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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째 전통 약주 빚는 덕산양조장 아름다운 술 한 잔이 선약 같아서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면 용몽리에 가면 물씬한 누룩 내와 빗소리 내며 술 익는 소리가 동네 어귀부터 가득하다. 술꾼들에겐 이미 소문 짜한 ‘덕산약주’로 유명한 덕산양조장. 그곳엔 3대를 잇는 술도가 사람들의 이야기가 누룩균처럼 피어 오르고 있다.


1 멥쌀을 불려 증기로 찐 고두밥. 술의 밑밥이 되는 주재료다.
2 천연 암반수에 국내산 천마, 자양강장의 효능이 있는 18가지 한약재를 넣어 만든 ‘천마활보주’.
3, 4 1930년에 지은 덕산양조장 건물은 문화재청으로부터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일본 건축가가 서양식 구조로 지은 목조 건물이다. 건물 앞 측백나무에서 날아든 송진이 참나무로 된 외벽에 들러붙어 천연 방부제 역할을 한다고 한다. 지금은 ‘세왕주조’로 회사명을 바꿨지만, 술맛 아는 사람들이나 이 동네 사람들에겐 ‘덕산양조장’으로 더 유명하다.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들어간다 했던가? 모든 걸 다 알고 산 것처럼 뻐기지만 나이 들어 죽기 전에 알게 되는 진실은 이것뿐이라고 한다. 단술이 익어가고 누군가의 마음을 매만지고 싶은 계절.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면 용몽리의, 80년도 더 된 술도가 ‘덕산양조장’으로 가는 길이다. 마침 엊그제 오신 흰 눈이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누런 양은 주전자를 빙빙 돌리면서 할아버지 막걸리 심부름 가던 그 눈밭길 말이다. 검고 무뚝뚝하게 생긴 참나무 건물로 들어서자 ‘출납구’라고 쓰인 유리창이 불쑥 나타난다. 그 출납구 뒤편 사무실에서 3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가업을 잇는 이규행 씨가 붉게 웃으며 객을 맞이한다. 그럴밖에, 이곳이 술도가 아닌가. 다 시든 얼굴도 소년처럼 붉게 한다는.

이 곳은 ‘덕산양조장’이라는 옛 이름 대신 기업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세왕주조(043-536-3567)’로 이름을 바꾼 지 몇 해 됐다(하지만 술맛 아는 이들은 세왕주조 대신 덕산양조장을 더 친숙하게 부르고 있다). 허영만 선생의 만화 <식객> 중 ‘할아버지의 금고’ 편에 나오는 그 ‘대왕주조’가 바로 이 ‘세왕주조’ 이야기고,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에서 장봉(임선택 분)이 운영하는 양조장이 바로 ‘덕산양조장’이라 한다. 술꾼들에겐 이미 소문 짜한 ‘덕산약주’도 이 술도가에서 빚어진다.

“70년대에 대통령이 직접 모심기하던 대한뉴스 아셔유? 거그 나오는 디가 여기 진천인디, 박정희 대통령이 충청도만 오시면 경호원더러 금방 내린 술을 받아 가게 하셨대유. 작가 선상님도 한 잔 잡숴봐. 술 맛이 문화재급 아닌가유?” 요즘 젊은 사람치곤 사투리가 센 술도가 주인은 가업을 이은 이의 묵직한 자부심을 드러낸다. 덕산양조장은 1929년, 이장범 씨가 문을 연 이래 2대 이재철 씨에 이어 현재 손자 이규행 씨가 전통주를 만들고 있다. 처음엔 막걸리와 약주를 빚다가 1961년부터 이재철 씨가 약주 전문 술도가로 변신시켰고, 3대에 이르면서 20여 가지 약주와 막걸리를 만들어내고 있다(약주는 금주령이 수시로 내렸던 조선시대에 생겨난 술이다. 약으로 먹는 술이라고 해서 약재를 섞은 술은 통용이 됐기 때문이다. 1차 발효가 진행되어 하얗고 걸죽해진 술을 막 거르면 막걸리요, 모두 가라앉히고 위에 뜨는 맑은 것을 걸러낸 것이 청주인데, 이것에 약재를 섞어서 약주를 만든다). 특히 파스퇴르가 개발한 저온살균법으로 만드는 ‘덕산약주’는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술 마시고 골 때리면 진짜 약주가 아니쥬. 술 맹그는 사람이 정직하게 만들지 않아서가 아니겄슈? IMF 때도 덕산약주가 우릴 살렸슈.”


5 3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가업을 잇고 있는 덕산양조장 이규행 대표.
6 몇십 년의 연륜을 쌓은 표창장들이 사무실 벽을 메우고 있다.

문화재가 된 술도가
측백나무로 둘러싸인 덕산양조장은 그 건물만으로도 기념해야 할 곳이다. 1930년에 지은 서양식 단층 목조 건물은 문화재청으로부터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재 제58호)으로 지정되었다. 그 옛날 백두산의 전나무, 삼나무를 압록강변에서 제재해 건물 기초를 쌓고, 옻칠한 참나무로 외벽을 둘렀다. 실내 벽은 대나무와 칡넝쿨로 뼈대를 엮어 세우고 짚과 황토를 차지게 으깨어 속을 채웠는데 이 역시도 80년 가까운 시간을 살았다. 무엇보다 주모실 환기구의 배기 통로는 과학적인 구조로 칭송받는데 효모를 발효시키는 주모실의 탁한 공기가 쉽게 밖으로 배출되도록 만든 것이라 한다. 발효실과 주모실의 옹벽은 두께만 90cm이고, 이 벽 사이엔 왕겨가 가득 차 있다(다른 벽에 짚과 황토가 채워진 대신). 천장 위에도 여든 살 가까운 나이를 먹은 왕겨가 쌓여 있다. 이 왕겨는 발효실 온도를 27℃로 일정하게 유지시킨다고 한다. “부친이 6·25 때 천장 위 왕겨 속에 숨어 살아남았대유. 전쟁통에 국군이 후퇴하면서 공장이 적진으로 쓰인다고 불태워번질라 했는디, 할아버지가 소 한 마리, 장작 두 차 허고 45원 줘서 건졌대유.” 사무실 벽을 파고 만든 금고는 일제 강점기에 만든 3중 금고라는데, 이장범 옹이 선거 참모로 일하던 해공 신익희 선생의 선거 벽보며 유품이 가득하다고 한다(안타까운 건 열쇠가 없단다). 이 금고는 <식객>의 ‘할아버지의 금고’ 편에 나오는 그 금고이기도 하다. 회벽에 들러붙은 국균(발효균)처럼 이곳은 시간의 더께로 가득 차 있다. 낡아도 좋은 건 사랑만이 아니듯 누르스름한 역사가 얹힌 덕산양조장.


1 효모를 독 안에 넣어 발효시키는 주모실 입구. 현판에서 역사가 그대로 느껴진다.
2 증기로 쩌낸 고두밥을 식히는 과정.
3 천장 위에는 여든 살 가까운 나이를 먹은 왕겨가 수북이 쌓여 있다. 날씨와 상관없이 발효실 온도를 27℃로 유지시켜 주는 일등공신이다.
4 술이 발효되는 발효실 안에는 80년 가까이 된 독 안에서 술이 익고 있다. 독 한 귀퉁이엔 ‘1935 용몽제’란 글씨가 선명하게 찍혀 있다.
5 ‘용수를 박는’ 과정이다. 대나무 채로 술을 거르는데 막 거르면 막걸리요, 가라앉히고 위에 뜨는 맑은 술이 청주요, 이것에 약재를 섞어 만드는 술이 약주다.
6 덕산양조장의 창업주인 고 이장범 옹.
7 열사흘 정도 되면 거품을 일으키며 술이 익는다.

술 빚는 건축가
“서울대 수의학과 나온 부친이 할아버지 뜻을 이어 양조장을 맡았지유. 그러믄서 수의사 일도 놓지는 않으셨쥬. 아부지가 나이를 잡수면서 처음엔 형이 물려받았다가, 동생이 물려받았다가 저까지 오게 된 거유. 십 년 훌쩍 넘었네유.” 이규행 씨는 건축학과를 나와 서울의 화신건축연구소(건축 풍수 이론으로 유명한 건축가 박시익이 이끌던 건축 회사)에서 건축 설계사로 일했고, 그 후로 자신의 건축 사무소를 운영하기도 했다. 가업도 가업이지만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귀향을 선택한 그는 기울어져가던 술도가를 떠안았다. “아부지는 큰 기술만 숙제로 내주셨지유. 직원 중에 ‘살짝 바보’ 아저씨가 있었는데, 그이한테 밥 짓는 법부터 다 배웠지유. 왜 있쥬, 포레스트 검프처럼 정직하고 정확해야 하는 살짝 바보 있잖유. 그 아저씨가 처음부터 아주 바짝 가르쳤시유. 조금만 틀려도 천지개벽 할 것처럼 화내고 혼내믄서. 기술은 그렇게 무식하게 바보 아저씨에게 열심히 배우고 나중에 책 보면서 원리를 깨우쳤지유.”

그렇게 정직하게 배운 술 빚기는 ‘덕산약주’의 명맥을 오늘에까지 잇게 하고 있다. 술을 팔아 얻은 수익은 다시 새 제품을 만들기 위한 개발에 쏟았다. 새 약주를 만들기 위해 쓰디쓴 생약재를 씹어가며 원료의 성질, 발효 방법을 연구했다. 그렇게 해서 그는 흑미만으로 ‘흑미와인’을 만들어냈고, 열두 가지 한약재를 발효시켜 ‘천년주’를 개발했다. 또 22.8도짜리 약주를 최초로 개발하기도 했다(원래 술을 자연 발효시켜 알코올로 만들어낼 수 있는 한계를 알코올 도수 20도 정도로 본다). “왜 그런 말 있쥬, 세상 풍파를 겪은 사람이 인생에 대해 안다는 말. 발효균도 어려운 환경에 둬서 훈련시키면 도태될 눔은 도태되고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미생물들이 술을 만들어내유.” 이 혹독한 환경을 견딘 균들을 배양하면 높은 도수의 술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22.8도짜리 약주는 비용 등의 문제로 아직은 시판하지 못하고 있다. 모든 요리가 그렇듯 술 빚기에서도 재료가 가장 중요한 법인데, 덕산양조장에서는 우리 쌀과 흑미를, 물은 150m 암반수를 사용한다. 술을 익히는 항아리도 용몽리에서 만든 70년이 넘은 것들이다. 항아리에 “1935 용몽제”란 글자가 찍혀 있다.


8 술의 알코올 도수를 재는 도구.
9 쪄낸 밑밥에 종국균(발효균)을 넣기 위해 골을 내는 과정이다.
10 할아버지 이장범 옹이 남긴 금고.

술과 사람은 오래될수록 좋다고 하지 않았나. 외벽에 붙은 송진처럼, 80년을 버텨온 서까래처럼 덕산양조장은 오래 살아남았다. “약주는 말 그대로 약이 되는 술이잖어유. 정말 약주를 만들고 싶어유. 그리고 우리 집안 3대가 이어온 영광스런 일이니께 건물허고 전통주 잘 보전해서 물려줘야쥬. 하지만 자식에게 물려주진 않을 거유. 자유경쟁시대에 맥을 이어가려면 친자식이 아니라도 누가 잘 지켜나갈지 보고 그담에 물려 줄거유.” 질펀한 사투리와 누룩 익는 냄새에 혼곤히 젖어드는 술도가에 앉아 어느덧 조선시대 문인 이규보가 지은 아름다운 시를 떠올렸다. “아름다운 술 한 잔이 마치 선약 같아서 / 다 시든 얼굴도 소년처럼 붉게 하네 / 신풍을 향하여 늘 곤드레 취한다면/ 인간세계 그 어느 날이 신선 아니랴.”

최혜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