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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간] 그림처럼 음미하는 요리, 요리처럼 맛보는 그림 이태원의 봉에보
레스토랑과 갤러리가 함께 있는 공간, 봉에보. 이곳에서는 젊고 참신한 셰프의 예술적인 요리와 유망한 아티스트의 작품을 동시에 만날 수 있다. 요리와 미술이라는 장르를 넘나들며 예술적인 감성을 펼쳐 보이는 셈. 미각과 시각, 그리고 영혼을 깨울 양식이 필요하다면 들러볼 만하다.

1 봉에보의 매력 중 하나는 슬라이딩 도어로 시원스레 오픈되는 테라스. 요즘처럼 따뜻하고 청명한 날씨를 만끽하며 식사하기에 제격이다.
2 오렌지 컬러 아크릴을 사용해 공간에 생기를 더한 서빙 바. 벽에 걸린 금속 조각은 이곳의 오너이자 조각가인 김주희 씨 작품.
3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로 벽을 마감한 봉에보 실내 전경.
4 샴페인 거품을 올린 가리비 관자 구이. 봉에보의 요리는 참신한 레시피와 예술적인 프레젠테이션을 자랑한다.

“요리는 제 영혼의 자매이고, 시詩의 여신입니다.” 현대 요리의 창시자이자 ‘모든 일류 요리사들의 아버지’로 통하는 ‘오귀스트 에스코피에’의 말이다. 20세기 최고의 요리사로 전해지는 그의 꿈은 요리를 단순한 ‘먹을거리 만들기’의 차원을 넘어 시와 같은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키는 것이었다고 한다. 요리의 대국 프랑스에서 그 같은 꿈은 이미 실현된 셈이지만, 여기 한국에서도 그것이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날마다 새로운 메뉴와 인테리어로 단장한 레스토랑이 문을 열고, 그곳은 성장한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들이 기대하는 것은 결코 배고픔을 채우는 한 끼 식사가 아니다. 일상에 자극이 되고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줄 예술과도 같은 요리인 것. 이태원에 새로 문을 연 봉에보Bon et Beau는 그런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젊고 참신한 셰프의 예술적인 요리뿐만 아니라 유망한 아티스트의 감각적인 작품까지 동시에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요리와 미술이라는 장르를 넘나들며 예술적인 감성을 펼쳐 보이는 곳인 셈이다.

상상력 가득한 젊은 셰프의 요리 20대의 젊은 셰프 이형준 씨의 진두지휘로 선보이는 봉에보의 요리는 모두 이곳만의 레시피를 이용한 것. 20대라고는 하지만 그는 스위스 호텔 학교와 프랑스 코르동 블루에서 체계적으로 요리를 공부했고, 한편으로는 전통과 격식에만 치중하지 않고 실험적인 시도로 참신한 맛을 선보이는 도전적인 셰프이기도 하다. ‘닭모래집 리소토’처럼 독창적인 메뉴는 많은 이들의 구미를 당기는 인기 메뉴. 요리 세팅 또한 맛보기 전 눈이 먼저 호사를 누릴 만큼 예술적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시각을 자극하는 것은 비단 테이블 위 요리뿐만이 아니다. 레스토랑 곳곳에서 마주치는 그림과 조각, 그리고 레스토랑 2층으로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갤러리의 작품들은 애피타이저처럼, 또는 보너스 후식처럼 시각은 물론 영혼까지 풍요롭게 하는 이색 ‘메뉴’다.


5 ‘봉에보’를 발음하는 입 모양을 본떠 디자인한 명함이 재치 넘친다.
6 봉에보의 맛과 서비스를 책임지고 있는 스태프. 제일 오른쪽이 이형준 셰프이다.

요리가 예술이 되고, 예술이 또 다른 메뉴가 되는 곳. 레스토랑과 갤러리를 결합한 공감각적 공간을 만든 이가 누구인지 궁금해진다. 봉에보의 주인은 그 자신이 조각가이기도 한 김주희 씨. “캐주얼하게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프랑스, 미국 등에서 얼마간 생활하면서 보고 경험했던 것들이 내내 자극이 되었죠. 그리고 또 젊은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갤러리를 열고 싶었고요. 다행히 좋은 셰프와 인연이 닿아 이처럼 레스토랑과 갤러리가 함께 있는 공간으로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의 인테리어는 건축가 김광수 씨가 디자인했다. 진회색 벽과 스틸 도어로 마감한 외관에서부터 도시적 세련미가 물씬 느껴진다. 1층 레스토랑으로 들어가면, 역시 스틸과 노출 콘크리트 벽면, 투명 에폭시 바닥으로 마감한 공간이 깔끔하고 모던하다. 이 매끈한 공간에 포인트가 되는 것은 컬러 아크릴로 완성한 서빙 바와 주방. 손님이 있는 홀과 분리되어야 할 각 공간의 경계를 오렌지색 아크릴을 더해 거대한 사다리꼴 조각처럼 만들었는데, 이는 회색빛 공간에 경쾌한 포인트가 되면서 입맛을 돋워주는 역할까지 한다.


1 갤러리 힌지에서는 5월 27일부터 개관전이 열린다. 왼쪽은 화가 강석현 씨의 그림, 오른쪽은 가구 디자이너 한정현의 작품.

열리고 닫히며 낯선 미로가 되는 공간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봉에보의 가장 큰 매력은 정면의 대형 슬라이딩 도어. 다섯 짝의 널찍한 스틸 도어는 한쪽으로 밀면 차곡차곡 겹쳐지는데, 이로써 1층 전면이 외부로 시원스레 오픈된다. 더구나 그 앞으로 탁 트인 공터가 있기에 매력은 배가된다. 복잡하고 어수선한 이태원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이 여유로운 시야는 봉에보에서의 시간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날씨 따뜻한 어느 저녁, 훌륭한 요리를 코스대로 음미하며 와인 몇 잔에 달구어진 볼을 시원한 야외 바람에 식히는 순간을 상상해보라.

개방과 폐쇄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점은 2층의 갤러리 ‘힌지’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갤러리 입구와 그 맞은편의 힌지hinge 벽체를 통해 공간은 필요에 따라 열리거나 닫힌다. 이는 전시 작품에 따라 공간 구성을 달리해야 하는 갤러리의 특성을 살린 것이기도 하고, 미로와 같은 건물의 성격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고. 과연 1층과 2층에서 어떤 문, 어떤 벽체가 열리고 닫히는가에 따라 공간 구조와 동선이 그때그때 달라지니 미로라 해도 손색없다. 1층에서 2층으로 통하는 계단 또한 미로로 향하는 진입로답게 좁고 구불구불해서 불편하다. 물론 이 역시 의도한 불편함. 미지의 입구를 통과하면 만나게 되는 2층 갤러리에서는 5월 27일부터 첫 전시가 열린다. 가구 디자이너 한정현?박계환 씨, 회화 작가 강석현 씨의 작품을 전시할 예정. 미각과 시각, 그리고 영혼을 깨울 양식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들러볼 만하다. ‘봉에보’는 ‘좋고 아름다운’이라는 뜻이다. 문의 02-749-4358


2, 3 갤러리 입구의 움직이는 벽체는 전시 작품에 따라 공간 구성이 달라지는 갤러리의 특성을 고려한 것. 봉에보와 갤러리 힌지의 인테리어는 건축가 김광수 씨가 디자인했다.
4 강석현 씨의 그림.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