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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7월 쫓겨나지 않는 낙원 (이영혜 발행인)

어떤 부부가 오래 살았지만 자식을 두지 못했답니다. 그 때문인지 부부는 난 기르기에 열중하였습니다. 주변에 공장이나 시끄러운 곳이 들어서면 난 기르기에 적합치 않다고 이사하기를 일곱 차례를 하였다니, 사람들이 맹모삼천지교 孟母三遷之敎는 들어보았어도 난 때문에 일곱 번 거처를 옮기는 이 부부를 보고 유난하다고들 하였습니다. 난부부칠천지처 蘭夫婦七遷之處라고 하던가요? 그간 모은 난은 몇천 개의 숫자도 대단하지만 희귀한 것도 많다는데, 남편은 점심시간에도 난을 한번 둘러보기 위해 직장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꼭 다녀가곤 한다지요.

이 이야기를 듣는데 저도 모르게 “아뿔싸”하는 혼잣말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몰두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아직도 주제를 찾고 있는 어리석음조차도 오랜만에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지 말자 해놓고 한참을 그냥 살아온 것입니다. 평생을 저는 흔들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악기 하나쯤 익혀야겠다고 마음먹고는 드럼이 스트레스 날리는 데 좋을 것 같기도 하다가, 그래도 이왕이면 타악기라도 우리의 북을 익혀야지… 이 두 갈래 고민을 남에게 말도 못해본 채로 아직도 아무것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 생각 났을 때 실행을 했더라면 지금쯤 두 악기를 모두 다루고도 남았을 시간이 지나버린 것입니다. 이 병은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학창 시절, 시험이 내일모레인데 왜 느닷없이 꽃수가 놓고 싶기도 하고 뜨개질도 하고 싶은지, 엄마 쓰시던 것을 모두 뒤져서 준비를 해놓습니다. 그래도 일단 시험공부는 해야 하니 한 땀도 지어보지 않은 채, 이번 시험만 끝나면 명랑하고도 가벼운 마음으로 해보리라… 여러 차례의 시험 기간이 지나도록 건드리지도 않은 채 그 아름다운 실들은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한 폭의 정물화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책 제목에는 아주 쉽게 홀려서 항상 머리맡에는 넘치도록 책을 쌓아놓고도, 또 몇 권을 들고 가서 아직도 이렇게 못 읽은 것이 많은데…. 죄책감을 만회하려고 이제쯤은 책 읽기만큼 중요한 것이 몸 읽기야, 운동을 무얼 할까로 몇 년을 고민하다가 그 간단한 걷기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그런 나쁜 습관이 아주 지병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일하는 것 외에 몰두할 수 있는 것을 한두 가지 익혀놓는다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시계를 들여다보지 않고 가장 깊숙하게 마음이 잠기는 상태야말로 행복한 몰두의 시간일 터입니다. 이런 마음 상태는 가장 순수하여 신경을 안정시키고 진정시키는 힘도 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분업을 통해서 효율을 높여왔다면 이제는 통섭의 시대여야 한다고 합니다. 제가 해석하는 한, 땅을 파 내려가더라도 깊이를 더할수록 입구도 자연스레 넓어지기 때문에 진정한 통섭은 절대적인 깊이와 만날 때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하나 몰두하고 모으다가 드디어 몇억 원어치의 난을 가지게 된 부부, 가지고 있는 난들에 대해서는 모두 꿰뚫고 있다는데, 어디서 자생하던 것인지, 토양은 어떻게 관리해주어야 하는지, 잎사귀가 어찌 되면 병이 든 것인지, 꽃은 어느 시절에 피고, 향은 어떻다든지…. 그래서 박사 博士가 되지 말고 심사 深士가 되라는 지적은 너무나 공감을 합니다. 말콤 글래드웰이라는 저자, 1만 시간을 그것을 위해 스스로 바치고 썼을 때 프로가 되는 마술의 시간이 찾아온다고 하는 ‘1만 시간 법칙’도 아주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천재 天才보다는 스스로의 재능을 창조하는 시간만 충분히 들이면 창재 創才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누가 계산을 했던데, 하루에 세 시간씩 10년을 하면 1만 시간이 된다던가요? 이거 정말 보통 일은 아닙니다만, 하루 30분씩 30년 하더라도 지금부터 병을 고치고야 말 것입니다. 몰두하고, 만들어나가고, 깨닫고, 그리하여 성취감을 느끼고, 다시 더 알고 싶어 사무치고, 드디어 제법 프로가 되는… 이런 과정을 제 몸에 붙이고 싶어집니다. 쫓겨나지 않는 유일한 낙원이 그리움이라더니, 이런 시간을 그리워하고 있다면 낙원을 아직 모르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