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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4월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네 (이윤기 소설가)

23년 전인 1987년, 중학교 시절부터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 여럿이 우리 집에 모였다. 나와 가장 가까운, 종합병원 전문의이자 의과대학 교수이던 친구가 갑자기 미국으로 떠나게 되어 송별회를 겸하는 자리였다. 옛 친구들이 참으로 오래간만에 모이는 자리여서 우리 집은 잔치 분위기였다. 하지만 우리는 오래간만에 만난 그 자리에서 옛정을 나누지도 못했고 두껍게 쌓인 회포도 풀지 못했다. 이야기 좋아하고 말장난 좋아하는 나에게는 악몽의 밤이었다. 어째서? 미국으로 떠나는 그 친구는 의사, 의과대학 교수를 마다하고 성직자가 되기 위해 미국의 신학대학으로 떠나기로 결심했을 정도로 독실한 신자였다. 그날 밤, ‘마이크’는 그 친구 혼자서만 잡았다. 나는 그의 맹렬한 ‘설교’는 듣는 둥 마는 둥 술병만 비웠다. 그는 자정 무렵까지 ‘설교’ 보따리를 풀어놓고는 며칠 뒤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 땅에서 10여 년을 살았지만, 목사 친구가 사는 머나먼 캘리포니아 주까지 자동차를 몰고 간 적도 있지만, 우리는 서로 만나지 못했다.
지난 2월, 목사 친구의 전자우편이 느닷없이 날아들었다. “서울에 와 있다. 한번 만나자!” 23년 만의 만남, 가슴이 뛰었다. 23년 전의 그 악몽 같은 밤이 떠올라서 두렵기도 했다. 한평생 성경 책을 끼고 살다시피 하는 나에게도 그런 밤은 싫었다. 호텔 찻집에서 그 친구를 만났다. 정장 차림에 까만 가죽 가방을 든 중늙은이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턱수염을 기른 데다 허름한 캐주얼 차림에 빵모자까지 쓰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그가 인터넷을 통해 내 일상을 꿰뚫고 있다는 점이었다. 심지어는 내가 주말을 어떻게 보내는지, 그것까지 알고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호텔의 중국 음식점에서 우리 사이에 이런 말이 오갔다는 점이다.

“윤기, 여유 있거든 중국 술 비싼 것 좀 시켜라.”
“어, 목사님이 술을 다 하셔?”
“이따금씩 일본 ‘사케’를 즐겨. 그래서 욕 많이 먹어.”
“청주? 안 마시는 줄 알았는데? 책도 성경 말고는 안 읽는 줄 알았는데?”
“네가 펴낸 책, 미국 집에 거의 다 있다.”
이틀을 함께 있었지만 기독교 이야기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재벌가 맏사위였던 그는 깊고 넓은 목사, 청빈한 성직자가 되어 있었다. 23년 전과 달리 그는 다른 종교도 충분히 존중하는 것 같았다. 그가 미국으로 떠난 뒤, 내가 보낸 전자우편 끝에 짓궂게 ‘합장’이라고 썼다. 그가 ‘합장’으로 화답했다.

내 책 머리말에 쓴 바 있거니와, 나는 신학대학 출신인 데다 예수님의 향긋한 말씀을 너무 좋아해서 스님들로부터는 예수쟁이로 몰리고, 부처님과 선불교를 좋아해서 기독교인들로부터는 ‘절집 처사’로 몰려본 특이한 경험의 소유자다. 경상도 사람인데도 전라도 문화를 너무 좋아해서 동창들로부터 ‘족보가 의심스러운 놈’, 전라도 친구들로부터는 ‘무신경한 경상도 놈’으로 낙인찍혀본, 참 억울한 사람이다. 영어 책 번역을 생업으로 삼은 데다 미국에 오래 머물렀던 탓에 한글 순혈주의자들로부터는 ‘미국 놈 똥구멍 빨다 온 놈’, 진보적인 어문학자들로부터는 ‘언어 국수주의자’로 몰린 적이 있는, 자타가 공인하는 회색분자다. 나는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석양 무렵 혹은 동틀 무렵을 좋아한다. 인도 말로는 이런 순간을 ‘드히야나 dhyana’라고 한다지, 아마. ‘선 禪’이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지, 아마. 눈 감은 것도, 뜬 것도 아닌 상태. 확실하게 아는 것도,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닌 상태. 나는 앎과 모름의 가장자리를 서성거릴 때 행복을 느낀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내가 참 좋아하는 함민복 시인의 시집 제목. “모르는 사람들아, 내가 가르치겠다. 너희가 끝내 모르도록.” 내가 참 좋아하는, 독일 시인 라이너 쿤체의 시구.

넉 달 동안 <행복> 독자에게 이윤기 선생이 들려준 춘우 春雨 같기도, 봄샘추위 같기도 한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 선생은 네 번째 원고, 그래서 마지막인 원고를 보내며 메일에 이렇게 썼습니다. “봄이 옵니다. 축복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온 봄도 때 되면 갈 것입니다. 그렇게 맞고 보내어야겠지요.” 이 글 덕분에 이제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아쉬워하던 마음이 누그러졌습니다. 넉 달 동안 사다리 오르는 것처럼 이어진 선생의 글이 다다른 곳은 ‘드히야나’의 행복입니다. 눈 감은 것도, 뜬 것도 아닌, 확실하게 아는 것도,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의 행복. 그래요, 행복이란 건 바로 이런 것일 듯합니다. 확실하게 느끼는 것도, 전혀 못 느끼는 것도 아닌 상태. 선생이 메일에 보낸 마지막 문장은 “그럼 또. 이윤기 합장”이랍니다. 저도 이윤기 선생께, 그리고 여러분께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