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리허설을 마친 백윤학 지휘자는 지휘봉을 집어든 순간 촬영장을 공연 무대로 바꾸어 놓았다.
미국의 정치 철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는 프레임 이론에 관한 책이다. 프레임이라는 단어 때문에 짐짓 거창해 보일 수 있지만 요지는 간단하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말을 듣는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머릿속에는 코끼리 이미지가 떠오른다는 내용이다. 생각하지 말라는 명령어가 도리어 부정하고자 하는 심상을 더욱 확대한다.
수십 년 음악을 하고 단상에 올라 지휘봉을 휘두르던 백윤학 지휘자. 그가 소속된 서울 페스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유튜브 채널에 올린, 지휘하는 그의 모습이 담긴 한 영상이 백만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을 때 그에게 ‘춤추는 지휘자’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단어 때문이었을까? 해사한 미소를 띠다가 장엄한 표정으로 변하는 그의 얼굴이나, 허공에 팔을 크게 휘젓다가 양손을 좌우로 흔드는 모습을 세간에서 춤처럼 보기 시작했다. 춤추는 지휘자라는 표현이 그의 지휘를 춤동작처럼 보게 만든 것이다.

“엄밀히 표현하면 제가 하는 건 연주이지 춤이 아니에요. 실제로 춤추는 분들이 보면 춤이 아니라는 걸 단번에 아실 거예요. 공연장에 온 관람객도 그 차이를 잘 알아보세요. 제 몸짓이 코릴레이션co-relation(음악과 지휘가 함께 가는 현상)이 맞다는 사실을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 표현이 싫은 것도 아니에요. 춤추는 지휘자라는 말 때문에 공연장을 찾아주는 관객이 정말 많아졌거든요. 그러니 뭐라고 불려도 좋아요. 음악을 통해 보다 많은 관객을 마주할 수 있다면 말이죠.”
백윤학, 그는 어릴 적 사촌 누나의 피아노 레슨을 통해 음악을 만났다. 무언가 하나를 시작하면 꾸준히 하던 그는 초등학교부터 중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건반과 밀착해 생활했다. “계속 피아노를 치고 싶었지만, 부모님이 공부에 집중할 때라고 말씀하셨어요. 장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저는 시키는 걸 잘하는 편이었어요.” 건반을 두드리던 손가락은 교과서와 노트 위로 향했다. 하라는 건 밀리지 않고 성실히 하던 성격 덕에 서울과학고 재학 시절, 고2 때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은상을 수상할 정도의 수재였다. 이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기공학부에 진학한 그는 음대 수업을 기웃거리며 합창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동아리 합창단 지휘를 맡았다.
158그가 생애 첫 지휘봉을 휘두른 건 포레의 ‘레퀴엠’. “감수성이 풍부한 편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여러 사람이 한 공간 안에서 한 음악을 연주한다는 게 마음 어딘가를 강하게 찌르는 느낌이었어요. 같은 걸 연주하거나 같은 걸 관람해도 서로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 모여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전하고 있다는 그 사실에 뭔가 울컥했어요.”
수‘학學’에서 음‘악樂’으로
건반 위를 놀이터 삼던 유년 시절 경험이 지휘봉을 잡게 할 거라는 걸 예상치 못했 듯, 소리라는 단순 주파수가 마음 어딘가를 뒤흔들 거라는 것도 생각지 못했다. 그 감격이 일생일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만들 거란 건 더더욱 몰랐다. “부모님은 제가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를 바라셨어요. 하지만 확고한 제 의지를 보시고는 제가 행복한 삶을 사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지지해주셨지요. 덕분에 주저 없이 음악의 길로 뛰어들 수 있었습니다.” 늘 말 잘 듣는 아들로 살던 신뢰 덕이었을까, 의외의 순간이자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 부모는 그의 선택을 존중했다.
보통 음대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어릴 적부터 외길을 걸어야 한다. 전문적으로 음악을 파고든 다른 사람과 비교하자면 대학 졸업 후 음대 3학년으로 편입한 백윤학은 출발 자체가 늦은 편이었다. 순서도 뒤죽박죽. 음악이 ‘모국어’가 아니던 것. 어쩌면 콤플렉스 아닌 콤플렉스일지 모를 이 부분을 그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탐구하는 추진력으로 변주했다. 좋은 소리가 무엇인지, 그 근거는 무엇인지 궁구하고 논리적으로 접근했다. 악보를 보면 작곡가가 숨긴 코드가 무엇인지 발굴하고 해석하는 데 여념 없었다.
음대를 무사히 졸업한 그는 이후 유학길에 올랐다. 2003년 미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커티스 음악원에 입학해 음악적 자산과 사고를 확장하는 시간을 가진 후, 템플 대학교 오페라 코치 과정을 밟았다. “보통 피아노를 먼저 공부하고 오페라 스코어를 쳐본 다음 지휘자가 되는 게 일반적인 수순인데요, 저는 오히려 반대가 됐어요.” 출발이 조금 늦고 동선이 조금 꼬였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하고 싶은 음악을 하니 공부도 즐거움으로 느껴졌다.
“살다 보면 가끔 시간을 잊는 순간이 있어요. 음악이든 일이든 작업이든 몰두하는 때가 행복이 아닐까 싶어요.”
학學에서 악樂으로 악장이 바뀔 무렵 그를 찾는 곳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2010년 음악감독 겸 피아니스트로서 필라델피아 프린지 페스티벌Philadelphia Fringe Festival에서 영어 오페라를 제작하는 능력을 선보인 그는 필라델피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음악가로 저변을 넓혔다. 이후 고국에 돌아온 그는 2014년 영남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로 임용됐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KBS에서 지휘했다. 명성을 얻은 것은 서울 페스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영화 OST 공연 영상. 지난해 7월 공연 영상이 당시 1백60만 뷰를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유튜브 쇼츠 영상은 조회 수 1천만을 넘겼다.

지휘란 설득하는 일
지휘란 얼핏 보면 하나의 몸짓처럼 보인다. 실제로 몸을 사용하는 데 큰 무리가 없는 한 지휘자의 동작을 관찰하면 이를 어느 정도 따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휘를 하는 것과 지휘자가 되는 일은 하늘과 땅 차이다. 몇십 명의 단원을 앞에 두고, 몇천 명의 관객을 뒤로한 채 하는 행위는 단순 몸짓 그 이상의 의미를 띤다.
“지휘자는 악기를 상대하는 게 아니라, 연주자와 관객을 상대하는 음악가예요. 생명이 있는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죠. 그러니 지휘란 앞에 있는 사람을 설득하는 일과 다름없죠. 가령 같은 악보를 봐도 그 속에서 의미를 찾고 해석하는 건 제각각이거든요. 그러면 연주자의 의견을 듣고, 동시에 저의 생각과 접근을 상대에게 이해시켜야 해요. 여러 음이 동시에 울릴 때 어떤 음을 강조하고, 어떤 걸 덜 강조할지 그걸 납득시키기 위해서 지금도 시간 날 때마다 악보를 보는 거예요.” 지휘는 설득의 과정, 일종의 논증을 닮았다.

물론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살다 보면 토론이나 설득 과정을 생략해야 하는 경우도 직면한다. “공연을 앞두고 리허설을 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에요. 물리적 제약으로 타협점을 찾아야 할 때 결정을 내리는 것도 지휘자의 숙명이에요. 지휘자는 시간을 관리하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죠.” 그럼에도 여력이 닿는 한 치열하게 토론하고 설득하며 끊임없이 관객과 소통하는 데 온 힘을 쏟을 생각이다. “결국 지휘자는 음악적 지식도 필요하지만, 단원의 마음을 열고 그들이 즐겁게 연주할 마음이 들도록 할 줄도 알아야 해요.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개개인의 특징을 수용해 좋은 결과물을 만들면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죠.”
지휘를 통해 느끼는 희열, 이는 비단 단원에게서만 얻는 건 아니다. “한 관객으로부터 장문의 메일을 받은 적이 있어요. 어머니의 건강이 악화될지 모른다는 소식에 집안 분위기가 침울하게 가라앉은 어느 날, 어머니 방에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는 거예요. 알고 보니 제가 지휘하는 영상을 보고 그렇게 웃으셨다나요? 그게 계기가 돼서 어머니를 비롯해 가족 모두가 공연을 관람하고는 너무 재밌게 봤다며 감사 인사를 전하는 내용이었어요. 다행히 어머니의 검진 결과도 아무 문제 없는 것으로 나왔다는 소식도 들었죠.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제가 느낀 기쁨은 아주 컸어요.” 그는 오케스트라 SNS 채널이나 유튜브 댓글을 확인하며 관객의 후기를 살핀다. 매 공연이 끝날 무렵, 관객에게 소감을 남겨달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관객이 없으면 음악도 없다는 백윤학 지휘자. 그에게 하나의 사고 실험(thought experiment)을 건넸다. 만약 고된 일상으로 기력을 소진한 사람이 가득한 객석에 단 하나의 곡을 들려준다면 어떤 곡을 고르겠냐는 질문. 일말의 고민 끝에 그가 입을 열었다. “베토벤 9번 교향곡요. 방전된 상태에 충전도 오래 걸리는 누군가가 객석에 있다면 꼭 그 곡을 들려주고 싶어요. 에너지도 얻고, 희망도 되찾을 수 있는 곡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위로도 소통도 음악으로 시도하는 백윤학. 그가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일까? “살다 보면 가끔 시간을 잊는 순간이 있어요. 음악이든 일이든 작업이든 몰두하는 때가 행복이 아닐까 싶어요. 사람들과 만나 낄낄거리며 웃을 때나, 책 또는 영화를 볼 때 집중하던 순간처럼 말이죠. 이야기하고 보니 행복이란 우리에게 멀리 떨어져 있는 건 아닌 듯하네요.”
* 백윤학 지휘자는 서울과학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기공학부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지휘 전공으로 편입해 커티스 음악원을 졸업했다. 현재는 영남대학교 예술대학 음악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서울 페스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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