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뉴욕에서 활동하는 화가 김정향 씨의 창고 스튜디오 전경. 포도밭 옆에 딸린 곡식 창고를 개조해서 만들었다.
2 창밖으로 스튜디오가 보이는 패티오(마루방).
<뉴욕 타임스>의 한 미술 평론가는 김정향 씨의 그림에 대해 “…연못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그려내는 파문들, 아침 안개를 뚫고 비치는 햇빛 같은 자연의 요소들, 작가가 겪어낸 순간들이 감각과 기억으로 걸러져서 화면을 채우고 있다”고 말한다.
맞다, 자연이다. 평론가의 예리한 눈이 아니어도 김정향 씨의 작품을 마주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는 것은 그 속에 담긴 자연 때문이다. 보통 사람으로는 쉽사리 이해할 수 없다는 추상화인데도 뭔가 알 것 같은 낯익은 장면이 그림 속에 들어 있다. 알고 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김정향 씨 작품에서 느껴지는 자연은 멀리 바라보며 감상해서 그려 넣은 자연이 아니고, 스스로 맨손으로 맨땅에 일군 바로 그 자연이기 때문이다.
뉴욕에서조차 <뉴욕 타임스>에 평이 실린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 같이 어려운 일이다. ‘If I can make it there I’ll make it anywhere, It’s up to you, New York, New York’의 바로 그 뉴욕이다. 뉴욕에서 견뎌내면 어디를 가도 자신이 있다는 거다. 김정향 씨의 그림을 처음 접한 곳은 바로 이 뉴욕, 맨해튼에서였다. 한 5년쯤 전, 첼시 지역에 자리한 어느 아트 재단에서 운영하는 그녀의 스튜디오에서였다. 한 건물 속에 심사를 거쳐 선발한 수십 명의 아티스트가 방 한 칸씩의 작업실을 갖고 있는 곳이다. 오픈 스튜디오 날, 나는 안면이 있던 그녀의 작품을 보러 갔다.
골동품처럼 낡은 까만색 철제 플랫파일 flat file이 공간을 반쯤이나 차지한 작은 방. 벽에 붙은 김정향 씨의 그림을 쓱 둘러보면서 “아, 참 좋네요”라는 말밖에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는, 그런 끌림을 받았다. 무리함이 없는 색이었을까, 둥그런 무늬였을까? 크고 작은 원과 곡선들이 짙거나 연한 색 배경 속에 어우러져서 그대로 보기에 좋았다. 김정향 씨가 플랫파일을 열어 서랍마다 꽉 차 있는 그림들을 한 장씩 들추며 보여줄 때는 나도 모르게 “어머, 이거 좋다” “이것도 좋네…”를 연발했다. 그 후부터 김정향 씨와 한발 더 가까워졌다.
나는 김정향 씨의 그림을 도시 속에서 해석했다. 그때 내가 알고 있던 김정향 씨는 웨스트사이드 24번가 좁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색이 흐르는 듯한 바탕 위에 둥둥 떠 있는 형상들이 마치 밤하늘 불꽃놀이의 한 장면 같기도 했고, 아니면 잠든 도시의 고층 건물 불빛 같기도 했고, 또 허드슨 강변의 레스토랑 등불이 강물에 비쳐 어른거리는 것도 같았다.
얼마 전, 김정향 씨가 뉴욕 북쪽의 시골로 스튜디오를 옮겼다고 했다. 어떤 곳인지 보고 싶어서 먼 길을 찾아 나섰다. 맨해튼을 등지고 허드슨 강의 물줄기를 거슬러 강변 동네를 따라 한참을 달렸다. 옥수수밭이 끝없이 이어지는 저먼 타운 German Town의 벌판길을 구불구불 지나 도착한 김정향 씨 집은, 그녀가 길 앞까지 나와 손을 흔들지 않았으면 그냥 지나칠 뻔했다. 작고 허름한 집이 무성한 수풀 뒤에 감추어져 있었다. 길 건너편의 나지막한 언덕에는 버펄로가 슬슬 거닐고 있었다.
맨해튼의 아파트에서 딸 지현(왼쪽)과 김정향 씨, 사진가인 남편 켄 셩과 함께.
맨해튼 교통국(MTA)의 ‘Arts for Transit’ 수상으로 브루클린 지하철역에 작품이 설치될 정도로 뉴욕에서 성공한 중년 화가이니, 이제는 목가적인 전원에 주말 별장쯤 장만하는 것은 당연하다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이곳은 너무 시골이다 싶었다.
현관문을 열고 뒤편 정원이 곧바로 내다보이는 작은 실내 한가운데에 불쑥 들어섰다. 방과 방 사이를 가른 벽에 각각 다른 색의 페인트가 붓 자국이 드러나게 칠해져 있었다. “제가 칠했어요.” 아하, 어쩐지…! 보이는 곳곳마다 손때가 묻은 정겨운 살림살이에 연륜이 배어 있다. 확 고친 구석도 없다. “언제 이 집에 이사 오셨어요?” 물으니 “한 20년 됐어요” 한다. “네에?” 놀랐다. 그러나 진짜 놀람은 그다음이었다. 현관이자 다이닝 룸인 방을 지나 응접실을 거쳐 뒷문을 열고 나가자 눈앞에 대자연이 펼쳐지는 게 아닌가.
한없이 넓은 들판과 무성한 나무 그리고 저쪽으로 호수가 보이고, 이쪽엔 초록색의 커다란 창고가 눈에 들어왔다. 시골 길을 지나치다 흔히 볼 법한 그런 창고가 아니라 바로 미국 현대미술의 대명사인 잭슨 폴록이 예술과 사랑을 담아내던 그 유명한 시골의 창고 스튜디오, 바로 그 모습이었다. 김정향 씨는 “저곳이 내 스튜디오예요” 한다.
서울 미대를 나온 김정향 씨는 역시 미술학도인 남편과 함께 뉴욕의 프랫 미술대학 대학원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처음 얼마 동안은 부부가 하루 종일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으레 아내는 밥하고 설거지하고, 남편은 TV를 보는 그런 생활을 했단다. 그러다 아내가 남편에게 “우리 반반씩 나눠서 밥하자”고 제안했더니 남편은 싫다고 했다. “그럼, 우리 매일 나가서 사 먹을까?” 물으니 남편이 그러자고 했단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정향 씨는 이혼을 했고, 그 후 10년 동안 홀로 어려운 이국 생활을 했다.
김정향 씨의 작품 ‘Night Bloom-Full Moon’
한국의 부모님은 혼자 사는 딸이 걱정돼 미국 사람이라도 좋으니 제발 결혼하라고 성화를 하셨고, 그 무렵 사진작가인 중국인 2세 켄 셩 Ken Shung(황택림)을 만났다. 김정향 씨는 “나랑 결혼할 마음이 있으면 빨리 말해달라. 그렇지 않으면 한국으로 아주 돌아간다”고 했는데 그것은 거짓 협박이 아니었다. 정말로 ‘다 때려치우고’ 한국으로 돌아갈 심산이었는데 켄이 한국에 가서 김정향 씨의 부모님을 만났다. 둘은 뉴욕에서 결혼식을 올린 후 보금자리를 찾다가-집값이 싼 브루클린도 생각했지만-우연과 필연을 따라 정착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넓은 포도밭이 딸린 3.5에이커(4천 평)의 대지 한구석에 있는, 집보다는 허물어져가는 곡식 창고에 마음이 끌렸다고. ‘저 창고를 고쳐서 스튜디오를 꾸며야겠다’ 고 마음먹은 이 두 젊은 예술가가 꿈을 안고 이곳에서 시작한 일은 뙤약볕 아래에서 포도나무 가지를 치고 묶으며 경작하고 포도를 따서 파는 일이었다. 그러고는 광활한 대지에 한 그루씩 김정향 씨가 좋아하는 나무를 심었다. 살면서 집도 조금씩 고쳐가며 2년 후에는 딸을 낳았다. 한밤중에 아이가 아플 때는 너무 놀라 약을 찾지 못하고 이웃집에 도움을 청해 약을 받아 오기도 했단다. 그렇게 한동안 시골 인심 속에서 땅을 파며 시골 사람으로 살았다. 포도 수확 철에는 맨해튼의 친구들이 몰려와 먹고, 마시고, 놀고, 스튜디오 바닥에 텐트 치고 자면서 도와주기도 했다.
그러던 남편에게 일거리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딸아이가 커갈수록 교육도 문제가 돼 다시 맨해튼에 거처를 마련하게 됐다. 저먼 타운의 집은 주말 별장쯤 되었다가, 아니 주말만이 아닌 많은 시간을 이곳에 와서 머물면서 그 넓은 땅을 조금씩 가꿔나갔다.
1, 2 자연 속에서 자연을 가꾸며 자연을 그리는 김정향 씨의 스튜디오.
워낙 포도밭 이외엔 아무것도 없는 벌판이다 보니 마치 빈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듯 김정향 씨 마음대로 정원을 꾸밀 수 있었다고. 처음 2~3년은 섣불리 여기저기 나무를 심지 않고 스스로 돋아나는 풀과 덤불을 살펴보기만 했다. 잡초 중에서 살릴 만한 것을 찾아내 다른 장소에 옮겨 심으면 그곳에 뿌리를 내려 다음 해에 옆으로 퍼져나가 예쁜 정원이 되는 식이었다. 이렇게 자생하는 식물을 기본으로 대지 중간에 꽃 정원을 만들고, 길 쪽으로는 크게 자라는 나무들을 심었다. 큰 나무를 사다 심을 만큼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던 탓에 어린 버드나무를 사다 심고, 상록수와 낙엽수를 한 그루씩 심었다. 조감도도 없이 오로지 예술가의 감각으로 심었을 뿐. 심은 자리가 맘에 안 드는 나무는 다시 파서 옮겨심기도 하며 조경에 온 정열을 바쳤다.
그러나 자연은 김정향 씨 마음대는 되지 않았다. 해도 해도 끝없고, 결국 포도 농사는 힘에 부쳐 포기했다. 집 안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면 마당에 할 일이 눈에 보여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스튜디오를 꾸미기는 했어도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자연을 만들기 위해 자연과 싸움을 했다. 열심히 했건만 결과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나무들이 잘 자라지 않고 죽기도 하고, 동물들이 잘라 먹기도 했다. 큰맘 먹고 판 연못은 바로 이듬해 가뭄으로 바닥까지 말라붙은 흉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도시와 시골을 오가며 세월이 흘러갔다.
“제가… 참 흔한 말이지만, 바로 자연에서 인생을 배웠어요.”
3 작품의 색과 어울리도록 칠한 리빙 룸. 남편 켄은 기타를 취미로 즐긴다.
4 가족의 추억이 담긴 사진으로 장식한 2층 침실로 올라가는 계단.
자연은 오래 걸려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지천명 知天命의 나이가 돼서 깨달았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별나다’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매사에 남다른 편이던 김정향 씨는 하고 싶은 일은 꼭 해내고야 마는 고집 센 여자아이였다. 성적이 모자라니 안 된다는 선생님과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이화여중에 시험을 치렀고, 갑자기 목이 아파 체력장에서 꼴지를 했건만 합격했다. 그 후로 열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내면서 목적을 향해 뛰는 삶을 살아왔다. 자아가 강해 전통적인 한국 여성상의 자리는 일찌감치 차버린 용감함 이면에는 아이를 돌보고 가정을 가꾸려는 모성 본능이 강했다. 사는 틈틈이 ‘나는 왜 이렇게 결과가 없는 것일까? 왜 나는 인기 작가가 못 되는 것일까?’ 낙망도 하고 초조함도 느꼈지만, 결국은 모든 일에는 세월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연’에서 터득했다고 한다.
어느 날부터인가 볼품없던 수양버들이 훌쩍 자라 넓은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다. 봄부터 늦가을까지 피고 지는 수많은 꽃과 우거진 수풀,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풍겨오는 꽃향기 속에서 차를 마시며 책을 읽는 작은 정원…. 드디어 인생을 즐길 차례가 온 것이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맨해튼의 스튜디오를 닫고, 태초의 꿈인 대자연의 넓은 스튜디오로 돌아와 이제는 순리에 맞서지 않는다는 김정향 씨. 무엇보다 스튜디오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좋다고 했다. <뉴욕 타임스>에 평론이 실린 거며 지난해 파리 전시에서 우연히 지나가다 그림을 보고 들어왔다는 사람에게 커다란 작품을 두 점이나 판 것 등 그동안 쌓아온 고뇌와 노력이 이제야 하나씩 결실을 보는 것 같았다. 2층짜리 스튜디오 속엔 현재 작업하고 있는 작품뿐 아니라 과거에 끼적거린 스케치까지, 작가가 걸어온 지난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드로잉들이 들어 있는 여러 개의 플랫파일 캐비닛이 이 거대한 공간 속에서는 자그마해 보인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걸린 물감을 아무렇게나 자유자재로 막 뿌려댄 듯한 잭슨 폴록의 작품 제목이 ‘가을의 리듬 Autumn Rhythem’이다. 그냥 보면 난해한 그림이지만, 타이틀을 알고 보면 마른 나뭇가지가 흩어진, 누렇게 빛바랜 들판 분위기가 느껴진다. 잭슨 폴록과 부인 리 크래스너 Lee Krasner가 맨해튼에서 결혼한 지 2주 만에 옮겨와 살기 시작했다는 롱아일랜드 이스트햄프턴 바닷가 시골 길에 있는 집과 창고 스튜디오는 지금 박물관이 되었다.
1 오랜만에 근처에 사는 친구들을 불러 가든파티를 열었다. 왼쪽부터 김정향 씨, 스콧 개런(디자이너), 로라 배틀(화가, 교수), 크리스 캔들(사진작가), 조지 데이비스(의사), 멜로라 쿤(화가), 켄 셩.
2 시골 동네의 딸 친구들을 태우고 트랙터를 운전하는 켄.
김정향 씨의 그림 속에는 안개가 서린 들판과 풀잎 사이의 이슬 맺힌 거미줄도 보인다. 민들레 홀씨가 공중을 날고 있고, 퀸 앤스 레이스 Queen Ann’s Lace가 활짝 피어 있다. 어쩌다 문득 길가 풀숲의 작은 꽃들을 바라보며 “참 예쁘구나” 했던 그런 이름 없는 꽃들이 그림 속에 숨어서 피어 있다. 가만히 있으면 연못에 떨어지는 빗소리도 들릴 것만 같다. 작가의 마음속에 겹겹이 가라앉은 자연의 모습들이 밤하늘에 어른거리는 불빛처럼, 물 위에 흔들리는 등불처럼 떠올랐다 해도 가히 틀린 말은 아니다.
김정향 씨가 땅을 파고, 나무를 심고,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이 요리를 맡아준 덕도 크다. 매사에 안달하며 뛰는 김정향 씨에게 동조하지 않고 항상 묵직이 제자리를 잡아준 남편에게도 인생을 터득하게 해준 고마운 마음을 품고 있다. 다른 대학은 절대로 안 가고 오로지 뉴욕 유니버시티(NYU)에서 필름을 전공하겠다더니 결국 NYU 영화과에 특차로 들어간 딸 지현(Taylor Shung)이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
식물도감을 보지 않아도 온갖 잡풀까지 이름을 꿰고 있는 김정향 씨와 함께 먹을 수 있는 풀 이파리를 따며 인생 이야기를 하며, 포도밭으로 걸어가니 짙은 초록의 포도송이가 송이송이 매달려 있다. “올해 비가 없어서 포도가 잘되네요. 포도 딸 때 또 오세요”라며 언젠가는 이탈리아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포도밭에 긴 테이블을 놓고 친구들을 불러 가든파티를 여는 것이 김정향 씨의 또 다른 꿈이라고 한다.
한여름 정취에 젖을 모히토 mojito 칵테일을 만들어보겠다는 나에게 집 앞에 무성히 자라고 있는 박하나무 몇 그루를 익숙한 솜씨로 쑥 뽑아주는 그녀에게서 자연의 섭리를 나눠 받은 것만 같았다.
하루 종일 차 한 대 지나가지 않는 날도 있다는 적막한 이곳에 인터넷도 없이 혼자 남는 김정향 씨를 뒤로하고 돌아서는 길, 차 안에 가득한 박하 향에 먼저 취한다. 인생의 향기는 자연의 신비로움을 깨우치면서 피어나는 것인가? 고속도로를 따라 빽빽하게 늘어선 나무와 흐드러진 잡초들이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3 샐러드와 포크찹, 로제 와인을 곁들인 한여름 가든파티.
4 한 그루 한 그루 심은 묘목들이 거목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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