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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9월 그 이름을 부를 때 (이영혜 발행인)

아주 오래전, 우리 회사에 입사하겠다는 한 젊은이를 면접 볼 때였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를 어디에 두느냐”는, 흔히 묻곤 하는 질문을 했습니다. 이 친구는 서슴없이 “행복”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에잉? 뭐라고? 이 친구 지금 입사 면접인 것을 모르나?’ 당시에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른 지원자들은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겠다는 뜻을 여러 형태로 대답했고, 또 그런 다짐 같은 대답을 바라고 있던터라 제게는 아주 이상하게 들렸습니다. 그리고 이 친구는 미국에 유학까지 갔다 온 이력을 가지고 있어서 남다른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어쩐지 괘씸하다는 느낌까지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것은 다른 데나 가서 찾든지, 이렇게 일과 무관하고 나약한 것을 목표라고 하는가. 결국 그 친구는 입사 명단에 넣지 아니했습니다. 그러고 나서도 ‘미국에서 그리 가르쳤나?’ 어쩐지 무엇인가를 터득하지 못한 것은 저같아서 자꾸 생각이 났습니다. ‘행복이라는 것을 알고나 대답했을까?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나는 왜 더 묻지 않았을까? 내게 그 대답이 왜 그리 이상하게 들렸을까?’ 그때까지 전 ‘행복’은 평상시에 말하는 단어가 아닌 줄 알았고, 저 자신을 위해서는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단어였습니다. 소설이나 노랫말에서는 용납되지만 얼른 꺼내 쓰거나 심지어 목표로 만드는 그런 단어가 아닌 줄 알았습니다.


그 후, 우리는 <행복이 가득한 집>을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상한(?) 젊은이가 제게 행복이라는 것, 행복이 목표가 되는 삶을 생각해보라는 과제를 주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빈 의자에 앉는 일, 그립다는 것은 빈 의자에 앉는 일” 문태준 님의 이런 시구처럼 저는 자꾸 생각했고, 그럼으로써 제게 비어있던 자리를 알아낸 것입니다. 어쩌면 제가 가장 그리워한 자리에 의자를 건넨 것입니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쓸 일이 없던 저는 매일 이 단어를 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모든 언어에는 기 氣가 있다더니, “행복이 가득한 집”이라고 부르면 벌써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것입니다. 덕분에 행복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 지혜로운 삶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고 배우게 되어 행복이라는 것이 의지를 가지면 얼마나 실현할 수 있는 것인지를 알았습니다.


세상에는 안타까운 일이 더 많고 어지러운 사건이 더 많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긍정적인 것, 조금이라도 더 나은 것, 옳은 것, 가능한 더 아름다운 것,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행복을 목표 삼을 수 있는 것을 알기에 실행 방법을 알아내고자 합니다. 질곡 많은 인생에서 우리는 다만 얼마만큼이라도, 아니 잠깐만이라도 행복할 자격이 있습니다. 그런 시간과 그럴 방법을 나눈 <행복이 가득한 집> 독자 여러분은 한편으로는 코치요, 감독이셨습니다. 이번 호로 23년이 되기까지 같은 목표를 가진 분들이 꾸준히 늘어난 것도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