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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추럴 라이프]훗카이도의 블루베리 농장 '아리스팜' 산보 다녀오는 길에 블루베리를 딸 때 나는 행복하여라
그림 같은 포도 농장에서 폴과 빅토리아가 사랑을 나누던 영화 <구름 속의 산책>처럼, 정말이지 구름 속을 산책하는 것 같은 농장이 있다. 블루베리가 영그는 정원, 벽돌과 나무로 지은 집, 스웨덴의 민가를 본떠 만든 호텔, 자작나무 숲 속 캠핑장까지 소박한 풍경을 간직한 아리스 팜. 허브 요리 전문가 박현신 씨가 올 2월 그곳에 다녀왔다. 일본 원전 사고 때문에 그동안 기사를 싣지 못하다가, 이 아름다운 삶을 독자들과 꼭 나누고 싶은 마음에 조심스레 공개한다.


후지카도 씨가 찍은 아리스 팜 본부 사진. 20여 년 전에 직접 지은 벽돌집으로 아리스 팜 본부이며 두 사람의 살림집이다.

내게 아리스 팜은 참으로 의미가 깊다. 내가 시골 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용기와 희망을 준 곳이기 때문이다. 아리스 팜을 처음으로 안 것은 디자인하우스에서 1990년에 발간한 <땅의 노래 바람의 꿈>이란 책을 통해서였다.
아리스 팜의 주인장인 후지카도 씨가 쓴 책으로,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이상적인 전원의 공동체 생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나 역시 서울에서 나고 자라 전원생활에 대한 꿈만 있을 뿐 구체적 모델이 없었는데, 이 책 속에서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발견하고 마침내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또 시골 생활은 불편하고 힘들고 지저분하고 촌스럽고 비현실적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불편하지 않게 아름답게 살 수 있는 방법도 생각하게 됐다. 2005년 아리스 팜에 처음 들러 그곳의 매력에 빠진 나는 올 2월 아리스 팜을 다시 방문하는 기쁨을 또 한 번 맛보았다.

(왼쪽) 후지카도 씨가 제작한 셰이커 스타일의 부엌 가구는 너무 아름답다. 따로 또 같이 서로를 존중하며 30여 년이 넘게 가장 친한 친구로 살아온 두 사람.


(왼쪽) 셰이커 가구는 실용성이 첫 번째.
메이플 나무로 만들어 단단하고 가벼운 의자는 벽에 걸어두기도 한다.
(오른쪽) 우도 씨가 한 땀 한 땀 십자수를 놓아 만든 아리스 팜의 로고.


아리스 팜은 홋카이도의 그 유명한 오타루 시에서 50분쯤 떨어진 아카이가와 (赤井川) 마을에 있다. 블루베리를 키우는 농장으로, 그 안에서 수확한 블루베리로 잼이나 소스를 만드는 공방도 있고, 작은 호텔도 있는데다 그 옆에 캠프장도 딸린 곳이다. 열매가 맺히는 7~8월에는 농장을 개방해 블루베리 수확 체험을 할 수도 있다.

아리스 팜의 탄생 배경은 이렇다. 주인장인 후지카도 히로시 씨는 릿교 대학의 히말라야 원정대로, 그의 ‘파트너’(그냥 아내가 아니라 파트너)인 우도 마키코 씨는 도쿄 외국어대의 그룹으로 인도를 여행하던 중 우연히 뉴델리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이후에 유럽을 함께 여행하면서 의기투합해 시골 생활을 계획했다. 1974년에 귀국한 후 기후 현의 아리스에 터전을 마련하고, 그 지역명을 따 ‘아리스 팜’이란 이름을 붙였다.
지금은 블루베리만 키우는 농장이지만, 37년 전에는 ‘새와 가축 그리고 인간이 공존하면서 자급자족하는 공동체’라는 이상향을 꿈꾸며 가구 공방, 염직 공방,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 농장으로 시작했다. 그렇게 기후 현의 아리스 마을에서 10년을 보낸 후 홋카이도의 니키(仁木)로 이주해 ‘하츠오카(羊ヶ丘) 목장’을 열면서 연간 20만 명이 찾아오는 커다란 규모로 성장했다. 하지만 농장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애초에 꿈꾼 조용한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자, 1996년 그들은 미련없이 관광 시설을 전부 매각하고 아카이가와로 옮기면서 지금의 아리스 팜을 가꾸기 시작했다.

아리스 팜 본부 길 건너편에 있는 블루베리 농장. 블루베리 열매가 영그는 7~8월에는 주변 경관이 너무 아름다워 일반인에게 도 공개하고 있다. 이곳에서 블루베리를 수확하는 체험도 할 수 있다.

아리스 팜의 주인장 부부는 부부가 아니다! 영국계 일본인인 후지카도 씨는 정말 많은 취미를 가지고 있다. 세계 각지로 모험 여행을 다니는 모험가이고, 사진작가이며, 셰이커 가구 제작자이기도 하고, 야생 조류 관찰에도 일가견이 있어 마을 사람들과 아이들에게 야생 조류에 대해 가르치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그의 공방을 꽉 채운 낚시 도구, 등산용품, 스키용품 등과 두 사람이 30여 년간 집필한 책은 그들의 취미와 레저 생활을 짐작케 한다. <핸드메이드 하우스> <컨트리 퍼니처> <컨트리 키친> <셰이커로의 여행> <허브 레시피> <전원의 식탁> <세계의 강을 여행하다> 등 40여 권의 책을 펴낸 걸 보면 취미라기보다 프로페셔널에 훨씬 가깝다.

(왼쪽) 수십 권의 책을 저술한 후지카도 씨와 우도 씨는 각각의 서재를 가지고 있다. 1층에 있는 두 사람의 서재는 아주 큰 하나의 공간을 두 곳으로 나누었다. 각각의 문으로 들어갈 수도 있으면서 한 공간인 것이 특이하다.

우도 씨가 낸 요리책의 사진을 대부분 후지카도 씨가 촬영했을 정도로 그는 사진작가로서도 훌륭하다. 그의 영국 이름인 아서 후지카도 Arthur H.Fujikado의 이름을 따서 만든 ‘아서스 빙 Arthur’s being’이란 브랜드는 그의 라이프스타일을 콘셉트로 탄생한 아웃도어용품 브랜드다. 벽에 가득 걸린 모자와 작업복을 보면 그의 스타일을 한눈에 읽을 수 있는데, 잡지에 자주 소개될 정도로 멋진 것이 많고 그 스스로 브랜드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그의 파트너 우도 마키코 씨는 허브 연구가이자 요리 연구가이며 염색에도 일가견이 있다. 늘 장화를 신고 앞치마를 두른 채 농장 구석구석을 다니며 블루베리 농사와 머핀 만들기에 열심이다. 수십 권의 요리책도 냈다. 요즘 우도 씨는 전 세계의 나비에 관심이 많아 얼마 전 태국으로 나비 채집을 다녀왔다. 요즘 그가 가장 집중하는 일은 나비 표본을 만드는 것이다.

두 사람은 우리 생각에 부부인 것 같은데 서로를 ‘파트너’라고 부를 뿐 부부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1946년생인 후지카도 씨와 1950년생인 우도 씨는 35년을 사이좋게 살았고 슬하에 두 아들도 두었다. 아이들에게는 엄마, 아빠이지만 서로는 남편, 아내라는 호칭을 쓰지 않는다. 두 사람의 이름을 보니 법적으로는 부부가 아님이 틀림없다(일본식대로라면 우도 마키코가 아닌 후지카도 마키코가 되어야 한다).

2층의 후지카도 씨의 침실에 있는 가구는 모두 직접 만들었다. 최소한의 가구 그리고 늘 야생 조류를 관찰할 수 있는 큰 창이 있는 이 방은 블루베리 농장도 한눈에 볼 수 있다.

(왼쪽) 거실 한쪽에 놓인 찬장에는 우도 씨가 만든 블루베리 소스와 잼, 그 밖의 음료와 식초를 보관한다. 가구 위에 놓인 나무 인형 역시 후지카도 씨가 만들었다.
(오른쪽) 영국제의 붉은 스토브가 가구와 잘 어울린다. 나무 인형과 시계, 압화를 만드는 도구 곳곳에 후지카도 씨의 작품이 있다.


아이는 낳고 싶지만 결혼이라는 제도권으로 들어가 자신을 버리고 싶지 않다는 우도 씨의 생각을 적극 지지한 후 지카도 씨는 아이들 성 性도 우도 씨의 성을 따르게 했다. 그 당시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후지카도 씨는 1986년에 ‘베스트 파더상’을 받았을 정도로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훌륭한 아빠다(그는 그 상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해 공방에 액자로 만들어 걸어두었다). 아이들 이름도 재미있다. 두 아들은 훌륭하게 성장해 둘 다 의사가 되었다.

특이한 점은 이 두 파트너는 여행을 각자 다닌다는 것. 이유인즉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각자의 시간이 필요하고, 여행을 다니다보면 가고 싶은 곳이 각자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두 사람은 가장 간단한 복장에 배낭 하나만 메고 그야말로 혼자서 탐험을 한다. 법적으로만 부부가 아니지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결혼 생활을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도 씨의 사랑, 블루베리원
이 지역에 자리 잡은 초창기에 우도 씨는 여러 가지 작물을 재배해본 끝에 블루베리가 홋카이도에서 가장 적합한 작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만든 것이 ‘블루베리원’이다. 아리스 팜 본부의 반대편, 요테이 산을 멀리 바라보는 완만한 남쪽 경사면에 자리한 블루베리원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곳이다. 강이 흐르고, 봄에는 벚꽃이 피고, 초여름에는 밤나무 꽃이 피며, 가을에는 블루베리 단풍이 들어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2002년 여름부터는 농장의 일부를 개방하고 있다. 블루베리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 자식 같은 애착을 가진 우도 씨는 블루베리원에 온 힘을 쏟고 있는데, 흙 만들기부터 씨를 뿌려 모종을 만들고 심으며, 그 지역에 맞는 다양한 품종을 개발하는 일까지 하고 있다. 그런 노력 덕분에 1987년 자급용으로 400주 정도 재배하기 시작한 블루베리원이 지금은 10여가지 품종 3500주 규모의 가든으로 커졌다.

(왼쪽) 7월부터 수확하기 시작하는 블루베리는 농약도 필요 없고 단풍도 아름다워 아리스 팜의 주력 사업이 되었다.

블루베리원은 완전 무농약과 유기 재배를 원칙으로 하고 있어 여러 가지 힘든 점도 있지만, 그 원칙은 지금까지 잘 지키고 있다. 자연과의 ‘협조’를 잘 이루어 블루베리원 전체가 생물의 보호구역이 되는 것이 우도 씨의 목표다. 블루베리원을 굳이 큰 규모로 유지하는 이유도 무농약, 유기 재배의 블루베리원을 커다란 자연 공원으로 이미지화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도 씨의 블루베리 사랑은 정말 대단하다. 나 역시 2005년에 아리스 팜을 다녀온 후로 블루베리 마니아가 되어 어렵게 모종을 구해 매년 블루베리를 수확하는 즐거움을 맛 보고 있다.

오래되어 더 아름다운 꿈의 농장
이들의 살림집이자 아리스 팜의 본부 건물은 20여 년 전 붉은 벽돌과 나무로 지었는데,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변함없이 아름답고 깨끗하다. 1층에는 거실, 서재, 부엌이 있고, 지하에는 과자 공방과 서고, 창고가, 2층에는 침실이 있다. 그들이 특별히 ‘비밀의 장소’라며 보여준 다락방에는 앞으로 아이들에게 물려줄 셰이커 가구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이 집 말고도 작은 집 두 채가 더 있는데 한 채는 후지카도 씨의 어머니가 사는 집이고, 한 채는 스태프들의 사무실이다. 닭장같이 좁은 집이 많은 일본에서 이 정도 규모는 놀라운 수준이다.

이곳에 비치된 모든 가구는 후지카도 씨가 직접 만든 셰이커 스타일 가구인데 볼수록 참 아름답다. 6년 전에 봤을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빛을 발한다. 이제 후지카도 씨는 더 이상 셰이커 가구를 만들지 않고, 아리스 팜의 가구 공방에서 일하던 스태프가 모든 기계를 물려받아 교토에서 만들고 있다. 아무래도 후지카도 씨는 60세를 넘긴 후 일상의 일을 조금씩 정리하고 있는 듯하다.

붉은 벽난로가 아름다운 거실에는 두 사람의 가족인 푸들 두 마리도 늘 같이 지낸다. 푸들을 위해 볕이 따사로운 테라스에 공간을 따로 마련해둘 정도다. 의사로 성장한 아이들이 떠나간 큰 거실이 이제는 조금 쓸쓸해 보인다.

취재 때문에 다시 아리스 팜을 방문한 올 2월에는 눈이 너무 많이와서 2m가 넘는 눈을 트랙터로 치워 겨우 통로만 만들면서 들어갈 수 있었다. 홋카이도에서 이 정도 눈은 흔한 일이라 이곳에서 운영하고 있는 ‘드롬 Drom’ 호텔도 4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만 영업을 한다. 스웨덴어로 ‘꿈’이라는 뜻의 이 호텔은 아리스 팜 본부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2004년에 오픈했는데, 늘 예약이 찰 정도로 인기가 많기 때문에 블루베리가 한창 열리는 7~8월에는 일찍 예약하지 않으면 묵을 수 없다.

호텔이 들어선 곳은 메이지 시대에 최초의 금광산 본부가 있던 장소로, 후지카도 씨는 그 시대 사람들이 금에 걸었던 꿈의 역사를 이어받아 이 넓은 땅에 영원한 숲을 만들려는 꿈으로 이 호텔을 지었다. 사실 호텔이라기보다는 게스트하우스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 100만 평의 넓은 대지에 들어선 호텔은 스웨덴의 민가를 본떠 설계했는데, 북유럽 스타일 특유의 붉은색 건물이 자작나무 숲과 잘 어우러진다. 건물은 광산 자리에 있던 건물들을 해체하면서 나온 고재를 주로 사용해 지었고, 조명 등과 장식은 모두 북유럽에서 공수해 독특한 북구 전원 분위기를 자아낸다. 객실에는 하얗게 칠한 나무 벽, 높은 천장 그리고 숲을 바라볼 수 있는 격자창과 절제된 북구의 가구로 꾸며 소박하지만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나무 침대 위에는 살짝 풀 먹인 오리지널 면 파자마도 준비되어 있다. 객실은 모두 11개로 최대 40명이 머물 수 있는데 언제나 조용하다.

무엇보다 좋은 건 잔잔한 강물을 바라볼 수 있는 식당에서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아침 식사를 하는일이다. 아리스 팜에서 만든 머핀과 단맛을 줄인 블루베리 소스, 직접 키운 채소와 허브로 만든 샐러드, 도내에서 만든 소시지와 베이컨으로 느긋하게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다. 저녁 식사는 요리 연구가인 우도 씨가 직접 만드는데, 프렌치 이탤리언을 아리스 팜 스타일로 만든 부담 없는 풀코스 요리다. 이 음식에는 아리스 팜의 채소와 허브는 물론, 마을의 명인들이 재배한 최고 품질의 채소와 마을 안에서 사육한 돼지, 홋카이도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해산물 등 지역의 신선한 식재료를 이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오른쪽) 아리스 팜에서 생산하는 블루베리 잼과 소스 라즈베리, 카시스 잼과 소스 흑초다.

호텔 옆에는 자작나무 숲과 계곡을 따라 펼쳐진 잔디밭에 텐트를 칠 수 있는 캠핑장도 있다. 캠핑장에 깔끔한 취사장과 화장실도 만들어놓아 투숙객이 아니어도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다. 또 캠핑장 근처의 강 건너편에는 꽤 인기 좋은 낚시터가 있는데, 이곳에서 플라잉 낚시 교실도 열린다. 자동차가 없으면 쉽게 찾기 어려운게 단점이지만, 그렇기에 더 가치 있고 낚시와 산책 그리고 자연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이번에 아리스 팜을 방문했을 때 예전과 바뀐 것이 있다면 후지카도 씨의 가구 공방이 없어지고 대신 우도 씨의 머핀 공방이 생긴 것이다. 우도 씨가 홋카이도산 신선한 우유와 밀가루로 만드는 갖가지 머핀은 매일 도쿄의 백화점과 델리 숍으로 배송돼 소비자를 만난다. 우도 씨가 만든 머핀 중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개발한, 블루베리를 넣고 구운 주먹만 한 머핀이 특히 인기가 높다.
문의 www.arisfarm.com

 

취재 협조 일본자치체국제화협회(02-733-5681)

글 박현신 사진 이경옥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