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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남준의 경남 하동 악양산방 들꽃 찾아온 나비에 수작 걸며 하루를 시작하죠
내 한 몸에도 수많은 생명이 거름이 되어 나를 이루고 있는 거겠지. 웃고 떠들고 화내며 슬퍼하는 내 안의 성정들도 혹여 그 보이지 않는 내 몸속의 몸들이 지닌 마음들일지도 모르지.’ 향기로운 삶, 그것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버리면서 찾게 되는 것이라는 시인 박남준 씨. 지리산 동매마을 악양산방에서 자연을 가족 삼아 하루를 보내고, 그들이 불어넣어준 기운으로 ‘가진 것 없어 진정으로 행복한 생’을 이야기하고 있다.

(왼쪽) 박남준 시인의 집 ‘악양산방’에는 누런 호박 두 덩이가 가을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오른쪽) 그는 몇 날을 발효시키고 몇 번을 덖어가며 만든 발효차를 즐긴다. 손님이 올 때도, 혼자 글을 쓸 때도 테이블 위에는 항상 차가 준비되어 있다.  

“가을이라 가을 바람. 단풍이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당신은 무슨 빛으로 물들어가고 있나요? 가을이네요.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동매리에 살고 있는 박남준 시인과의 만남은 그의 자동응답전화기가 들려주는 시적인 인사로 먼저 시작되었다. 평온한 들판과 하늘을 가르며 굽이굽이 산길을 지나 도착한 지리산 자락, 푸르고 맑은 하늘 아래 나무들 사이로 낮은 지붕 하나가 슬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시인 박남준 씨의 집 ‘악양산방’이다. 악양면 산촌에 위치한 아담한 집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노란 흙벽에 파란 모기장, 그 앞으로는 호박 두 덩어리가 놓여 있고, 설치미술 하는 친구에게 선물받은 분홍 바람개비, 아담한 벤치가 있는 집. 그는 이렇듯 산속에서 생활하며 몇 권의 시집(<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적막> 등)과 산문집(<작고 가벼워질 때까지> <별의 안부를 묻는다> <꽃이 진다 꽃이 핀다> 등)을 냈고 찻잎을 말려 발효차를 만들어 시시때때로 마시며, 감식초와 매실 장아찌를 담그고, 배추와 무, 부추 같은 채소를 가꾸며 손님이 오는 날이면 능숙한 솜씨로 부추 송송 썰어 국수를 말아 내놓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며 지내고 있다.

그는 지난여름 <박남준 산방 일기>(조화로운 삶)란 산문집을 출간했다. 손님 상차림에 소박하면서도 정성스러운 음식을 담아놓고 꽃 장식으로 마무리하듯 책의 표지에도 꽃송이가 몇 개 그려져 있다. 책에는 전라남도 영광 법성포에서 나고 자란 시인 박남준이 서울서 직장 생활 그만두고 전주 모악산 기슭에서 생활하다 이곳 동매마을에 거하게 되기까지의 여정이 녹아 있고, 이곳 산중에서 깨달은 세상의 이치와 그가 택한 무소유의 삶에 관한 일기가 담겨 있다. 그를 괴롭히던 쥐를 잡아 앵두나무 아래에 묻고, 쥐가 거듭나 몸을 바꿔 앵두가 되고, 그 앵두를 먹으며 자신의 몸에 들어와 자신의 몸을 이루는 것들, 그로 인해 드러나 보이지 않는 수많은 몸을 생각하며 언젠가 자신의 몸과 바꾸게 될 그 무언가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자연의 곁에서 실천하는 무소유의 삶 매일 반복되는 고단한 출근길, 문밖으로 나서면 뭐든 ‘소비’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생활. 한 3년 정도 서울서 멀쩡한 직장 다니며 보낸 시간은 고난이었다. 그러던 중 지인으로부터 전주의 한 기업체에서 운영하는 문화센터 관장 자리에 대한 제의가 있었다. 그런데 월급으로 따지자면 그 조건은 형편없었다. 서울에서 그가 받던 것의 3분의 1 수준도 안 되었으니. 그러나 딱 한 가지 그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은 ‘자유롭게 해준다’는 한마디였다. 서울 생활은 그에게 쓰고 싶은 글을 쓰기보단 먹고살기 위한 글쓰기를 강요했고, 스스로 황폐해지고 있음을 느끼게 했던 참이었다. 원래는 전주 모악산에 산방을 마련했다. 그곳에서 첫 한 해를 보내고 다시 봄을 맞이할 무렵, 그는 ‘여기서 살면 돈을 쓰지 않는 삶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원하는 글을 쓰고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었기에 모든 욕심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가 모악산에서만 13년을 살았다.


1 손님 왔다고, 손님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수반의 물을 갈고 꽃송이 몇 개 띄워놓았다.
2 설치미술 하는 친구에게 선물받은  분홍 바람개비와 아담한 벤치가 한 쌍을 이룬 작품이 마당에 놓여 있다. 3  새를 닮은 조각이 바람개비를 보며 울타리 위에 앉았다.
4  한지로 삼파장 램프를 둘러싸고 종이 끈으로 묶어 전등갓을 만들었다.
5 집 마당에서는 양봉도 한다. 벌집이 마당에 하나의 작품처럼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2003년 9월 1일, 박남준 씨는 지금의 지리산 동매마을로 보금자리를 옮겨온 것이다. 원래는 아는 후배가 살던 집이었는데, 그 집을 급히 팔고 서울에 올라가야 하는 후배를 도와 뛰어다니다가 이 집에 살게 되었다. 춥고 습하며 해가 유난히도 빨리 졌던 모악산 기슭에서 벗어나라며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었다. 덕분에 몸이 자유로워졌고 생각도 자유로워졌다. 시상이 떠오르지 않으면 산을 오르거나, 가던 길을 멈추고 쪼그려 앉아 개미를 들여다보기도 하며, 새들이 날아간 하늘을 바라보기도 한다. 최근에는 오프 로드를 다닐 수 있는 스쿠터가 생겨 산을 넘어 청학동에도 다녀온다. 아침에 일어나면 텃밭의 무, 배추에 앉은 벌레 잡으며 아침 인사를 나누고, 요즘엔 쑥부쟁이, 구절초와 같은 야생화가 한창일 때여서 그 꽃들 들여다보는 재미, 꽃 찾아오는 나비까지 챙겨가며 몇 마디 ‘수작질’하는 재미로 산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다가 이른 저녁을 먹고선, 스쿠터 몰고 악양의 아우토반(논 사이로 난 길을 신호가 없단 이유로 이렇게 부른다)을 달려 섬진강 벤치에 앉아 식후 연초를 즐긴다. 이 작은 시골집 악양산방의 화장실은 100% 재래식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재래식 화장실의 그 독한 냄새가 없다. 이유를 물었더니 ‘향기로운 사람이 똥을 싸면 똥에서도 향기가 난다’고만 답을 한다. 그것은 바로 아궁이에서 겨우내 불을 때고 남은 재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용변을 재로 덮어주는 것이다. 화장실 문에는 그의 예쁜 글씨로 그리 해줄 것을 당부하는 메모가 쓰여 있다. 물론 이 집에는 TV도 없다. TV를 너무 좋아해 그것이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요즘엔 인터넷이 있어 세상 소식 접하는 데에는 아무 문제 없다. 인터넷 덕에 원고 마감도 수월해졌다. 예전엔 마감일 며칠 전에 원고를 끝내고 우체국까지 가서 직접 부치곤 했는데, 이제는 원고 마감일까지 최대한 끌다가 보낼 수도 있다. “원래 글 쓰는 사람들은 미리미리 못해요.”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릴지언정 마감을 코앞에 두어야만 글다운 글이  써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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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겨우내 취미로 나무 조각을 하기도 했다. 눈과 코와 입이 있는 사람도 만들고 자신의 도장을 직접 파기도 했다. 멀쩡한 것은 다 선물로 주고 남은 것은 이 두 개뿐이라고. 7 산과 밭이 있는 그곳에 낮고 아담한 악양산방이 있다. 8 그를 아는 이들은 그가 말아주는 국수 한 그릇이 최고의 만찬이라 말한다. 솜씨 좋기로 소문난 그의 요리 중 최고의 맛이기 때문이다.국수를 말아 내놓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텃밭에서 부추 뽑아다 송송 썰어 넣고 홍고추 잘게 썰어 몇 개 띄우면 색 배합도 그만이다. 9 차를 좋아하며, 오랜 시간과 정성을 쏟아 부어 만든 발효차를 즐겨 마신다. 그 끝맛이 달고 향긋하다. 10 과일을 먹자 했다. ‘어른’ 앞에서 어설픈 솜씨로 과일을 깎고 있는데, 박남준 씨가 손에 무언가를 들고 온다. 꽃송이와 잎사귀다. 그는 평소 이렇게 손님을 대접한다. 나물 무쳐 밥과 함께 내놓을 때도 그릇에 작은 꽃 몇 송이 올려놓곤 한다고 했다.
11 지난여름 출간한 <박남준 산방 일기>(조화로운 삶). 12 휴지는 되도록 적게 쓰고 용변 후 재를 뿌려 다음 사람을 배려할 것을 권하는 메모가 화장실 문에 붙어 있다. 13 텃밭은 그에게 놀이터이고,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곳이다.

무소유 그것은 곧 자유이며 행복이다 참 욕심 없는 이 사람. 박남준 씨는 종종 강연을 다니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이 묻곤 한단다. ‘왜 그렇게 가진 것 없이 살려 하는지. 그의 지론은 이렇다.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는데 죽는 날까지 내 이름으로 된 집 한 칸 없이 그냥 갈 겁니다. 물려줄 자식도 없고, 그저 소박하게 나 죽어서 화장할 비용과 찾아오는 이에게 술 몇 잔 퍼줄 만큼의 돈만 있으면 되죠.” 사실 지금 그가 살고 있는 집도 ‘자기 이름으로 된 집 한 칸 없이 살고 있는 엄살 심한 시인’을 못마땅하게 여긴 지인들이 반강제적으로 ‘떠맡긴’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 작은 시골집도 재산이라고 재산세 1만 2천 원에 의료보험까지 또다시 경제적 의무가 지워졌다 한다. 그렇기에 단 한 번도 집이 있어 좋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2004년 그는 구례에 사는 친구 이완규 시인, 새만금 사업의 중단을 촉구하며삼보일배 시위를 벌였던 수경 스님 등이 이끄는 순례단과 함께 지리산 1천5백 리를 걸으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길을 가다 뒤돌아보았을 때, 내가 없으면 그대로 세상을 떠난 줄 알라. 그러고 싶다. 길이 곧 시작이었고 끝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행복’이란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가장 만족하는 시 한 편을 썼을 때의 행복감은 어떤 부와 명예, 권력보다도 강한 것인데 바로 그 순례의 길을 갈 때도 그런 느낌이었다. 고통스럽지만 보람 있었던 그 길, 그 자체가 진정한 행복이었다. ‘길 가다 이대로…. 그냥 이 길을 끝까지 가고 싶다’던 그 길이다.

<박남준 시인에게 배우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지혜>

1 자연과 아침 인사를 하라 결국 그것들이 나의 몸속으로 들어가 내 몸의 일부를 만들 것이니,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안부를 물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인생이 한결 여유로워질 것이다.

2 휴지는 되도록 쓰지 않는다 음식을 먹다 찌꺼기를 버리려고 휴지를 찾았더니 작은 그릇 하나와 물수건을 가져다준다. 악양산방에서의 철칙이다.

3 들꽃 한 송이만 있어도 감각이 산다 손님상에 음식 올릴 때, 접시 한쪽에 작은 꽃송이 하나와 잎사귀만 얹어놓아도 감각적인 상차림이 될 수 있다. 손님 오는 길목에 수반이나 물이 든 잔 같은 것에 그 꽃송이를 띄워놓아도 좋다.

4 텃밭의 비료, 돈 주고 사지 마라 과일 껍질 같은 음식물 쓰레기를 물 담아놓은 바가지에 한데 모아 흙 속에 묻으면 비료로 사용할 수 있다.

5 국수 한 그릇의 만찬 손님이 왔는데 마땅히 대접할 게 없을 때 다시 멸치 국물에 간장으로 간을 하고 부추와 홍고추 잘게 썰어 넣고 국수 한 그릇 대접한다. 술 먹은 다음 날에는 그만한 해장이 없을 테고, 손님들에겐 담백한 식사 한끼가 될 수 있다. 직접 가꾼 채소가 곁들여진 것이니. 여기에 기호에 따라 넣어 먹도록 신 김치를 함께 내놓는 것이다. 이것이 박남준 최고의 요리다.

김명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7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