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는 독서광인 스스로의 독서 습관에 대해 써내려간 책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에서 자동차보다 ‘책상’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해왔다고 기록했다. 차 안에 있는 시간보다 책상 앞에 있는 시간이 더 많고 소중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덧붙였다. 수많은 책과 방대한 자료를 층층이 옮겨놓은 개인 서가 전용 건물 ‘고양이 빌딩’을 수많은 페이지에 걸쳐 자랑하기도 했다. 글을 쓰는 이에게 책상이란 일상을 보내는 곳이고 서재란 인생을 담는 곳이다. 하물며 평생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학자에게는 오죽할까. 이화여대 생명과학과 석좌교수 최재천 씨의 ‘통섭원’은 과학자로서 보다 넓고 깊은 학문 세계에 매진하기 위해 자신의 투자, 지인들의 응원에서 비롯된 새로운 연구실이다.
최재천 씨는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재직 당시 EBS에서
잠깐 동안만이라도 최재천 교수에게서 생물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정말로 흥미진진하다. 동식물의 세계는 마치 ‘우주’라도 되듯, 그들의 세계가 적용되지 않는 곳이 없다. 바우어새bower bird는 정자亭子를 지어 암컷을 유인하는데 크고 멋진 집일수록 구애 성공률이 높다는 이야기 역시 그에게서 전해 들은 흥미로운 이야기 중 하나. 듣다 보니 요즘 여자들 사이에서도 자기 집을 소유한 남자들이 일등 신랑감으로 꼽히는 것을 보면 바우어새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듯 하다. 하나를 알면 열을 아는 게 아니라 동식물을 알면 온천지를 다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최재천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을 모든 사물이 다 통한다는 ‘통섭通涉’이라 이름 붙인데는 다 연유가 있었다. 진리에 영역이 없다면 학문 역시 그러하다 믿고, 분야가 다른 학문이 통합되기는 힘들더라도 서로 분명 만나게 된다는 뜻에서, 그리고 그것을 몸소 실현하겠다는 의지로 그리 지은 것. 까치, 영장류, 농게 등을 연구하는 7명 박사 일곱 명과 이화여대 생명과학과 학생들의 연구실과 실험실을 진두지휘하는 통섭원에서는 동식물과 인간의 세계가 만나고 있었고 학문과 학문이 통하고 있었다.
책상 한쪽에는 자석 칠판이 있어 유용하게 사용된다. 칠판에 걸려 있는 가방은 최재천 교수의 오래된 애장품으로 스니커즈를 즐겨 신는 그의 패션과 잘 어울린다.
여느 교수 연구실과는 분명 사뭇 다른 면학(?) 분위기가 조성된 최재천 교수의 연구실은 한동안 이웃 교수들의 명소가 되었다. 어떤 이들은 생물학자 방이 아니라 인문학과 교수 방 같다는 말로 부러움을 대신했다. 신사임당의 초충도, 화조도의 이미지를 콜라주한 벽지로 마감한 책상 뒤쪽의 벽면은 최근 최재천 교수의 각종 언론 인터뷰 촬영의 단골 배경이 되기도 했다. 건너 벽면에 꽉 들어찬 책꽂이는 연구실의 책을 다 채우고도 남는 것이, 곳간에 쌓아놓은 쌀이 아직도 충분한 것마냥 그의 마음을 넉넉하게 한다. 복잡한 시스템 대신 단출한 컴퓨터 박스 하나로 완벽한 음향과 영상을 구현해내는 A/V 시스템이라도 가동되면 동물 다큐멘터리, 오페라 공연 등 생생하고 실감나는 사운드와 영상이 통섭원을 장악한다. 그의 실험실에서 연구가 한창인 까치, 농게 등을 관찰한 영상도 조만간 이곳에서 발표될 예정.
단 하나의 책상으로 온전히 그의 연구실로 보이는 이곳은 종종 세미나실로도 활용된다. 마치 아파트 거실처럼 마루가 깔려 있어 ‘좌식’ 세미나가 열리는가 싶더니만 최재천 교수가 책상 한편에서 널찍한 상판과 기둥 두 개를 꺼내어 보인다. 기둥을 다리로 세우고 그 위에 상판을 얹으니 어느새 멋진 책상 하나가 완성된다. 통섭원 구석에 놓여 있던 벤치인 줄만 알았던 의자가 바퀴를 굴려 중앙으로 움직이더니 대여섯 개의 이동식 의자가 된다. 의자 몇 개만 보태면 10여 명이 이곳에 모여 앉는 것은 시간 문제다.
최재천 교수는 최근 까치에 관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정성스럽게 집을 짓는 생물 중 하나인 까치 둥지를 해부해보니 나뭇가지로만 지어야 할 집을 철사로 짓고 있었다. 전봇대에 둥지를 튼 까치집이 누전 사고의 원인이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 그렇다고 해서 까치를 탓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는 ‘까치가 억울하다’고 여긴다. 도심 속 새, 까치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의 집터가 되고 집짓기 재료가 되는 나무와 나뭇가지가 사라지니 엄한 전봇대 위를 집터로 삼고 급한데로 철사줄로 둥지를 엮을 밖에. 안타까운 마음에서 최재천 교수에게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까치들에게 둥지를 만들 수 있는 색깔 물든 나뭇가지, 색깔 있는 막대를 공급하는 것. 나무 막대로 집을 짓는다면 누전될 위험도 없을뿐더러 컬러풀한 까치집이 도시 곳곳에 지어져 새로운 까치집 패션, 색다른 도시 풍경이 생겨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생물학자로서 생태계에 대한 책임감과 더불어 유머까지 겸비한 발상이 아닐닐 수 없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까치에게 도시 풍경을 디자인하게 하다니, 통섭通涉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최재천 교수의 연구실 통섭원에서는 아니 통하는 것이 없다.
1 통섭원은 컴퓨터 안에 음악과 영화 파일을 저장, 완벽한 사운드와 영상을 재생해내는 A/V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천장에 매입된 전동 스크린이 내려오면 어느새 영화관이 부럽지 않다. 생태 관련 다큐멘터리 상영은 물론 이곳 연구원들의 세미나에도 유용하게 활용된다.
2 최재천 교수가 디자이너 유이화 씨에게 주문한 사항은 단 하나, ‘책이 많이 들어갈 것’. 두 벽면 모두를 책장으로 꽉 채운 이곳은 더 많은 책을 기다리고 있을 만큼 넉넉한 여유 공간이 확보되어 있다. 스툴 위의 방석은 한복 디자이너 김영석 씨가 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