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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1월 오늘 받은 편지, 오늘 들은 이야기 (이영혜 발행인)


보내주신 책을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소박한 정원>이라는 책을 옆에 두고 조금씩 읽으니 마음이 편해집니다. 정원 때문에 생각났는가 봅니다. 1987년 10월 15일 폭풍우가 영국 남부를 덮쳐서 무려 1억 5천만 그루의 나무가 뿌리째 뽑히는 큰 재해를 겪었답니다. 그 처참한 현장은 재앙 그 자체여서 연일, 그리고 오랫동안 앞다투어 보도되었다고 합니다.이로써 여러 가지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어느 정도 뿌리여야 강풍에 견디는지, 해안가 방풍림의 유연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리고 씨앗부터 자란 나무가 옮겨 심은 나무보다 훨씬 강인하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정원사들이 무척 바빠졌고, 이를 계기로 더 많은 지식을 얻게 되고 사회에서의 위치도 올라갔다고 합니다. 또한 엄청난 폭풍우가 헤집어놓은 덕분에 토양이 비옥해져서, 경제적 손실을 넘어서는 이익이 발생했다는 결과가 재해가 수습된 다음 해에 보고되었다고 합니다.
재해라는 것은 당시에는 재앙이지만, 시간이 흘러 뒤돌아보면 신기하게도 문득 그때의 시련이 참 좋은 약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순간 무슨 내용을 말하려는 것인가 의문이 들 정도로 편지는 이렇게 끝을 맺었습니다.
여러 번 읽게 한 이 편지는 시절이 어려우니 힘내라는 그런 직접적인 단어는 한마디도 들어 있지 않았는데, 힘이 되었습니다.

어느 대학의 교수님이세요. 엊저녁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와서 하신 말씀인데요, 그분은 출근할 때 온 가족이 배웅하여 손을 흔들어주는데, 그것도 열렬히 안 보일 때까지 흔들어주게 한대요. 물론 아이들이 먼저 학교를 가면, 두 부부가 문가에서 또 그렇게 열렬히 잘 다녀오라고 배웅을 한다네요. 그분은 공군 파일럿 출신이었대요. 출영할 때는 어김없이 불안감을 갖지 않을 수 없는데 지상 요원들이 깃발을 들고 안 보일 때까지 흔들어주곤 했고, 그렇게 배웅을 받으면 항상 기분이 고조되고 그들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이 따뜻하고도 확고하게 들곤 했대요. 그래서 그때부터 결심을 해서 결혼할 때 아내에게 이런 의식은 꼭 하자고 다짐을 했다네요.
부인이 약속을 지키기는 하는데 손을 살살 흔들었대요. 그렇게 하는 게 아니고 온 마음을 다해서 아주 열렬하게 흔들어야 한다고 했대요. 지금은 아이들까지 모두 그냥 흔드는 것이 아니고 열렬히 손을 흔들기 때문에 이 대단한 배웅은 주위에까지 소문이 났다네요. 사는 게 신난다는 표정의 그 교수님과 가족, 너무 재미있지 않아요?
정말 ‘사는 맛’이 나는 배웅 방법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친구나 듣는 저는 서로 눈을 맞추며 웃었습니다.

이야기 끝에 우리는 이런 가족은 절대로 불행해지지 않으리라는 데 동의하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두 이야기가 합쳐져, 저 몇 년 앞에 서서 지금을 돌아보도록 상상하게 했습니다.
도처에서 들려오는 뉴스 탓이었을까요? 생각해보니 최근 얼마간은 지금을 ‘지금으로만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눈썹 사이가 더 좁아지고, 그저 어려운 것만 보이고, 움츠러들어 더 작아지고, 웃어 본 지도 꽤 되었던 것입니다.
오랜만에 저 앞에 가서 ‘지금을 바라다보게’ 했더니 신기하게 어려움 그 이후가 보이는 것입니다.
지금의 경제 상황은 폭풍우가 쓰러뜨린 나무처럼 여러 가지를 움츠리게 하고, 앗아 갈지 모릅니다. 하지만 훗날 나무들을 키운 가장 근본적인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었듯이, 무슨 이득을 만들어낼 것이 분명합니다.
문제는 그것이 어떤 이득이었는지는 이 시기가 지나보아야 알 것이므로 지금 해야 할 일은 ‘지금’을 잘 보내는 데 있습니다.
불안한 마음을 씻고 웃는 얼굴을 만들어주는 것은 고작 손을 흔들어주는 그런 간단한 일의 힘입니다. 자칫하면 지금 해야 할 일을 다 놓치고 손해 볼 뻔했다는 느낌이 퍼뜩 들었습니다.

오늘은 참 좋은 날입니다. 아침부터 이렇게 좋은 편지를 받고, 기분 좋은 이야기를 전해 들었으니까요. 어려움을 멀리서 바라다보는 공간감, 그리고 멋진 해석까지 만들어졌으니까요. ‘새해’라는 단어가 낯설 만큼 무거웠던 마음이 오늘 비로소 제대로 열립니다. <행복이 가득한 집>을 더욱 밝고 건강하게 만들어내야겠다는 다짐을 새해 인사로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