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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6월 자서전을 읽는 밤 (오정희 소설가)

소설가 오정희의 두 번째 글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우리가 일용할 음식을 구하듯 매일 아침 ‘오늘도 내게 일용할 굶주림을 주소서’라 는 기도로 무형의 양식을 청하며, ‘존재의 테이블’이라 명명한 작은 책상에 앉아 읽을거리를 탐식했다고 한다. 평생 충실한 독서인으로 살 것을 꿈꾼 내게 책이란 미각을 즐겁게 하는 특별한 먹을거리고 즐거운 놀이이자 정신의 영토, 지식의 제공 자이며 나 자신을 비춰 보여주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손 닿는 곳에 읽을거리가 없으면 일상생활 중에 생겨나게 마련인 시 간의 공백과 자투리를 메울 방법이 난감해질 지경이니 중독증에 가까울 것이다. 주로 문학 서적에 치중한 편식성 독서였 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자서전이나 평전, 기록물에 손이 닿기 시작했다. 동서고금의 예술가, 사상가, 혁명가부터 평범하지 만 성실하게 익명의 삶을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그들이 산 시대로부터 내밀한 개인적 고백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글 들은 픽션과는 또 다른 세계의 감동을 열어주었다. 숭문주의자로 자처하며 평소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또래 친구들 역 시 그렇다고 했다. 계단이 무서워지고, 밤이든 낮이든 무조건 밝고 환한 것이 좋고, 가을보다 봄이 좋고, 예전에는 곁눈질 도 안 하던 밝고 화려한 색상과 무늬의 옷이 예뻐 보인다거나 등등부터 자서전 읽기에 이르기까지 점차 자신들에게 일어 나는 변화의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는 ‘늙음’, 즉 우리가 확실한 노년의 시간에 이르고 있다는 자각과 합의였다.

눈이 침침해지니 밝은 곳이 편안하고 다리가 시원찮으니 계단이 무섭고 생물학적 연령이 이미 조락의 가을로 접어들었으 니 잎과 꽃이 피어나고 햇살 양명한 봄이 새삼스레 경이로운 것은 자명한 이치이나, 노년에 이르러 불붙는 ‘남의 이야기’에 대한 관심과 흥미에는 좀 더 내면적이고 근원적인 동기가 작용하는 것 같다. 살아간다는 일에 대한 성찰이라 할 수도 있고, 나와 마찬가지로 인간 존재라는 이 기괴하고 드라마틱한 사건 속에 던져진 타인들에 대한 관심이고,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기도 할 것이다. 남들의 솔직하고 내밀한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늙어가면서 비로소 싹트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욕망의 발현일 수도 있겠다.

내가 더 이상 젊지 않다는, 늙음에의 자각이 온 것은 언제부터였던가.
화사한 햇살 속에 깃든 그늘과 문득 우리의 등 뒤로 흐르는 오후의 시간을 감지하게 됐을 때, 검은 머리털 속에 더 이상 새치라 우길 수 없는 명백한 백발이 수북이 돋아나 있음을 발견할 때, 또래 지인이나 배우자의 구부정한 뒷모습을 보았을 때, 육신과 정신의 변화하는 많은 부분을 피로 탓이거나 질병이 아닌 ‘노화’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인생이 끝없이 뻗어 있는 길이 아닌 폐쇄 회로라는 음울한 인식이 섬뜩하게 스칠 때…. 내 자신이 늙어가고 있고 언젠가는 정말로 늙어버릴 것을 알고는 있지만 이런 명백한 늙음의 현상은 충격적이다. 하긴 생명 있는 것들이 태어나 성 장하고 시들어가는 것보다 더 자연스러운 일이 있겠는가.
짧지 않은 세월을 살았어도 여전히 난독의 암호와도 같은 세상이고 미로일 뿐인 생이기에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여 살아 간 먼젓사람들이 무엇을 꿈꾸고 고민했는지 궁금해서 침침한 눈을 달래가며 그들의 이야 기를 읽는다. 읽으면서 젊은 시절에는 나 자신만이 오직 세계의 중심이기에 보이지 않던, 높 고 견고한 담 너머의 세상과 시대와 뜨거운 열정으로 살다간 인간들을 만난다. 세상에는 존재하는 사람 수만큼이나 많은 중심이 있다는 것, 그것들로 인해 비로소 나의 중심이 무한히 확장되고 모든 창조적 동기가 남과 다르다는 생각에서 비롯하지만 궁극에는 나와 남이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을, 그것이 진정한 해방임을 깨닫는다.

‘드러내면서 숨기는 글쓰기’, 바로 이것입니다. 오정희 선생<행복> 독자에게 보내온 두 번째 글에서도 ‘드러내면서 숨기는 글쓰기’가 보입니다. 광속으로 몰아치는 세상, 큰 숨 한번 몰아쉴 틈을 내어 오정희 선생 글을 읽어보세요. 천천히, 두 번씩 음미하면서. 사람의 날들을 성실히, 치열하게 채워온 큰 작가의 깨달음을 공으로 얻을 수 있는 기회니까요. 그러고 보니 다른 이의 자서전을 읽는 것도 바로 이 공짜 체험이겠군요. 선생의 이야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