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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실을 찾아서]아름다움을 탐구하는 지원 스님의 다실 보이지 않는 가치를 수집하는 못 말리는 동심
스님의 다실이라 해서 괜한 기대가 컸던가 보다. 충북 청원군 보련산 오솔길을 따라 찾은 태극 한국사. 대웅전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 있으니 기대감도 텅 비워지고 말았다. 그 옆에 자리한 조촐한 조립식 건물. 법당 건립을 준비하는 기간에는 그 건물이 법당이요, 처소요, 다실이다. 단출한 살림을 사는 지원 스님의 이름 없는 다실의 문을 열었다.

스님의 첫사랑, 조선백자 다완 사방 벽이 책들로 빼곡하게 숲을 이룬 다실. 책장의 책 앞에는 만화영화 주인공 아톰의 다양한 모습을 비롯해 못난이 인형, 철인 28호 등이 앉거니 서거니 하면서 어우러져 있다. 다실 바닥에는 한국식 차탁과 중국식 차탁이 놓여 있고, 차탁 주변엔 좀처럼 접하기 힘든 지장 紙欌들 그리고 20여 종의 차를 비롯한 다구들이 놓여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 다실 풍경과는 전혀 다른 다실, 이곳이 태극 한국사 주지인 지원 스님의 다실이다. 그의 다실은 다실이 아니면서 다실이고, 다실이면서 서재이며, 서재이면서 침실이다.

“우리 스님들은 자연스럽게 자기가 머무는 공간, 그중에서 신도를 접하는 곳을 다실이라고 말합니다. 다만 저는 이곳에 책을 조금 더 많이 두고 있으니 책을 보고 차를 마시면서 스스로를 안정시키는 좋은점이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차를 매개로 해 신도를 상대하고 함께하는 공간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전자공학을 전공하던 20대 중반의 청년이 부모님과 동행한 등산여행에서 교통사고를 만났고, 그때 관세음보살을 만독 萬讀 염불한 것을 인연으로 해 기적적으로 살아난 이가 있으니, 그이가 바로 지원 스님이다. 이러한 인연으로 부처님의 제자가 된 그는 1976년 속리산 법주사 회주 혜정 스님을 은사로 해 출가했다. 이제 그는 속가 나이로 치면 갑자 한 바퀴를 돈 세월이지만, 겉모습에서는 세월의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불가에 입문한 후 그는 차문화학과에 진학해 차 공부를 전문으로 하게 되었고, 최근 수료한 대학원 공부에서는 고려 다완을 연구했다. 청주불교방송 사장으로 재직하던 중에는 개국 7주년 기념 특별전으로 일본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 찻사발을 선보인 <500년 만의 귀환>(2004년) 그리고 땅속에서 출토된 다완 50점을 선보인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특별전 <땅으로 빚은 하늘>(2005년) 등 찻사발 관련 전시를 연달아 개최했고, 청주에 소재한 서원대학교에 차학과 신설을 지원하는 등 차와의 인연은 해를 거듭할수록 깊어졌다.


1 제자가 선물한 지원 스님의 캐릭터 인형과 아끼는 인형들.
2 다실의 서가 풍경. 불교와 차 관련 책, 도자기 관련 책, 인형들이 어우러져 있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다완 등과 같이 좀처럼 접하기 쉽지 않은 찻사발들을 세상의 눈들이 맛볼 수 있도록 하는 전시 기획에 참여한 주인공이지만, 정작 그가 소유한 다완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나마 그동안 연구하기 위해 수집한 몇 점이 있기는 하지만 이마저도 대개 깨진 것들이고, 좀 괜찮다 싶은 것은 먼 곳에 두고 마음으로 감상하는 중이라고 한다. 그는 조선백자 다완 하나를 들어서 보여주며 “한 15~16년 전쯤 인연이 되어 구입한 다완이지요. 약간 과장해 말하면 이 다완이 제게는 첫사랑이라.” 물론 모든 스님에게 첫사랑은 부처님일 것이므로 아무 말 없이 ‘첫사랑 다완’을 살펴보았다. 조선 중기 때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이 다완을 보니 안쪽 중심으로 남은 찻물이 고이는 ‘차 고임 자리’가 선명하게 있다. 지름도 약 13cm 정도여서 여성이 쥐기에도 맞춤하다. 질감이 따스하고 느낌도 편안해 극찬하는 스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1 구절초 꽃차를 덖는 모습. 구절초 꽃차는 몸을 뜨겁게 해주며 여성에게 특히 좋다.
2 그가 처음 구입한 조선백자 다완. 지금은 먼 곳에 있다.


3 지난여름에 따 냉동 보관한 연꽃으로 만든 차. 연꽃차는 피를 맑게 한다.
4 야외 다회 때 쓰려고 한 점 두 점 준비한 다구와 쑥차.


무생물도 사랑하는 스님의 큰마음 “지금은 다 쳐(치워)버렸지만….” 예전 지원 스님의 방에는 캐릭터 인형이 다양하게 갖춰져있었다. 특히 청주불교방송 사장으로 재직(2003~2008년)할 당시에는 사장실에 ‘아톰’캐릭터 달력을 벽에 붙여놓을 정도로 극성맞았다. 취재 전 스님께 수집품 협조를 부탁했더니 못난이 인형, 아톰 인형, 철인 28호 등을 즐비하게 늘어놓았다. 특히 아톰의 경우 아톰 슬리퍼, 아톰 가면, 애니메이션 비디오테이프 등 품목이 다양해서 자꾸 배시시 웃게 된다.

스님과 캐릭터 인형의 조합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어서 한때 스님을 찾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스님, 스님 방에 인형이 많네요.” “스님! 저게 뭐예요…?” 아마 그 말 줄임에는 ‘철없게시리’라는 말이 이어지고 있었을 터. 그러면 지원 스님은 사람들에게 “그래요, 저 철딱서니 없습니다”라고 대꾸했다고 한다.

지원 스님이 캐릭터 인형에 관심을 갖고 수집까지 하게 된 데는 여러 인연이 맞물려 있다. 고등학교 때 미술반 활동을 했을 정도로 아름다움에 관심이 많았고, 출가한 이후 전북 어느 사찰에서 주지로 살던 약 7년 동안 중국 둔황 석굴 등 동남아시아 유적에 그려진 벽화의 비천상 飛天像에 몰입돼 이를 캐릭터로 구현하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축구 대회가 개최될 때엔 비천상에 뿌리를 둔 축구단 캐릭터를 개발해 피파 본부에서 ‘자제해달라’는 경고성 공문을 받았을 정도로 국내에서의 반향이 높고 뜨거웠다.그러나 서울 인사동 상점에서 철인 28호를 산 뒤 가방에 넣어 다니면서 캐릭터를 연구하고, 아톰 생일에 일본 나고야에 다녀올 정도로 캐릭터 개발에 흠뻑 빠져 있지 않았다면 피파 본부에서 ‘옐로카드’를 받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캐릭터와 하나 되고, 캐릭터를 좋아하는 그 동심과 하나 되고, 캐릭터의 인기와 하나 되는 열정과 유치함이 아마도 그런 결과를 가져왔음은 말해 무엇하랴.

(왼쪽) 충북 청원군 보련산 중턱에 위치한 태극 한국사 법당 터에 선 지원 스님. 불사 중인 이 절의 이름은 그가 직접 지었다.

“아톰 같은 만화영화 캐릭터나 인터넷 사이트 캐릭터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캐릭터 하나에 무궁무진한 가치가 있어요. 황금 보물 창고입니다. 여담이지만 제가 출가하지 않았다면 캐릭터 개발을 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리고 지원 스님은 고백한다. 지금도 당신은 만화영화 <아톰>을 보면 ‘아! 나도 날고 싶다. 발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일어나는 걸 느낀다고. 스님의 투명하고 맑은 마음이 연꽃보다 곱다.

(왼쪽) 한동안 지원 스님과 동고동락한 철인 28호.

구절초 꽃차를 덖고 나누는 따스한 손 요즘 지원 스님의 관심은 차 도구에 있다. 그것은 아마도 다완 전시를 기획하고 주최하면서 받은 영향일 듯. 또 차 도구에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차 도구 박물관에 대한 소망도 자연스럽게 키우게 되었지 싶다. “차 도구 박물관을 대중과 소통하는 공간으로 만들어보고 싶어요. 혼자 있을 때 특히 자기를 조심하라는 뜻의 ‘신독 愼獨’이라는 말이 있지요. 차 문화는 바로 그런 인성, 자신을 살피고 성찰하는 좋은 품성의 바탕이 됩니다. 가정에서도 차는 평화를 심어주고 문화의 질을 업그레이드시키는 좋은 매개가 될 수 있습니다.”

태극 한국사를 찾은 날, 다실 앞에는 구절초 무리가 환하게 피어 있었다. 지원 스님에 따르면 취재 며칠 전 갑자기 찾아온 추위에 시들었던 구절초들이 오늘 다시 볕을 향해 고개를 내밀었다고 했다. 그는 꽃들을 향해 “얘들이 오늘 사진 찍히는 줄 알았는가 보네!”라고 하면서 구절초 꽃을 따서 가마솥에 불을 지피고, 꽃을 덖어서 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굳이 그렇게 실제처럼 하시지 않고 시늉만 하셔도 된다’고 만류했는데도 말이다. 때로 말보다 행동으로 하는 언어가 더 진한 파동으로 남는 그런 말씀이 있다.

지원 스님이 꼽은 좋은 다서 茶書 3
<다도 철학> 더러 남의 나라 정보를 모아 책으로 엮은 경우가 많은데 <다도 철학>은 그렇 지 않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차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만든 가장 한국적인 차 전문 서적 이다. 차 문화에 나타난 유가 사상, 불가 사상, 노장사상, 민간신앙 등 다도의 정신 자세와 마음가짐을 살펴보고 익힐 수 있을 것이다. 정영선 지음, 너럭바위, 1만 2천 원.
<중국의 차 문화 다경 茶經> 어떤 분야든 고전을 많이 읽는 것은 좋다. 차 관련서 중에서 꼭 읽어야 할 책이 있다면 중국 차학 茶의 대표적 고전인 육우 陸羽의 <다경 茶經>을 첫 손에 꼽을 것이다. 차나무, 차, 다구, 효능, 고사 등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으며 올바른 차 정신의 구현을 추구한다. 중국에서 유학한 저자가 한국적이고 깊이 있는 시각으로 해 석해 소개한 점이 돋보인다. 김진숙 지음, 국학자료원, 2만 2천 원.
<보이차의 매혹> 개인적으로 요즘엔 중국을 모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도자기, 불교, 차 등 우리 문화 대부분이 거의 중국에서 전래된 것이기에 그렇다. 물론 우리 문화가 중국으 로 건너갔다는 주장도 있지만. 특히 요즘 한국 사회에 중국차 열풍이 불고 있으므로 잘 알 고 마시는 차원에서라도 필독하길 권한다. 신정현 지음, 이른아침, 1만8천 원.
글 김선래 사진 박찬우 어시스턴트 박찬웅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