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미순ㆍ김영민 모자가 채취한 각양각색 해조류. (위부터) 머리 부분인 미역귀가 그대로 붙어 있는 미역, 개체수가 줄어들어 귀한 몸이 된 뜸부기, 열매처럼 공기주머니가 매달려 있는 모자반, 초록색이 선명한 파래, 오돌오돌한 식감을 지닌 톳.
새벽 6시, 잔잔한 파도 소리가 섬마을 일꾼들을 불러 모은다.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더니 2.13톤 어선에 몸을 싣는다. 새벽 어스름을 헤치고 달려간 곳은 신지도 앞바다에 펼쳐진 해조류 양식장. 어림잡아 150m에 이르는 양식줄에 매달린 톳과 미역이 파도를 따라 너울댄다. 해가 솟아 연분홍색으로 물든 하늘빛을 조명 삼아 춤추는 것처럼. 살갗을 아리게 하는 찬 바람이 짠기를 머금은 비린내를 몰고 온다. 아,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오묘한 풍경, 신지도의 겨울 바다다. 전라남도 완도에서 가장 가깝고 물결이 순해 양식장이 즐비하던 섬, 하지만 조선 후기 유배 온 선비들의 한숨과 일제강점기 항일 운동가들의 수난으로 고단하던 섬. 신지도에는 ‘모래가 운다’라는 뜻의 명사십리鳴沙十里라 불리는 백사장이 있다. 철종 때 신지도로 유배 온 문신 이세보가 밤마다 해변으로 나가 모래톱에 시를 쓰고 읊었는데, 그 소리가 마치 울음소리같아 명사십리라 이름 붙었단다. 예나 지금이나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한 이 섬을 지켜온 이들은 고기를 잡고, 해조류를 채취해 밥상을 차리던 어민이었으리라. 1960년대 후반 완도 일대에 김과 미역 가공 공장이 들어서면서 바다 양식은 어민에게 삶의 수단이 되었다. 전복도 유명하지만 신지도를 비롯해 완도 지역에서 생산하는 다시마는 전국 생산량의 79%를 차지하며, 톳은 60%, 미역은 46%에 달한다. 최근에는 해외 수출과 해조류 소비량이 늘어나면서 귀어歸漁를 꿈꾸는 이들이 몰려오는 곳이기도 하다. 문미순ㆍ김영민 모자母子는 이 섬에서 태어나고 자라 해조류를 채취하고 석화 등을 양식한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부터 이듬해 봄까지 두 사람의 손은 바다밭(바닷가에 있는 양식장을 이르는 말)에 씨를 뿌리고 거두느라 물기 마를 날이 없다.
내가 살던 바다는
“우리 어머니는 소예요. 남들 하는 것보다 두 배로 열심히 일합니다. 양식 줄에 포자를 끼울 때 손놀림도 굉장히 빨라요. 그런 어머니가 힘에 부친다고 하니 아들인 제가 돕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김영민 씨의 말처럼 문미순 씨는 신지도에서 70년을 산 토박이다. 그가 어릴 적, 그러니까 사람 손으로 네 시간 넘도록 노를 저어 육지로 나가던 시절 말이다. 새벽 2시면 마을 어른들을 따라 미역을 베고, 고기를 잡아 머리에 이고 다니며 팔았단다. 미역과 파래, 다시마 등 각종 해조류로 만든 밥과 국, 무침은 섬사람들에게 흔한 먹거리였다. 그중 톳밥은 부잣집에서나 먹던 귀한 음식이었는데, 지금은 톳도 많고 쌀도 풍부하니 오래 살고 볼 일이라며 문미순 씨가 허허 웃는다. 김영민 씨의 아버지이자 전남 강진이 고향인 김방택 씨는 여장부처럼 호탕한 문미순 씨에게 반해 신지도에 눌러앉았다. 장인어른에게 딸을 주지 않으면 송장이 되어 이 섬에서 나가겠다고 말하며 설득했다고 하니 이 얼마나 애틋한 섬 로맨스인가. 바닷일로 삼 남매를 키웠고 첫째 딸이 섬을 나가면 육지로 가리라는 계획은 칠십 평생 꿈으로 남았다. 10대 후반부터 객지 생활을 한 둘째 아들 김영민 씨가 신지도로 돌아온 것은 2001년. 복잡한 도시 생활에 지친 탓도 있지만 어머니의 밥상과 어릴 적 먹던 해초 맛이 그리웠다. 지금은 누구보다 이 일에 자부심을 가지며 해조류를 키워 완도바다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톳, 미역, 모자반··· 바다밭이 내준 채소
해조류는 바닷속 모래나 바위에 부착해 사는 하등식물로 해초나 바다 채소를 말한다. 크게 녹갈색이나 담갈색을 띠는 갈조류(톳, 미역, 다시마, 모자반)와 자줏빛이 도는 홍조류(우뭇가사리, 김), 엽록소가 들어 있어 녹색을 띠는 녹조류(파래, 청각) 등으로 나눈다. 전남 목포 해조류 연구센터 하동수 박사는 우리나라에 식용하는 해조류는 수십 가지에 달한다고 말한다. 이를 토종이라 정의하지는 않지만 해조류에는 외래종이 없어 대부분 국내산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덧붙였다. 김영민 씨가 주로 양식하는 해조류는 톳과 미역이다. 맛이 좋아 식용으로 즐기는 톳은 다년생 해조류로 조간대 하부에서 서식한다. 우리나라 전 연안에 분포하며 가장 친숙한 미역은 고려시대부터 중국에 수출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는 2016년부터 참모자반 양식도 시작했다. 참모자반은 지역에 따라 ‘몸’이나 ‘몰’이라 불리며 톳과 비슷한 모양으로 잎의 구분이 뚜렷하고 짙은 황갈색을 띤다.
촬영 당일 새벽에 따라나선 양식장에서는 톳 수확이 한창이었다. 작은 어선이 양식 줄 사이로 들어가자 네 사람이 힘을 합쳐 줄을 배 위로 끌어 올린다. 양식 줄을 따라 배가 조금씩 움직이면 칼을 쥐고 선 사람이 톳을 툭툭 끊어내는 식이다. 바닥으로 떨어진 톳이 수북하게 쌓여간다. “미역은 포자만 뿌려도 스스로 잘 자라는 반면, 톳은 포자를 활용한 양식법이 개발되지 않았어요. 바다 양식은 일하는 시기가 육지 농사와 반대로 갑니다. 매년 9월부터 10 월까지 자연의 암반에 서식하는 어린 톳을 채취해 와 양식 줄에 끼우는 식으로 이식해서 키워요. 미역은 조류 흐름이 약한 곳에 심고, 톳은 빠른 곳이 적당해요. 그러지 않으면 뻘이 차서 뿌리가 썩거나 다른 해초들이 엉겨 붙어서 자라기 때문이죠. 150m 양식 줄을 기준으로 약 80kg의 톳 뿌리를 일정한 간격으로 매달아놓는다고 생각하면 돼요.” 12월부터 4월까지 채취한 해톳은 생으로 판매하며, 양식 줄에 남긴 포복지(다음 세대에 줄기가 될 싹을 갖춘 뿌리 부분)의 재생력으로 다시 자라난 톳은 이듬해 5월부터 6월에 채취해 건톳으로 판매한다.
이른 새벽부터 시작한 톳 수확 작업. 품앗이처럼 오늘은 이웃 형님네 양식장, 내일은 김영민 씨의 양식장 … 식으로 수확 일을 서로 돕는다.
2016년부터 참모자반 양식을 시작했다. 2017년에는 80%밖에 성공하지 못했다며 내심 아쉬워하는 김영민 씨. 맨손으로 작업하는 것이 익숙하다는 그의 손은 굳은살이 가득하다.
입말한식가 하미현은 수확한 톳을 선별하고 자루에 담는 작업을 함께 했다.
갯바위에 붙어 자라는 뜸부기.
갯바위에서 발견한 귀한 해초, 뜸부기
오후 5시, 파도는 온데간데없고 바닷길이 열리기 시작한다. 썰물이 빠져나가자 해초가 엉겨 붙은 크고 작은 바위가 모습을 드러낸다. 김영민 씨는 지금이 갯바위에 붙은 자연산 해초를 채취할 수 있는 때라며 취재진을 건너편 섬으로 이끈다. 문미순 씨는 이미 저만치 걸어가 해초를 채취하는 데 여념이 없다. 김영민 씨가 갯바위에 붙은 해초 하나를 뜯어서 보여준다. 황갈색을 띠고 납작하게 생긴 것이 요상하며 돌려난 가지가 달려 있다. “청정 지역에서만 자라는 뜸부기입니다. 기름에 볶아 들깻가루를 뿌려 먹으면 정말 맛있어요. 옛날에는 제사상에도 올렸는데, 지금은 귀한 몸이 되어버렸지요. 바닷물이 빠진 갯바위에서만 소량으로 채취가 가능한데, 마을 어촌계에서 엄격하게 관리해요.” 그의 말처럼 뜸부기는 육지와 인접한 연안에서 거의 보기 어려울 만큼 귀한 해초다. 2009년 정부는 뜸부기를 보호 대상 해조류로 지정해 일정 기간 동안 채취를 금지하고 있다. “해초야말로 바다가 키워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바닷물이 차가울수록 맛이 들죠. 자연산 채취와 양식을 겸하고 있지만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언제 먹어도 크기가 적당하고 식감이 부드럽도록 말이에요.” 어느덧 해가 수평선을 따라 뉘엿거린다. 모자는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갈 채비를 서두른다. 새벽에 시작해 해가 지고 나서야 모든 바닷일이 끝났다. 물기 머금은 톳과 미역, 뜸부기, 모자반을 들고 걸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 뒤로 해가 완전히 사라졌다.
입말한식가 하미현이 제안하는 해조류의 맛
톳 오돌오돌한 식감이 좋으며, 알긴산과 푸코스테롤 등 항암 성분이 풍부하다. 굴이나 조개 등 식감이 부드러운 식재료를 더해 나물로 먹으면 맛있다. 미역 생미역은 잎이 부들부들하고 짠맛이 약간 난다. 향이 진해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소금과 참기름만 넣고 무쳐 먹어도 맛있다. 참모자반 줄기 옆으로 포도알 같은 공기주머니가 매달려 있어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식감이 매력적이다. 고기와 영양학적으로 궁합이 좋다. 뜸부기 톳보다 조금 더 탱글탱글하고 식감이 다소 질기다. 무침보다는 황탯국이나 된장국에 넣어 먹으면 진액이 나와 국물이 진해진다. 파래 다섯 가지 해초 중 유일하게 데치지 않고 생으로 먹을 수 있다. 특유의 향이 있어 산미가 있는 식재료와 잘 어울린다.
참고 도서 및 논문 <식용해조류1, 2>(고려대학교출판부), ‘한국 진도의 자연군락 뜸부기의 생장과 성숙 주기’(황은경ㆍ유호창ㆍ하동수ㆍ박찬선, 국립수산과학원 해조류연구센터)
- 전남 완도군 신지면 바다를 품은 섬 나물, 해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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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앞바다는 온순하다. 주변에 크고 작은 섬이 많아 거센 파도를 막아준다. 완도에서 신지대교를 건너면 다다르는 신지도薪智島. 이 섬에서 평생 바닷일을 한 문미순 씨의 밥상엔 톳과 미역, 모자반 등 해조류가 가득하다. 아들 김영민 씨는 그런 어머니를 도와 바다의 채소, 해조류를 채취한다. 한때는 너무 흔해 귀한 줄 몰랐고, 지금은 건강식으로 주목받는 식재료, 우리 바다에서 나는 해조류 이야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8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