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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_문화기행]길 따라 만나는 근대 문화유산 길 따라 만나는 근대 문화유산
구 舊도심이 갖는 오라는 단순히 곰팡내 나는 노스탤지어나 세시봉류의 추억만은 아니다. 많은 문화 인사나 예술가가 구도심만의 콘텐츠를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 때문. 일제강점기와 전쟁, 개발이라는 모진 세월 속에서 삶의 희로애락이 오롯이 담긴 문화유산은 물론, 이웃 간의 정을 느낄 수 있는 구도심 근대 문화 기행에 일맥문화재단 최성우 대표가 동행했다.

“부산 문화를 들여다보면 일본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철도청장이 살던 근대 가옥, 일본 천왕도 머물렀다는 동래 별장 등 ‘모던 보이’ 시대의 근대 문화유산이 아직까지 많이 남아 있지요. 또 한국전쟁을 겪으며 부산은 곳곳에서 밀려온 피란민들과 일본에서 귀환한 재일동포들이 삶을 영위하는 터전이었습니다. 이들은 밀면, 돼지국밥, 꿀꿀이죽을 나눠 먹었으며 깡통시장, 보수동 책방 골목 등 전쟁의 산물이 민들레 씨앗처럼 하나 둘 생겨났습니다.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도 삶은 피어났지요. 감천 2동, 대신동을 지나 국제시장, 깡통시장, 남포동, 광복동, 자갈치 시장, 부산시청, 중앙동, 부산역을 거쳐 일맥문화재단의 본거지 초량동까지, 구도시를 한 바퀴 도는 이 동선 안에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구도심을 걷노라면 굳이 역사의 뒤안길을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가슴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낡고 고루하다고 역사를 버리거나 감춰야하나요? 대부분의 상권이 해운대 지역으로 넘어간 지금, 옛 활기를 되찾을 수 없다면 구도심만의 콘텐츠를 동력 삼아 제2의 개항을 해야 합니다. 구도심을 따라 걷는 길은 ‘부산’의 비전과 소통이자 미래 그 자체입니다.”

최성우 씨는… 미술을 전공, 프랑스에서 문화 경영을 공부하고 귀국한 후 일맥문화재단의 이사장, 메타로그 아트 서비스의 대표를 맡고 있다. 통의동 영추문 옆, 예술이 쉬어가는 문화 숙박업소 ‘보안여관’을 운영한다. 보안여관은 그림, 조각, 사진, 퍼포먼스 등 다채로운 예술을 만날 수 있는 복합 문화 예술 공간으로 일맥문화재단의 근대 가옥과 함께 창의적 복원이라는 명맥을 잇는 상징적인 곳이다.

1 구 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
동아대학교 박물관

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이던 건물을 레노베이션해 현재 동아대학교 박물관으로 이용하고 있다. 벽체와 기둥 모두 옛것 그대로를 유지하면서 레노베이션한 창의적 복원의 구체적 모델. 총 4개 층의 전시관에 국보 2점과 보물 12점을 비롯해 3만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전시관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역사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문의 051-200-8493 주소 서구 부민동 2가 1

2 일본 근대 가옥의 정수,
일맥문화재단&정란각

일맥문화재단 소유의 부산 초량동 일식 주택은 1925년에 지은 집으로 문화재청등록문화재 349호로 등재되었다. 최성우 대표가 유년 시절을 보낸 곳으로, 일맥 문화재단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신청하면 방문할 수 있다. 일식 목조 주택으로 구성된 이곳은 두 차례 증축 과정을 거쳤지만 내부 공간과 정원 구성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근대 주택사와 생활사 연구의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일식 평기와를 사용했으며 일식 주택의 도코노마, 장지문, 다다미 등 세부 디테일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최근까지 요정으로 이용하다 얼마 전 문화재청 등록문화재로 등재된 ‘정란각’ 역시 초대 철도청장이 살았던 일본 주택이다. 문화재청의 심사 후 공개할 예정.
문의 051-463-5653 주소 동구 초량3동 81-1(일맥문화재단)


3 부산 최초, 소화장·청풍장 아파트
남포동 극장가 뒤편 골목길에 있는 가장 오래된 아파트식 주택. 1941년ㆍ1944년, 철근을 사용하지 않고 시멘트와 자갈만으로 지은 부산 최초의 아파트다. 일본식 건물로 아래층에는 상가가 있고 2층부터 사람이 거주한다. 예전에는 국회의원 숙소로 이용했을 정도로 명성을 누렸지만 주변 건물이 새로 들어서는 동안 많이 노후된 지금은 재건축만 기다리고 있다.

4 희망의 산복도로
부산항이 바라보이는 수정산 산동네에 처음 개설되었다. 산동네는 1920~30년대 부두와 방직 노동자, 해방 이후에는 귀환 동포, 한국전쟁 때는 피란민들이 자리 잡고 살던 곳이다. 한때 밤에 부산으로 들어온 외국 선박들이 마천루처럼 보이는 이곳 산동네의 불빛을 보고 감탄했다가 아침에 판자촌임을 알고 실망 했다는 자조 어린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부산의 산복도로와 산동네는 감추고 싶은 부산의 상흔이다. 하지만 요즘 산복도로는 부산의 소중한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구릉지형 주거 형태인 산복도로는 해방, 한국전쟁, 경제 개발기 등 부산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사회 문화적 자원인 것. 애환과 고난의 산복 도로가 희망의 삼복 三福도로가 될 날을 기대해본다.


5 구 미문화원, 부산근대역사관
일제강점기 대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 지점으로, 이후에는 미국문화원, 미국영사관으로 이용되었다. 1920년대 지은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서구 양식이 도입되는 당시의 건축 성향을 알 수 있다. 건물 내부에 부산역과 1940~60년대 거리 풍경을 재현한 포토 존이 마련되었고, 3개 층의 전시관은 근대 역사를 알 수 있는 전시를 펼치고 있다. 문의 051-253-3845 주소 중구 대청동2가 99

6 만남의 광장, 40계단 문화관
피란 시절 행정 중심지이던 부산 중구에 있는 곳으로 많은 피란민이 그 주위에 판잣집을 짓고 밀집해서 살았다. 40계단은 부두에서 가까웠고 영도다리 또한 한달음에 다다를 수 있는 곳이었다. 바로 앞 부두에서 들어오는 구호물자를 내다 파는 장터로 피란 중 헤어진 가족들의 상봉 장소로 유명하다. 40계단을 올라서 오른쪽으로 가면 문화관이 있다. 피란민들의 생활과 애환을 기억하기 위해 설립한 교육 전시 공간이다.
주소 중구 중앙동 3가 40계단길


7 국제시장 옆 보수동 책방 골목
보수동 책방 골목의 시작은 1950년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었을 때부터. 이북에서 피란 온 부부가 보수동 사거리 입구 목조 건물 앞 박스를 깔고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잡지와 만화, 고물상에서 수집한 헌 책들을 판 것이 시초. 이후 자연스럽게 책방이 늘어 70여 개의 책방이 생기면서 부산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책을 팔거나 사는 곳이기도 하지만, 고서도 심심찮게 흘러들어 수집가들도 즐겨 찾는 곳.
주소 중구 보수동 1가 119

8 영도 절영해안산책로
보람아파트에서 시작하는 절영해안산책로. 부산에 오래 산 사람도 잘 모르는 숨은 산책로다. 밑에서부터 걸어 위로 올라가서 동네 한 바퀴 돌며 반나절 걸으면 좋은 거리. 윗동네에서 아래 산책로로 내려가면 드라마틱한 바다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앞바다를 내려다보면 배가 종이배처럼 보인다고. 이 길은 태종대, 용호동으로 이어지고, 그 바다를 건너면 뉴 부산이 있다. 상황적으로는 단절되었지만 의미적으로는 바다를 통한 소통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글 이지현 기자 사진 박찬우, 이우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