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프레스코화들과 매혹적인 석회석 바위산 위에 위치한 오르비에토 시의 주택가 풍경. 치타슬로 세계연맹 본부가 있는 이곳은 치타슬로 운동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치타슬로 운동의 철학은 ‘먹는 게 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먹을거리를 중시한다. 생산부터 소비자의 입으로 들어갈 때까지,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아야 한다는 가치관에 따라 치타슬로 가입 도시의 시민들은 반경 5백km 이내에서 생산된 식재료를 먹는다. 농수산물을 생산하는 사람은 이웃의 먹을거리를 만들고, 소비자들은 이웃이 생산한 먹을거리를 먹게 된다. 생산자와 소비자는 만드는 사람과 작업하는 과정, 유통 과정 등을 투명하게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이곳 사람들은 만두 파동을 겪을 일이 없을 것이다.
치타슬로 국제연맹은 현재 이탈리아, 독일, 영국, 노르웨이를 비롯한 전 세계 10개국 1백여 도시가 가입해 있다. 이탈리아에만 약 60곳이 가입되어 있다. 치타슬로 도시가 다른 도시와 차별될 수 있는 가장 특징적인 점은 아무래도 건축물에 관한 규제가 남다른 점일 것이다. 오래된 건축물을 허물고 새로 건축물을 지으면 폐자재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가급적 건물을 신축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축물을 새로 짓기보다는 원래 있는 건물을 재단장해 새롭게 만드는 방법을 우선으로 생각한다. 건축물을 신축해야 할 경우에는 대체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적용한다. 덕분에 대체에너지에 관한 관심과 연구 활동이 활발하다. 인구 8천여 명의 카스텔누오보 베라르뎅가Castelnuovo Berardenga는 대체에너지 개발이 활발한 도시. 태양광은 물론이고 유채꽃 기름을 개발해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치타슬로 실사단에서 자치단체장의 리더십을 중시하고 가입 조건의 최소 단위를 시나 군으로 정해놓은 것도 이들에게 건축 허가를 해주고 조례를 규제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까닭이다.
1 그레베 인 키안티의 과거 모습. 지금의 모습과 거의 비슷하다.
2 오랜 역사의 도시인 몬테팔코에는 로마네스크·고딕·르네상스 스타일의 다양한 전통 건축 양식이 공존한다. 도시 경제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65~70%이다.
3 오래된 옛집을 개조해 3성급 호텔로 만든 바론호텔Villa Le Barone(+39-055-0852621). 객실에는 책이 많은 대신 텔레비전이 없다.
치타슬로 운동이 지속될 수 있는 동력 중 하나는 전통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각 도시들에는 다른 지역과 차별되는 전통의 고유한 음식이나 특산품이 준비되어 있다. 우리나라 후보 지역을 예로 들면 담양군의 죽제품과 차 문화, 장흥군의 표고버섯과 지렁이 농법, 신안군의 소금과 함초, 완도군의 미역과 전복 등으로, 다른 지역과 겹치지 않으면서도 고유성을 잃지 않는 것들이다. 그래서 치타슬로 가입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그 지역에서 난 식재료로 요리한 음식을 먹고, 특산품도 자체적으로 소화한다. 초·중·고교에서 제공하는 학교 급식 재료도 해당 지역이나 인근에서 난 채소, 해물, 고기 등을 사용한다. 소비 예측이 가능하니 생산물이 남지 않고, 생산물이 남지 않으니 매일 매일 신선한 재료를 준비하고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이 사용하는 냉장고는 대개가 소형 사이즈다.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치타슬로 운동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관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경우가 없다. 상대의 의견을 존중한다. 승용차를 대신할 수 있는 대중교통 통합 프로그램과 보행 지역 계획을 구상하고 자전거 이용을 권장하지만 주민들이 원하지 않을 때에는 강행하지 않는다. 몬테팔코 시의 경우 주민들에게 자전거 이용이나 도보 이동을 권유하고 또 대부분 지역에서 시행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시민들의 불편을 고려해 시행하지 않고 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고 해도 주민들이 원하지 않으면 시행하지 않고, 천천히 대화로 설득하며 간격을 좁히는 치타슬로 철학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한국 슬로시티 추진위원회 손대현 위원장(한양대 교수)은 이에 대해 “치타슬로 운동은 대안적인 삶이 아니고 원래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삶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라면서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을 함께 찾아가는 것이 치타슬로 운동의 철학”이라고 설명한다. 기술의 속도가 아니라 사람의 속도로 성장하는 삶, 차의 속도로 달리지 않고 사람의 보폭으로 이웃과 더불어 성장하는 발전은 오래전 우리 민족이 추구하던 가치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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