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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 살 남짓 되던 무렵, 안중근 의사 이야기를 감명 깊게 읽었다. 갓 태어난 아기 응칠(안 의사의 어린 시절 이름)의 등에 북두칠성 모양의 점 일곱 개가 찍혀 있었다고 했다. 그 대목이 참 인상적이어서, 저고리 벗고 어머니에게 내 등에도 혹시 그런 점이 없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런 점이 없다고 해서 나는, 훌륭한 사람 되기는 글렀구나, 하고 가볍게 실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덜떨어져도 한참 덜떨어졌던 나...
    2010.01
  • 지난 한 주일 내내 옛날에 내가 국어사전 속표지에다 그렸던 그림을 생각했다. 왜 그랬는가 하면, 세밑에 독자들에게 던져줄 메시지 한 줄 찾아내느라고 그랬다.국민학교 졸업하면서 상을 받았다. 한 5백 쪽 정도 되었나, 꽤 도톰한 국어사전이었다. 청소년 시절, 내 공부방이 산사태를 만나면서 수백 권의 책을 잃는 바람에 지금 그 사전은 내 수중에 없다. 하지만 나는 그 사전 속표지에다 내 손으로 그렸던 그림은 생생...
    2009.12
  • 내가 좋아하는 세계의 명시들을 소개한 <내가 사랑하는 시>를 펴낸 뒤에 시를 읽는 일이 많아졌다. 아름다운 문장을 소리 내어 읽는 특별한 즐거움을 오래 잊고 살았던 터라, 방송에서 신문에서 잡지에서 나를 찾으면 기꺼이 고마운 마음으로 달려가곤 한다. 전업 시인이 되어 시집을 비롯해 산문집과 소설을 여럿 출판하면서도 요즘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신간을 홍보하기는 아마도 처음인 것 같다. 방송국에서 찻집에...
    2009.11
  • 출근길에도, 퇴근길에도 나는 늘 ‘명품 패션’과 함께한다. 명품 옷과 백으로 칠갑을 하냐고? 아니다. 143번 버스를 타고 조석으로 청담동 로데오 거리를 오가기 때문이다. 루이비통이며 아르마니, 프라다, 구찌, 까르띠에, 질샌더 그리고 조영남 씨가 ‘돌잔치 가봤니’라고 부르는 돌체 앤 가바나까지 운집한 거리를 관람석(비록 버스 좌석이지만)에서 즐기게 해주는 143번 버스에 감사하며, 눈 호사를 ‘원 없이’ 한...
    2009.10
  • 어느 날 문득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빌리 조엘의 노래에 아무 이유 없이 눈가가 젖는다. 좀 황당했는데, 찰나의 깨달음이 번개처럼 나를 스쳐 간 것이다. 단 한 번뿐인 삶이 영롱하지 않다고 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간절히 영롱하고 싶다면 이 무덤덤한 삶이 영롱해질 때까지 살아야 한다. 어떤 문은 닫히고 또 어떤 문은 열린다. 어떤 접시는 깨지고 또 어떤 접시는 멀쩡하다. 사물의 모든 이치가 투명해질 때 내가 ...
    2009.09
  • 미국을 건너가서도 방랑기가 많고 평생 어디 매여 살 것 같지 않던 화가가 아주 예쁘고도 지적이며 집안도 좋은 미국 여성과 결혼을 했더라고요. 그녀를 닮은 예쁜 딸도 사진 속에서 웃고 있었습니다. 여기서도 삶이 허술해 보이고 성공할 것 같지 않은 이 남자가 보기에도 과한 여자를…. 어디가 뛰어난 구석이 있는 걸까, 그 미인이 빠진 매력이 어떤 부분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오랜만에 우리나라에 다니러 온 그 화가...
    2009.08
  • 대학 1학년 때였다. 여름방학을 끝내고 고향 파서막에서 40리 길인 밀양역으로 향했다. 그날 어머니는 “너 기차 타는 걸 봐야겠다”면서 함께 나서셨다. 어머니는 늘 늦지 않게 일찍 일찍 나서야 한다 하셨다. 어머니와 내가 버스로 밀양역에 도착했을 땐 열차 출발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더 전이었다. 8월의 불볕더위가 한창이었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역전에 있는 다방에 들어갔다. 아마도 어머니 생애 처음으로 다방이...
    2009.07
  • 어떤 부부가 오래 살았지만 자식을 두지 못했답니다. 그 때문인지 부부는 난 기르기에 열중하였습니다. 주변에 공장이나 시끄러운 곳이 들어서면 난 기르기에 적합치 않다고 이사하기를 일곱 차례를 하였다니, 사람들이 맹모삼천지교 孟母三遷之敎는 들어보았어도 난 때문에 일곱 번 거처를 옮기는 이 부부를 보고 유난하다고들 하였습니다. 난부부칠천지처 蘭夫婦七遷之處라고 하던가요? 그간 모은 난은 몇천 개의 숫자도 대단하지만 ...
    2009.06
  • 금혼식을 맞이하는 부부가 있었답니다. 그러니까 결혼해서 50년을 같이 산 것이지요. 이 부부는 평생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금실 좋다는 평판이 자자하였답니다. 자식들이 합세하여 금혼식 기념 여행을 떠났습니다. 다음 날 아침 레스토랑에서 분위기를 만들어주기 위해 두 부부만 따로 자리하게 했습니다. 늘 그랬듯이 그날 아침에도 머리가 백발인 남편이 아내에게 빵을 떼어주는 노부부의 다정한 모습이, 다른 테이블에 ...
    2009.05
  • 봄날에 시를 써서 무엇해봄날에 시가 씌어지기나 하나 목련이 마당가에서 우윳빛 육체를 다 펼쳐 보이고개나리가 담 위에서 제 마음을 다 늘어뜨리고 진달래가 언덕마다 썼으나 못 부친 편지처럼 피어 있는데시가 라일락 곁에서 햇빛에 섞이어 눈부신데종이 위에 시를 써서 무엇해봄날에 씌어진 게 시이기는 하나 뭐.- 나해철의 ‘봄날과 시’도대체 이렇게 시를 쓰는 시인은 어떤 분일까요?어떻게 이렇게 쉽고도 적절한 단어들을 엮...
    20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