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김숙자 씨의 작업실을 등지고 가부좌를 튼 흙 인형.
2 지인이 직접 두드려 만든 놋쇠종.
3 틈틈이 만드는 부조 작품.
4 김숙자·강태길 씨 부부는 매일 바람이 지나는 길을 따라 산책을 나선다. 강아지 마루도 함께.
나무·흙·바람이 최고의 전시장 ‘외딴집’ 문패를 지나 입구에 들어서니 너른 정원이 펼쳐진다. 정원이라 해도 담장을 세우고 키 큰 나무로 둘러 경계를 두는 형식이 아니다. 하늘을 향해 휑하니 펼쳐져 있다. 유일한 특색이라면 곳곳에 올망졸망하게 세워둔 바위들. 그마저 보일 듯 말 듯 숨어 있다. 정원을 가로질러 들어가 본다. 가까이 다가가니 아차 싶다. 바위라고 여겼던 것들이 이곳에 사는 조각가 김숙자 씨가 흙으로 빚은 작품이었던 것이다. 찬찬히 둘러보니 돌무덤 위에, 나무 아래에, 물가 옆에도 그가 만든 인형들이 옹기종기 놓여 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가져다 놓았다기보다, 마땅히 제가 있을 곳을 알아서 찾아간 듯 안정된 자세로 앉거나 서거나 누워 있다.
외딴집은 도조陶彫(도예와 조각이 접목된 장르) 작가 김숙자 씨의 작업실이자 살림집이다. 외딴집이란 제주도 남제주군 표선면 중에서도 사람이 잘 들지 않는 곳에 외따로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김숙자 씨는 경기도 파주에 살다가 7년 전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보다 13년 먼저 사진가인 남편 강태길 씨가 이곳에 터를 잡아 이 집을 지어두었다. 김숙자 씨가 합류하면서 큰 가마를 설치한 별채를 올렸다. 여기서 김숙자 씨는 ‘생명의 소리’라는 주제로 도조 작품을 빚고 있다. 언뜻 테라코타를 연상시키는 색상이지만, 초벌구이만 하는 테라코타와 달리 유약을 바른 뒤 재벌구이를 거쳐 만든다. 1천2백60℃의 고온에서 굽기 때문에 한겨울 야외에 두어도 깨지지 않는다.
2005년에는 개인전을 아예 외딴집의 마당에서 열었다. 흙 인형들은 너른 마당에서 예의 그 편안한 자세로 방문객을 맞이했다. 그러자 조명이 설치된 실내 전시장에 놓인 조각품에 익숙한 손님들은 귀한 작품을 왜 함부로 밖에 흩어놓았냐며 의아해했다. 김숙자 씨는 ‘햇살과 구름보다 더 자연스러운 조명이 어디 있으며, 이끼 낀 나무나 눈 덮인 바위처럼 근사한 진열대가 어디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리곤 고요히 웃었다.
자연 속 전시회를 열게 된 의도에 대해 작가는 ‘큰 뜻은 없었다’고 말한다. 마당에 전시회를 하면 집에 사람이 드니 겸사겸사 부부의 첫 입도식入島式을 치를 수 있으리라는 요량을 품긴 했다. 김숙자 씨는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하지만, 사실 자연을 전시장 삼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조약돌이나 묘목이 그러하듯, 거슬림 없이 자연 풍경의 어느 한구석에 자리하려면 작가 자신도 자연의 일부가 되어야 했을 것이다.
요가하는 흙 인형? 김숙자 씨의 도조 작품은 대부분 눈을 감고 있다. 그래서인지 표정을 읽기가 힘들다. “명상을 하느냐? 혹은 졸고 있느냐?”라고 물으니 보는 사람 마음에 달렸단다. 그렇지만 여전히 작가가 무슨 의도로 이 작품을 만들었는지가 못내 궁금하다. 혹시 제목을 알면 작가의 생각을 읽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생명의 소리’라는 주제는 있지만, 작품 하나하나마다 제목은 없습니다. 사실 모든 작품에는 설명이 필요 없거든요.” 김숙자 씨는 각자가 자기 감성의 결대로 작품을 즐기기를 바란다. 실제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대로 작품을 바라본다. 그리하여 눈 감고 가부좌한 모습의 흙 인형을 두고 누구는 평화로워 보인다 하고, 누구는 슬프다, 누구는 외롭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요가를 하고 있다’고 표현한다.
한번은 김숙자 씨가 마당에 손바닥보다 작은 토우 수십 개를 펼쳐둔 적이 있다. 이때도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각자 자기와 닮은 토우를 찾아보더란다. 실상 그의 작품을 통해 자기 얼굴 생김이나 표정과 닮은 꼴을 찾기란 애매한 일인데도 말이다. 그의 흙 인형은 인간의 형체를 갖추긴 했으나 정밀한 묘사가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형상을 세밀하게 묘사하지도 않았는데, 왜 우리는 김숙자 씨의 작품에서 사람의 온기를 느끼는 것일까? “작품을 빚으며 인간의 숨결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의식을 하지는 않아요. 제 작품의 대상을 사람으로 한정하지도 않고요. 사실 ‘생명의 소리’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들려줄 수 있거든요. 그러니 동물 형상을 빚어도 되겠지요. 단지 어느 구석이 조금이라도 인간과 닮으면 우리가 감정이입을 하기에 조금 더 수월하기에 이런 모양으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생명의 소리를 듣기 위한 통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숙자·강태길 씨의 보금자리는 어머니 젖가슴 같은 부드러운 오름에 안겨 있다.
1 평화로운 얼굴로 발가락을 맞비비며 해바라기하는 아이. 시샘이 난다.
2 무슨 생각에 잠겨 있나요?
3 이끼가 붙고 흙먼지가 쌓인 채로 그 자리에 머문다. 세월을 관조하고 있는가?
4 턱을 괸 모습이 그리 편안해보일 수 없다.
5 한낮에 망중한을 즐기는 두 녀석. 10cm 정도로 자그맣다.
바람 속을 유유히 흐르는 조각 김숙자 씨의 작품 곁을 거닐고 나면, 부드러운 곡선이 잔상으로 남는다. “각진 부분은 언젠가 마모되기 마련입니다. 자연을 보세요. 세월이 지날수록 바람에 풍화되고 물에 씻겨 부드러워지지요. 제 작품도 자연스럽기를 바라기 때문에 곡선으로 이루어진 듯싶습니다.” 그는 자신의 흙 인형이 ‘바람이 흘러가기 좋은 형태’일 것이라고 말한다. “거센 바람에도 작품이 넘어지지 않아요. 뭍에 사는 친구들은 이곳에 태풍이 몰아칠 때마다 이 아이(흙 인형)들이 쓰러져서 깨질 것을 염려하는데, 그런 일은 없었답니다. 제 작품이 바람의 길을 가로막지 않는가 봅니다.”
혹시 지난 7년간의 제주도살이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요. 자연이 제게 준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흙을 주무르고, 가마에 넣고 불을 조절하는 모든 과정에 작가로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지만, 불에서 나온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아, 이게 나의 힘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마다 이곳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듯한 기분을 실감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리 되었던 것은 아니다. 제주도에 처음 왔을 때는 낯설고 물 설어 고생을 많이 했다. “쉽지 않았어요. 저를 온전히 열기 전까지는 자연도 제게 문을 열어주지 않더군요.” 원래 뭍에서 제주도로 오면 처음 3년을 잘 넘기기가 쉽지 않다고들 한다. 그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초기에는 제주도 바람이 그렇게 못 견디게 쓰라렸는데, 3~4년 전부터는 바람과 대화할 줄도 알게 되었다.
늦은 오후가 되자 하늘이 점점 낮아진다. “제주도의 빛은 오후 4시부터 풍부하고 깊어집니다. 아주 미칠 지경으로요”라던 남편 강태길 씨의 말을 되새기게 한다. 정오보다 한층 부드러워진 빛이 지면을 깊숙이 밀고 들어온다. 해가 기울며 빛이 낮아지니 풍경도 달리 보인다. 김숙자 씨의 작품에서도 묘한 변화가 일어난다.
1 주무르고, 자르고, 붙이고, 굽고, 또 깨트리고…. 김숙자 씨의 도조 작업은 30년 넘도록 매일 일기를 쓰듯 계속되어왔다.
2 외딴 곳까지 찾아오는 이들에게 직접 빚은 찻잔을 선물하기도 한다. 아담하게 만든 시루에는 콩나물을 기른다.
3 두 달에 한 번 가량 가마에 불을 넣는다. 가마 이름은 ‘넓은 하늘’.
4 지인의 낡은 집에서 구조해 온 문짝.
5 작업실에는 큰 창이 있어 늦은 오후까지 햇살이 다녀간다. 빛이 잦아들 무렵 그도 작업을 접는다.
수직으로 내리꽂히던 햇살은 이제 흙 인형을 푸근하게 감싸 안는다. 넉넉하고 너그러워진 빛에 흙 인형은 마음을 내보여주기로 한 것일까. 작품은 각도에 따라 다른 색을 내보인다. 작품을 빚을 때 남은 손자국이 흡사 고흐 그림의 붓 자국 같다. 아! 문득 인상파의 작품이 왜 그렇게 그려졌는지를 알 것 같았다. 프로방스 햇살은 벌판과 해바라기와 올리브 나무가 입고 있는 찬란한 빛의 비늘을 드러내주었을 듯싶다. 그리고 제주의 오후 햇살은 김숙자 씨의 작품에서 질박하고도 깊은 흙빛을 꺼내 보내주었다.
햇살 덕에 흙 인형에 담긴 ‘생명의 소리’가 더 또렷이 들리는 듯하다. 김숙자 씨 말대로 ‘간절하고도 아름다운, 살아 있는 것들이 살아가고자 끊임없이 애쓰는 소리’가 말이다. 그것은 가슴 저리게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