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가르며 ‘소금 대패’로 소금을 모아 산을 쌓는 채염 작업이 끝나면 목조로 된 창고로 소금을 날라 간수를 뺀다.
소나무의 기운이 더해진 마금리 염전
송화소금
천일염은 바닷물(해수)을 햇빛과 바람으로 증발시켜 만든 소금이다. 미생물이 풍부한 갯벌에서 자연의 도움으로 탄생한 천일염은 그 자체로 선하고 귀하다. 같은 천일염이라도 격이 있는데, 바닷물은 성분 차가 크지 않지만 생산지의 환경과 만드는 방법에 따라 천일염의 성분과 맛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현재 전 세계 소금 생산량은 2억 톤 정도인데 그중 호주와 멕시코 등 대규모 염전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이 약 37%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들은 바닷물을 염전에 가둔 후 1~2년에 한 번 트랙터 등으로 소금을 채취해 미네랄 성분이 거의 없고 정제염과 별반 차이가 없다.
(왼쪽) 맨 아래 누런 기운을 띠는 것이 송화소금. 그 위의 하얀 천일염이나 칙칙한 빛깔의 소금과는 미세한 차이가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아침 혹은 그 전날 오후, 갯벌을 개조한 염판에 바닷물을 채워 당일이나 이튿날 사람이 일일이 소금을 채취했다가 소금 창고에 보관해 간수를 뺀다. 그러니 국산 천일염의 풍미가 뛰어나고 미네랄 함량이 확연히 높아 값도 더 나간다. 더군다나 송화소금은 소나무의 꽃가루인 송홧가루가 뿌옇게 날리면서 염전 바닥에 쌓이면 소금에 그 물이 노랗게 들면서 만들어진다. 송화소금이 만들어지려면 염전 주위에 소나무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송홧가루는 1년 중에서도 보름, 5월 중순부터 말까지만 날리는 특수성 때문에 요즘 송화소금은 명품 대우를 받는다. 가격은 20kg 기준으로 산지에서 1만 원에 거래되는 일반 소금에 비해 4만 원으로 비싸지만, 노화 방지에 효과적인데다 지방간 해소에도 좋다는 송홧가루가 물든 송화소금이니 찾는이가 줄을 설 수밖에.
“자고로 소금은 오뉴월 소금을 최고로 칩니다. 옛날 어르신들 말씀에 소금을 사려면 송홧가루 날릴 때 사라고들 하셨지요. 볕 좋지, 바람 살랑살랑 불지 부족한 게 없거든요. 거기다 일부러 때를 맞춘것처럼 오월 중순이면 염전을 빙 둘러싼 소나무 숲에서 송홧가루가 사방에서 날아와 염판에 쌓여요. 들여다보면 노란 물감을 대충 풀어놓은 것처럼 보여 그림이 따로 없습니다. 거기에 소금이 노랗게 물드는데 금화나 다름없어요.”
그래서 송화소금을 ‘천일염의 금화’라고 하는 걸까. 태안에서 마금리 염전을 운영하는 한상복 씨가 금화 자랑하듯 송화소금을 이야기하면서 싱글벙글이다. 사실 송화소금이라고 송홧가루 물이 들어 황금빛을 띠는 것은 아니다. 희디흰 천일염에 비하면 왠지 칙칙할 정도로 하얀 기운만 약간 가신 정도다. 일반 소금에 비해 다디단 맛이 일품이라 김치와 장을 담그면 쓴맛이 없고 감칠맛이 다르다고. 게다가 송홧가루에 포함된 칼슘과 비타민 B₁ㆍB₂ㆍE는 인체의 혈관을 확장히는 효과가 있어 치매 예방에도 좋단다.
염전에서 해와 바닷바람을 늘 맞아 검붉게 탄 한상복 씨의 얼굴처럼 마금리 염전의 소금도 자연 그대로다.
(왼쪽) 소나무에서 오뉴월에 보름만 날리는 송홧가루는 치매 예방에 좋고, 지방간 해소와 노화 방지에도 특효다.
(오른쪽) 채염한 소금은 목조 소금 창고에서 간수를 뺀 뒤 포장용 봉투에 담겨 나간다.
“얼마 전 방송을 탄 후에는 송화소금이 더 난리예요. 불과 몇십 년전만 해도 송화소금의 칙칙한 빛깔 때문인지, 송화소금이 귀해서 그랬는지 동네에서나 먹고 그랬거든요.” 올해는 일본 원전 사고까지 겹쳐 천일염을 주문하는 전화가 쇄도했는데, 최근에는 간수를 빼지도 않은 송화소금마저 품귀 현상을 보이고 있단다. 이곳의 송화소금이 주목받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염전 대부분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창하기로 유명한 태안반도 연안에 자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마금리 염전은 남산과 우왕산으로 빙 둘러싸여 송화소금을 생산하기에 최적지로 꼽힌다.
“송화소금은 욕심낸다고 많이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일부 업자들은 송화소금에 천일염을 섞어 팔기도 하는 모양인데, 우리는 소금밭에서 얻은 그대로예요. 사방이 소나무라 송홧가루가 참 많이 날아오거든요. 아무래도 양이며 질이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것이죠.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면 쓰나.”
충남 태안군 근흥명 마금리에 염전이 들어선 것은 1950~60년대경. 우리나라 대표 염전으로 통하는 전남 신안 지역의 염전은 1945~1950년에 조성된 것으로, 이에 비하면 덜 알려진 데다 시기도 늦었다. 1997년 7월부터 수입 자유화가 되면서 다른 나라의 소금을 수입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소금이 수입 소금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정부에서는 2005년까지 폐전하는 염전 업자들에게 특별 지원을 하며 폐전을 장려한 적이 있다. 염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보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이 식용이 아닌 공업용 광물 취급을 받는 수모를 겪던 시기와 겹쳐 염전의 맥이 끊길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마금리 염전은 꿋꿋하게 버텨낸 뚝심과 의리의 역사가 있는 곳이다. 이곳은 총 8호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상복 씨가 운영하는 곳은 마금리 염전 3호. 마을 토박이 둘이 그와 함께 이곳을 돌본다. 30년을 염전꾼으로 산 그지만 아직 ‘송화소금’이라고 이름을 ‘박은’ 포장용 봉투조차 갖추고 있지 않을 만큼 돈벌이보다는 좋은 소금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선이니 그의 천일염은 여전히 순결한 소금의 꽃이다.
쉼 없는 손길과 기다림으로
맛이 드는 소금 농사
소금 농사는 바닷물을 끌어들여 저수지에 저장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사리 때 물을 채워 밀물의 수위가 가장 낮아지는 조금까지 쓰는 것이다. 음력으로 매달 보름과 그믐을 사리라고 하는데 염분과 미네랄 농도가 양수와 흡사한 물이 들고 난다. 조금은 음력으로 매달 8일과 23일. 그러니 저수지 물은 보름마다 한 번씩 채워지는 셈이다. 저수지에 채워진 바닷물은 증발지인 염판을 거치며 소금을 남긴다. 염판은 염전 전체 면적의 80%를 차지하며 여러 단계로 구획이 나뉘는데, 약간의 경사를 두고 물을 ‘꺾어서’ 댄다. 이렇게 염판을 여섯 단계 정도 거치면서 물은 증발되고 마지막 염판에 이르면 거기서 소금이 되는 것.
(왼쪽) 결정지 염판에 소금꽃이 피면 소금 대패로 긁어 모으는데 염전 일 중 가장 고되다.
처음 저수지에 바닷물을 채우면 염분 농도가 2도 정도인데, 물을 가두었다가 다음 단계로 내려보내는 증발지를 거치면서 바닷물의 농도는 점점 진해진다. 하루에 한 단계씩 밑으로 내려보내는데, 맨 마지막에 결정지가 되는 염판에 들어서 하얗게 소금꽃이 피면 천일염을 채취한다. 이를 채염이라 하며, 염분 농도는 15도 정도다. 염판 옆에는 수로라는 물길이 있는데, 수로를 통해 소금물은 염판에서 염판으로 옮겨진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염전의 소금물을 모두 ‘해주’라는 함수 창고에 가뒀다가 날이 좋을때 다시 수로로 물을 댄다. 해주 또한 소금물 농도에 따라 여섯 단계로 구분해 갖춰놓는다고.
“소금은 시간 없다고 급히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저수지에 바닷물을 채우고, 염판에서 염판으로 물을 꺾어서 대고, 결정지에서 햇볕과 바람으로 말리고, 긁어서 채염하고… 과정마다 기다림이에요.”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이 어디 있겠느냐만 그중에서도 소금은 쉼 없는 손길과 기다림으로 맛이 든다.
염전꾼은 짠물에서 소금꽃을 피운다
염전의 하루는 꼭두새벽부터 시작된다. 예전에는 별이 총총한 새벽 3~4시에 염전에 나가 결정지 바닥을 깨끗하게 정리했으나, 요즘은 전날 오후에 결정지에서 소금을 내고 나면 지저분해진 바닥을 미리 정리해둔다. 두어 시간이나마 더 눈을 붙이기 위함인데, 그래도 새벽 6시경에는 작업을 시작해야 하루의 작업량을 맞출 수 있다. 오전 내내 증발지의 물꼬를 트고 막는 일을 부지런히 한 뒤에 점심을 먹고 낮잠 한숨 자고 일어나면 다시 오후 참을 먹고 본격적으로 소금 채취에 들어간다.
오후가 되자 염판 바닥에 하얗게 소금꽃이 피었다. 결정지의 물을 만져보니 매우 미끌거린다. 염전의 수많은 미생물이 높은 삼투압을 견디기 위해 만든 글리세롤 성분 때문이니 단순한 소금물이 아닌 것이다. 보통 오후 2시경이면 소금 상태를 보고 ‘소금 대패’를 이용해 소금을 긁기 시작하는데, 오전 내내 봇물 터진 듯이 밀려오는 주문량에 맞춰 송화소금을 출하하느라 오늘은 채염 작업이 좀 늦었단다. 그래 봤자 1시간 남짓 늦어졌을까. 뜨내기 눈에는 물기가 살랑 살랑한 것이 마치 겨우내 꽁꽁 얼었던 얼음판이 봄을 맞아 유들유들하게 녹은 듯 보이는데, 작업하는 사람들은 어깨에 대패를 하나씩 둘러메고는 염판과 염판 사잇길인 계양둑을 따라 분주하게 움직인다.
(왼쪽) 마금리 염전을 빙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 덕분에 이곳의 송화소금은 맛과 질이 뛰어나다.
“물기가 없으면 소금 긁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에요. 그보다 바짝 말라서 물기 없이 판이 타버리면 소금도 새카맣게 타 짜기만 하고 맛이 없어요. 소금 농사를 망칠 수야 있나.”
염전을 마주하고 앉아 있으니 ‘솩솩’ 대패로 염판을 긁어 소금을 채취하는 소리가 마치 파도 소리만 같다. 하지만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니라 염전 일 중 가장 고되다고 염전꾼들은 입을 모은다. 물을 가르고 소금을 모아 산을 쌓는 작업을 하느라 손이 쉴 틈도 없다. 소금 긁는 요령이 있나 물으니 물을 달래가며 한단다. 물기가 있어야 소금이 잘 긁힌다는 말이다. 소금 긁는 모습을 보니 속상한 일이 있어도 마음을 쓸어내듯 대패로 소금을 긁다 보면 오만 가지 스트레스가 다 풀려버릴 성싶다.
“그러면 쓰나요? 그래도 여기다 스트레스를 풀면 안 되죠. 좋은 마음으로 정성을 들여야죠.”
소금을 다 긁으면 한 발 수레에 싣고 옮겨 염전 옆 창고에 쌓아두는데, 좁은 계양둑을 따라 흔들림 없이 오가는 모습이 신기할 따름이다. 소금 창고의 문턱을 보니 소금 가득 실은 수레를 이끌고 수없이 드나들던 지난 시간만큼 닳아 있다. 결정지 염판과 나무로 지은 소금 창고를 여러 번 오가며 소금을 날라 창고에 그득하게 쌓고 나면 간수를 빼는 작업은 자연스레 이루어진다. 마지막으로 지저분해진 염판을 정리하며 다음 날 작업을 준비하는 것으로 염전의 고된 하루도 끝이 난다.
소금 창고에 들어가보니 바닷내가 물씬 난다. 오늘 채염한 천일염을 송화소금과 거리를 두고 쌓아두었는데, 올해 유달리 찾는 이가 많아 6월 초까지 부지런히 채염한 송화소금이 다 녹아내린 빙벽마냥 보잘것없이 보인다. 물론 소금산이 줄어들수록 염전꾼들 속은 든든하단다.
“소금이 천장까지 가득 쌓일 때도 많죠. 주문량이 많아 소금산이 줄어들면 꼭꼭 눌러 담은 고봉밥을 한 숟가락씩 퍼먹는 기분이야.” 이곳의 송화소금을 미리 예약하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내년을 기약할 수밖에. 송화소금의 가치는 보름간의 축복이니 말이다.
시간을 두고 정성으로 기다리면 자연은 늘 우리에게 그만 한 보상을 한다. 그러다가 뜻밖의 선물을 받기도 하는데, 말하자면 송화소금이 그렇다. 서해안에 있는 염전 주위에는 대체로 소나무가 많은데, 오뉴월 딱 보름 동안 송홧가루를 흩뿌려 귀한 송화소금을 안겨준다. 송화소금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마금리 염전. 전남 신안의 태평 염전처럼 어마어마한 규모는 아니지만, 그 덕분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염전을 빙 둘러싸고 있어 양이나 질이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 송화소금의 최적지다.
소금밭 염전은 시간이 멈춘 듯 호젓하기만 하다. 푸른 기운도 없이 맹해 보이기만 하는데 물결도 없이 짜기만 한 바닷물이 이곳에서 새 숨을 얻으면 하얗게 소금이 된다. 해가 돕고 바람이 거들어 반나절이면 물속에서 소금꽃을 피워낸다. 꽃씨는 땅에 뿌리고 물을 주면 꽃을 피우지만, 소금꽃은 염전꾼들이 바닷물을 저수지에 채우고 최소한 일주일 정도 염판을 옮겨가며 물을 빼내야 제 모습을 드러낸다.
- 아름드리 소나무로 둘러싸인 마금리 염전의 천일염 금화 같은 송화소금의 다디단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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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은 해와 싸우고 바람과 손잡고 물을 달래가며 정성을 쏟아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귀한 존재다. 염전꾼이 염판에서 물을 가르며 소금을 모으다가도 하늘 보는 일이 잦은 이유다. 여기에 하나 더 정성을 쏟아야만 만들 수 있는 것이 바로 송화소금이다. 오뉴월에 딱 보름, 송홧가루가 날릴 때만 얻을 수 있는 귀한 소금으로, 천일염이 ‘소금의 꽃’이라면 송화소금은 ‘천일염의 금화’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