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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3월 나는 추천사를 더 이상 쓰지 않는다 (이윤기 소설가)

새로 출간되는 남의 책 추천사를 꽤 많이 썼다. 주례사 비슷한 서평도 꽤 많이 썼다. 귀찮고도 번거로운 일이지만 팔자소관이거니 여겼다. 추천사를 의뢰하는 사람들은 나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출판사 편집자나, 그 책의 저자일 경우가 많다. 성격이 모질지 못해서 매정하게 거절할 수 없었다. 속된 말로 “안면이 갈보 만든다”고 , 나는 추천사를 남발함으로써 많은 문우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추천사 중 가장 고약한 것은 출판사가 문구를 미리 작성해놓고 추인을 부탁하는 경우다. 심지어는 내가 외국에 머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네들이 작성한 추천 문구의 추인을 요구하기도 한다. 참 나쁜 놈들이다. 나는 나쁜 놈들 요구에는 절대로 응하지 않는다. 글에서는 글 쓰는 사람의 결과 무늬가 드러나는 법인데 , 그걸 자기네들이 좌지우지하겠다니 나쁜 놈들이라고 할 수밖에.

나는 추천사를 의뢰 받으면 교정지(조판한 인쇄물을 교정하기 위하여 임시로 찍어낸 종이) 보내줄 것부터 요구한다. 나는 교정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 잡듯이 뒤져 읽기 전에는 절대로 추천사를 쓰지 않는다. 하지만 이거, 쉬운 일이 아니다. 교정지 읽느라고 하루 이틀 눈에 불을 켜야 한다. 이 말은, 나의 생업은 옆으로 밀어놓고 교정지를 읽는다는 뜻이다. 밑져도 보통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하지만 정말 곤란한 것은, 세 권, 다섯 권, 혹은 열 권으로 된 대하소설의 추천사를 부탁 받고 교정지를 읽는 일이다. 꼼꼼히 읽으려면 사나흘, 혹은 닷새가 걸릴 때도 있다. 생업을 옆으로 밀어놓고 대하소설 교정지를 읽고 써야 하는 추천사의 분량은 2백 자 원고지 반 장, 혹은 한 장이다. 이것은 밑지는 장사가 아니라 망하는 장사다. 그래서 나는 너무 두꺼운 책의 추천사는 되도록 쓰지 않기로 하고 있다. 추천사 쓰기를 고사했다가 저자와의 관계가 서먹서먹해진 적도 있고, 아주 관계가 끊어진 적도 있다.

내가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지금부터다. 연하의 작가들을 위해 마음에 내키지 않는 추천사를 쓰는 경우도 있다. 책을 추천하는 글인 만큼 책의 결점에는 대체로 관대해진다. 그러니 주례사가 그렇듯이 추천사는 찬사 쪽으로 가파른 기울기를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추천사가 새내기 저자들을 약간 흥분하게 만드는 모양이다. 저자들 절반쯤은 추천한 사람에게 술과 밥을 사고 싶어 한다. 그 책의 출간이 안겨줄 예상 수입에 들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예전에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여러 번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출간된 책이 저자의 희망과 기대를 배반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출판사나 저자는 밥값 술값만 날리는 것이다. 문학 종사자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슬픈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신춘문예가 대표적인 예가 되겠는데, 투고한 예비 작가는 몹시 초조해진다. 초조해진 예비 작가의 술값 씀씀이는 늘어나기 마련이다. 떨어지면 그뿐이겠지만 당선되면 거액의 상금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과가 낙방이면 예비 작가는 빚쟁이가 된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고? 나도 여러 번 겪어본 일이니 잘 알 수밖에.

나는, 나의 추천사를 받은 편집자나 새내기 작가의 저녁 초대는 되도록 정중하게 뒤로 미룬다. 지금 경황이 없으니까 6개월 뒤에나 한번 봅시다, 하고 말하는 것이다. 새 책 출간으로 약간 들떠 있던 그들은 냉정한 나의 반응을 섭섭해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새 책에다 건 희망과 기대의 대부분은 거품이다. 나는 오래지 않아 경험하게 될 그들의 실망과 절망의 프로세스에는 동참하기를 거절한다. 내 짐작대로, 6개월쯤 지나면 저녁 함께 먹자던 소리는 쑥 들어가버린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헛된 꿈과 기대로부터, 그런 꿈과 기대가 삶을 되게 누추하게 한다는 것을 단단히 배운다. 현철 장자 莊子께서는 이런 말씀을 들려주신다. “한 조각배 사공이 폭포의 코앞에서 노 櫓를 놓친다. 이제 헛된 희망과 기대는 소용이 없다. 사공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런 말도 있는 모양이지. “(그냥) 사랑하라. 희망 없이.” 글 이윤기(소설가, 순천향대 명예교수

세 번째 원고를 보내며 이윤기 선생은 메일에 ‘점층법, 사다리 오르기’란 단어를 썼습니다. 1월호, 2월호, 그리고 이번 호에 이르는 선생의 글을 찬찬히, 모두, 제대로 읽으면 사다리 오르기처럼 생각이 하나하나 깨우쳐질 거라는 뜻인 듯합니다.
이윤기 선생이 들려주는 세 번째 이야기는 수수께끼 열두 고개 같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이렇게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한달음에 읽어 내리며 담백한 글맛에 먼저 빠지시고, 두 번째 읽을 땐 천천한 속도로 행간의 뜻을 읽어보세요. 그렇게 읽고 나면 마지막 문장 “(그냥) 사랑하라. 희망 없이”에서 무릎을 칠 게 분명합니다.
이렇게 읽었는데도 뜻을 알아채지 못하셨다면, 뭐 별 수 있나요. 한 번 더 눈과 마음 부릅뜨고 읽으셔야죠. 사다리 오를 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