. 중국에서 풍광 좋은 곳을 일컫는 표현이 호남성 악양루 岳陽樓 일대를 가리키는 ‘소상팔경’인데, 하동의 악양이 바로 그런 곳이다. 이름도 같은 악양이다. 그 팔경이 ‘원포귀범’ ‘평사낙안’ ‘동정추월’ ‘어촌낙조’ 등이다. 악양에는 소상팔경에 나오는 이러한 지명들이 갖추어져 있다. 박경리의 <토지>에 등장하는 악양면 평사리는 소상팔경의 ‘평사낙안’에서 따온 말이다. 옛날 사람들도 악양이 지닌 풍광을 특히 아름답다고 여겼다는 증거다. 한 달 생활비 30만 원으로 3칸 오두막에 사는 박남준 시인. 이 빈자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은 악양의 방외정원이다. 악양동천에서는 <주역>에 나오는 ‘독립불구 둔세무민’이 가능할 것 같다. 악양은 대한민국 낭인들의 해방구다.

청운 靑雲 조용헌 趙龍憲 선생 동양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조용헌 선생은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감지하는 혜안을 지닌 이 시대의 이야기꾼이다. 실전에 강한 강호동양학으로 유명한 그는 수식어를 찾아보기 힘든 직설법으로 얘기한다. <조선일보>에 ‘조용헌 살롱’을 인기리에 연재하고 있으며, 전라남도 장성의 편백나무 숲 속에 있는 휴휴산방 休休山房에 머물면서 동아시아의 도가 道家적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5백 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조용헌의 고수 기행> <그림과 함께 보는 조용헌의 담화><조용헌의 명문가> 등의 저서가 있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