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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곡동 포스코트 배소영 씨 집 자연을 담고 그림을 닮은 집
앞으로도 뒤로도 산이 보이는 이 집은 배소영 씨 가족 네 식구가 사는 곳이다. 오픈 키친의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을 연상시키는 주방과 식당, 호텔 같은 게스트 욕실이 갖추어진 238㎡(72평형) 아파트. 주인 닮아 친절하고 깔끔하고 세련된 집을 다녀왔다.

(위쪽) 배소영 씨 집의 거실 풍경. 넓은 거실에는 TV가 없다. 커다란 작품 한 점이 이 집의 콘셉트를 보여주듯 상징적으로 놓여 있고 그 맞은편과 창가 쪽으로 소파를 넉넉하게 놓았다. 겉으로 드러나는 살림은 최소화하고 심플하게 꾸민 집 안에 대형 테이블 윗면 한쪽으로 가로세로 각각 90cm의 미니 정원을 만들었다.

도곡동 포스코트, 땅보다 하늘에서 더 가까운 전망 좋은 집. ‘아직 이삿짐을 덜 푼 것인가’ 싶을 정도로 비워낸 듯한 느낌. 이것이 방 다섯, 욕실 셋, 거실, 주방과 식당이 있는 238㎡ 아파트의 첫인상이었다. 이곳에는 15년간 유명 브랜드들의 홍보 일을 했던 배소영 씨와 변호사인 남편, 고등학교 2학년, 중학교 1학년인 두 아들이 함께 살고 있다. 집 안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촬영팀을 맞아준 사람은 이 집의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길연 씨였다. 집 안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이길연 씨와 배소영 씨는 마치 친자매 같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이 알게 된 것은 불과 몇 개월 전, 집을 고치기 위해 배소영 씨가 이길연 씨에게 전화를 한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첫 통화부터가 예사롭지 않았어요. 언니가 인테리어에 아주 관심이 많았고, 여기저기 알아본 끝에 제 ‘미니홈피’며 관련 기사들을 다 찾아보고 나서 전화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적잖이 부담 되었지요.” 하나 이길연 씨의 전략 중 하나는 고객을 ‘객’이 아닌 ‘가족이자 파트너’로 만드는 것. 그리고 디자인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1 과감한 사선 배치로 공간에 힘을 부여하는 아일랜드 카운터. 사용할 때만 꺼내어 쓰는, 조금 불편하더라도 지저분한 것보단 낫다고 생각하는 배소영 씨의 바람이 강하게 드러나는 주방이다.
2 거실과 주방 등 이 집 안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공기가 모던하고 서양적인 데 반해 안방은 동양적 모티프로 표현했다. 침대 헤드보드 대신 벽을 세우고 그 뒤로 형광등을 매입해 간접조명의 효과를 보게 했다.
3 데비한의 작품이 걸린 거실 풍경. 
4 미적 감각도 뛰어나고 섬세한 배소영 씨의 손길이 가장 분주하게 움직이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식탁 위이다.
센터에 기다란 사각 접시를 놓고 양옆으로는 이길연 씨가 이사 기념으로 선물한 초와 리스를 놓았다. 

두 사람은 골조만 남겨진 텅 빈 집에 마주 앉아 도면을 그려보았다. 어디에 무엇을 어떻게 배치할지, 배소영 씨의 관심이 가장 큰 거실, 주방, 손님 욕실을 어떻게 할지도 구체적으로 이야기했다. 기본 공간 계획이 나온 뒤부터는 벽지, 문 손잡이, 조명기구에 가구와 소품까지 부지런히 함께 시장조사를 다니며 완성했다. 거실엔 TV가 없다. 대부분의 집들이 TV를 놓는 자리에 큰 그림을 걸었다. 거실의 중심은 바로 그 그림이고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다. 그리고 벽면은 벽지를 거둬내고 테라코타에 질석을 조금 섞어 은은하게 골드 펄 느낌이 나도록 마감했다. 나중에 하나, 둘 그림이 걸릴 것을 감안한 아이디어다. 박서보, 배준성, 데비한에 관심이 많은 배소연 씨의 거실 소파 뒤에는 데비한의 ‘적자생존’이 걸려 있다. 아직 걸지 못한 작품도 몇 점 있다. 집의 분위기와 맞지 않아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5 배소영 씨의 남편이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서 유일하게 애착을 가졌던 AV룸. 변호사인 남편은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음악과 소리로 해소한다고 한다.
6, 7 작은아들 석휘의 방으로 규칙적인 원형 패턴이 율동감을 느끼게 해준다. 방문과 방에 딸린 화장실 문 사이의 벽면은 칠판으로 마감했다. 똘똘하기로 소문난 석휘는 종종 여기에 수학 공식을 적어가며 엄마를 앉혀놓고 수업을 하기도 한다고. 촬영이 있기 전날 밤에도 석휘는 엄마에게 새로운 문제를 풀어 보여주었다.

사실 이 집의 화룡점정은 거실과 식당에서의 전망이다. 현관과 거실을 연결하는 복도에서 보면 멀리 구룡산이 한눈에 펼쳐진다. 그 어떤 그림보다도 강한 인상을 남기며 철마다 다른 화폭을 보여주는 자연의 선물이다. 시선을 반대로 돌리면 다이닝 테이블 너머로 뒷산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다이닝룸은 마치 분위기 좋고 전망 좋은 레스토랑 같기도 하다. 주방을 사선으로 가로지른 과감한 배치의 아일랜드 카운터 위에는 오직 에스프레소 머신 하나만 놓여 있고, 그 너머 가스레인지나 개수대, 싱크대 위에는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았다.

누군가는 사람 사는 냄새가 전혀 안 느껴지는 주방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배소영 씨는 잡다한 살림살이를 좀 감추고 싶었다. 여자들의 꿈일 것이다. “깔끔한 게 좋아요. 그리고 바깥 주방이 있어서 냄새 나는 것, 자주 쓰는 주방 가전들은 그쪽으로 다 몰아놓았어요. 집을 넓혀 이사 오면서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렇게 깔끔한 주방을 만드는 것이었죠.” 또 하나 해보고 싶었던 것은 실내 정원을 만드는 것. 그러나 중간에 생각이 바뀌어 ‘갤러리 같은 집’에 초점을 맞추었고 거실에 있는 가로세로 각각 90cm의 정사각형 모듈 네 개로 만든 테이블 위에 자연을 옮겨다 놓는 것으로 대신했다. 테이블 모듈 중 하나를 검정 열연강판(구로철판)으로 만들고 이 안에 플라워 데커레이션이나 아크릴 수조를 덧대어 어항을 만들 수 있다. 주기적으로 이곳의 데커레이션을 바꿔 색다른 풍경을 연출할 계획이다.

1 부부가 함께 사용하는 서재로 책을 모티프로 표현한 벽지가 포인트이다. 붙박이장의 문을 작은아들 방에서와 같이 칠판으로 마감했다. 쥐 모양의 문 손잡이는 이길연 씨가 특별히 애착을 갖고 소장했던 것이었으나 친한 친구가 된 배소영 씨 가족을 위해 기념으로 달아주었다고 한다.
2 고급 호텔의 화장실을 연상시키는 고급스러운 마감재와 라쉐즈의 조명등, 돌로 된 세면기 등 자연의 질감이 강하게 드러나는 요소들이 자연스럽고도 세련된 느낌이다.
3 서재 책상에는 이길연 씨와 배소영 씨가 발품 팔고 돌아다니며 직접 제작한 조명등을 놓았다.

“어쩌면 이 집은 남자들이 더 좋아하는 거 같아요. 이사 온 후에 집들이를 몇 번 했는데 남자들 대부분이 쿨하다며 좋아하더군요. 여자들은 일단 밥솥이 어디 있는지부터 궁금해하고요. 전 여성다운 취향보다는 남성다운 취향이 강한 것 같아요. 꽃 문양이나 아기자기한 소품 같은 건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쌓아놓고 모아놓고 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요.” 자신이 원하는 취향의 집을 얻기 위해선 조금의 불편함은 감수할 수 있다는 배소영 씨는 취향이 분명한 사람이다. 오히려 그에겐 이렇게 정돈된 생활이 더 편안한 것일 수 있다. 불편함이란 그 집에 살고 있지 않는 사람들의 우려일 뿐이다.

집은 주인을 닮는다. 갤러리 같은 집, 강한 인상을 남기는 깔끔한 주방, 이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마련한 호텔 같은 욕실은 모두 배소영 씨가 집을 공사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이다. 홍보 일을 했던 탓일까? 하나를 먹더라도 제대로 차려 먹고, 누구를 대할 때도 친절하고 상냥한 집주인 배소영 씨의 공간은 군더더기 없이 아주 담백하면서도 따뜻하고 편안한 공기가 느껴졌다. 바로 이 공기가 그림으로만 예쁜 집과 좋은 사람, 행복한 가족의 취향이 반영되어 예쁜 집의 차이다. 처음 이 집에 들어서는 순간의 낯설고 차가운 공기는 그렇게 가족의 온기로 녹아가고 있었다.

김명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