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 시인 문정희 씨의 세 번째 글 발레리가 괴테를 찬양하는 글에서 괴테가 천재가 될 수 있었던 여러 조건 가운데 으뜸으로 그의 장수를 꼽았던 것을 읽은 기억이 있다. 괴테는 1세기에 해당하는 시기를 살면서 그것도 인류의 정신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전환기를 살면서 온갖 역사적 자양을 유유자적하게 종합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순전히 그가 살았던 긴 생애 자체가 바로 그 내용이 되었기 때문이었다.예술에서는 흔히 요...
    2010.11
  • 시인 문정희 씨의 두 번째 글어느 가을날, 몇몇 시인과 함께 미당 선생님을 뵈러 갔다. 그날이 무슨 날이었는지 미당 선생님은 상당히 기분 좋게 취해 있었다.인사를 드린 후 책장과 문갑 위에 놓인 백자 화병과 연적들을 조심스레 둘러보았다. 시인의 소장품들이라 값나가는 것들이라기보다는 단아한 태깔을 지닌 소박한 것들이었다.특히 그 가운데 나의 마음을 끈 것은 한쪽이 찌그러진 청화 매화 문양 향로였다. 그 향로를 ...
    2010.10
  • 시인 문정희 씨의 첫 번째 글“시인이 먹어야 할 음식은 고독이요, 시인이 마셔야 할 공기는 자유이다”라며 당당하고 뜨거운 혼을 가진 시인이 되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자주 실감하곤 한다.최근 한 시 낭송 행사의 무대에 선 나의 모습을 누군가 카메라로 찍어서 보내준 사진을 보고, 순간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머플러를 자연스럽게 두르고 서 있는, 제법 잘 나온 사진이었다. ...
    2010.09
  • 아주 오래전, 우리 회사에 입사하겠다는 한 젊은이를 면접 볼 때였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를 어디에 두느냐”는, 흔히 묻곤 하는 질문을 했습니다. 이 친구는 서슴없이 “행복”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에잉? 뭐라고? 이 친구 지금 입사 면접인 것을 모르나?’ 당시에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른 지원자들은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겠다는 뜻을 여러 형태로 대답했고, 또 그런 다짐 같은 대답을 바라...
    2010.08
  • 소설가 오정희 씨의 네 번째 글 근 30년에 걸친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마당 있는 집에서 살겠다는 계획을 세웠을 때 나의 꿈은 뜰에 아름다운 나무를 심는 것이었다. 작가 양순석의 소설 제목처럼 ‘나무가 아름다워지는 시간’을 살고 싶었다. 하여 철따라 모습이 달라지고 해마다 둥치가 굵어지는 나무 아래에서 오래된 낡은 옷을 입고 옛날 책들을 천천히 읽으리라 생각하였다. 땅을 마련하고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오랫동안...
    2010.07
  • 소설가 오정희의 세 번째 글 오래전에 쓴 글을 읽다가 문득 느껴지는 격세지감에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병이 손님처럼 찾아왔다’라는 문장으로 서두를 열어 ‘병에는, 자기 방기 自己放棄라는 자유와 해방의 면책특권이 부여된다. 그저 견딜 만한 정도의 아픔과 불편이라면 1년에 한두 차례쯤 병치레를 구실 삼아 한껏 게으를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도 괜찮으리라’라고 맺고 있는 그 글에서는 병에 대한 불안이나 두려움...
    2010.06
  • 소설가 오정희의 두 번째 글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우리가 일용할 음식을 구하듯 매일 아침 ‘오늘도 내게 일용할 굶주림을 주소서’라 는 기도로 무형의 양식을 청하며, ‘존재의 테이블’이라 명명한 작은 책상에 앉아 읽을거리를 탐식했다고 한다. 평생 충실한 독서인으로 살 것을 꿈꾼 내게 책이란 미각을 즐겁게 하는 특별한 먹을거리고 즐거운 놀이이자 정신의 영토, 지식의 제공 자이며 나 자신을 비춰 보여주...
    2010.05
  • 소설가 오정희의 첫 번째 글절기상 봄이 왔어도 봄은 아니라고, 변덕스러운 날씨에 움츠린 몸을 펴지 못하고 지내던 어느 날, 문득 부엌 환기통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와락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박새 부부가 찾아든 것이다. 작년에 왔던 그 새들일까? 이사 오던 첫해 봄 어느 날 부엌 환기통에서 정체불명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금속판의 울림 탓도 있겠지만 망치로 두들기는 듯 탕탕거리고 ...
    2010.04
  • 23년 전인 1987년, 중학교 시절부터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 여럿이 우리 집에 모였다. 나와 가장 가까운, 종합병원 전문의이자 의과대학 교수이던 친구가 갑자기 미국으로 떠나게 되어 송별회를 겸하는 자리였다. 옛 친구들이 참으로 오래간만에 모이는 자리여서 우리 집은 잔치 분위기였다. 하지만 우리는 오래간만에 만난 그 자리에서 옛정을 나누지도 못했고 두껍게 쌓인 회포도 풀지 못했다. 이야기 좋아하고 말장난 좋아...
    2010.03
  • 새로 출간되는 남의 책 추천사를 꽤 많이 썼다. 주례사 비슷한 서평도 꽤 많이 썼다. 귀찮고도 번거로운 일이지만 팔자소관이거니 여겼다. 추천사를 의뢰하는 사람들은 나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출판사 편집자나, 그 책의 저자일 경우가 많다. 성격이 모질지 못해서 매정하게 거절할 수 없었다. 속된 말로 “안면이 갈보 만든다”고 , 나는 추천사를 남발함으로써 많은 문우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추천사 중 가장 고...
    20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